보험사 혁신금융서비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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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혁신금융서비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주간필담]
  • 고수현 기자
  • 승인 2023.07.22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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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고수현 기자]

보험업계 최초로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 ‘on-off해외여행보험’ 등 보험사 서비스들이 제도 개선 문턱을 넘지 못하고 속속 종료되고 있다. ⓒ시사오늘 정세연

보험업계에서 내놓은 혁신금융서비스가 속속 종료되고 있습니다.

은행이나 증권, 카드사 등 타 금융권에 비해 보험업계가 내놓은 혁신금융서비스는 유난히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보업업계 최초의 혁신금융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on-off해외여행보험(NH농협손해보험)’도 올해 상반기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NH농협손보의 경우 이 상품 말고도 ‘모바일 보험상품권’ 판매를 중지했죠. 이 역시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지만 결국 종료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이밖에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받은 보험업계 서비스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은행권의 알뜰폰, 증권업계의 주식 소수점 거래 등 각 분야의 대표적 혁신금융서비스가 존재하지만 보업업계는 이렇다할 서비스가 없죠.

과거에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사라진 현상을 표현하는 인터넷 밈(meme),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가 딱 들어맞는 상황입니다.

그 사이 다른 금융권은 여전히 활발하게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최근 하나카드의 ‘은행계좌가 필요 없는 포인트 기반 체크카드’ 서비스 역시 규제개선 요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법령 정비 완료 전까지 서비스의 지속성을 확보했죠. 이에 앞서 신한카드(신용카드 기반 송금 서비스), KB국민은행(간편·저렴한 금융-통신 융합서비스) 역시 규제개선 요청이 수용됐죠.

이처럼 보험업계에서 내놓은 혁신금융서비스들이 사라진 것과 달리 타 금융권은 규제개선을 통해 서비스 지속성을 확보해 수익 다각화와 함께 다양한 혁신을 실천 중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독 보험업계가 타 금융권에 비해 혁신금융서비스 출시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배경이 있긴 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수익성이 없거나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증권업계가 앞다퉈 도입한 주식 소수점 거래의 경우 이제는 없으면 안되는 주요 수익원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특히 국내 보다는 해외주식 소수점 거래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해외주식이 더 수익성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었죠.

반면, 보험업계가 기존에 내놓은 혁신금융서비스는 수익성이 없다시피 합니다. 보험사들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보이는 TM’도 사실 수익성 보다는 텔레마케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완전판매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이 강하죠. 금융소비자 권리 보호라는 측면에서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라 할 수 있지만, 수익성 사업은 아닙니다. 보이는 TM이 주요 보험채널 가입이 된다면 모를까, 소비자가 외면하면 결국 유지비용 등을 이유로 이전 서비스처럼 사라질 우려가 있습니다.

보험업계 최초의 혁신금융서비스 ‘on-off해외여행보험’ 역시 수익성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해당 상품은 한 번만 가입하면 가입기간 동안 필요 시마다 보험을 개시하고 종료할 수 있는, on-off 방식을 도입한 여행보험이었습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하필이면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해외여행길이 막히고 이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이렇다할 사업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종료됐죠.

두 번째 이유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 문제입니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법으로는 사업 영위가 불가능한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예외적으로 가능케 하죠. 문제는 최장 4년까지만 예외를 인정 받는다는 점입니다. 첫 서비스 지정 시 2년, 그리고 재심사를 통해 추가로 2년까지 최대 4년 만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냐고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금융사가 당국에 제도 개선을 요청하고 받아들여질 경우 관련 법 정비 전까지 합법적으로 서비스가 가능하죠. 개선 요청이 없거나 혹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그대로 서비스를 종료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한 보험사의 의지 부족입니다. 올해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신규 지정된 서비스는 총 36건이지만, 보험사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요즘 오히려 핀테크 업체들의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서 보험업계 시장에 간접적으로 진출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기존 법령 상 보험상품 비교·추천을 위해서는 보험대리점 등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금융감독원 검사 대상 기관은 보험대리점 등록이 불가능했죠.

그러나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통해 이제 핀테크 업체 15곳도 플랫폼을 통해 보험상품 비교·추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졌습니다. 15곳 중에는 네이버파이낸셜, 비바리퍼블리카, 카카오페이 등 이른바 빅테크 3사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에 보험업계 안팎에서 막강한 상품 판매 채널인 플랫폼을 지닌 빅테크 종속 우려가 나왔죠.

물론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정당한 사유 없이 보험사의 제휴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고 수취하는 수수료를 일정 한도 내로 제한했다지만, 보험업계의 고유 영역이 줄어든 것만은 분명합니다.

보험업계는 보다 적극적으로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자체 경쟁력을 강화하고 사업 다각화 노력을 해야하다는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는 비단 혁신금융서비스에 국한된 게 아니라, 경쟁력을 잃어가는 보험업계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담당업무 : 경제부 기자입니다. (은행·카드 담당)
좌우명 : 기자가 똑똑해지면 사회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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