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조이〉, 실화에 얹어간 어른들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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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의 시네 리플릿> 〈조이〉, 실화에 얹어간 어른들의 동화
  • 김기범 영화평론가
  • 승인 2016.03.0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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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겨울바다 위의 기나긴 항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기범 영화평론가) 

▲ 영화 <조이> 포스터

이미 젊은 날에 이혼한 한 싱글맘이 있다. 

그리고 그 싱글맘은 친정에서 이미 이혼한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모시고 가장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여기까지는 그리 이상할 것도 없으며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싱글맘은 한 지붕 밑에서 이미 이혼한 전 남편과 같이 살며, 또한 이혼 후 여러 여자를 전전하는 친아버지를 같이 들여 살게 된다. 

갑남을녀들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혼탁한 이 상황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요소가 되고, 가진 것이라고는 젊음과 남다른 손재주, 그리고 신념 밖에 없는 여주인공은 누구나 그러하듯, 결국 지긋지긋한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아이디어를 꿈꾼다. 

다만, 남들과 차이가 있다면 가난하지만 대찬 이 여자는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조이 망가노라는 실존하는 여성 CEO 의 성공담을 그린 영화 <조이> 는 여성 기업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의 전형적 공식을 보여주진 않는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내러티브에 의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시작하는 <조이> 는 인간 승리의 치열한 드라마보다는, 마치 어른들의 판타지 속에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듯한 서사적 구조를 그려낸다. 

단순한 현대 가정의 해체라기엔 설명이 부족하리만치 지극히 심난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가족사의 세파 속에서, 한 여자가 성공가도의 단 맛과 이에 반드시 수반되는 반대급부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는 차라리 현실에 찌든 어른들에게 한편의 교훈을 던져주는 동화와도 같다. 

영화에서 소재로 삼는, 미국에서 일찌감치 발달한 TV 홈쇼핑의 세계는 성공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허와 실이 공존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한 단면이다. 

분명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미국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한 여자가 자신의 꿈을 지켜 나가는 과정은 눈부시게 찬란하지 않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깊은 공감의 미소를 날리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영화 <조이> 에는 이렇다 할 로맨스는 없다.

대신 각박한 현실 속의 실존 인물을 내세운 픽션 곳곳에 배치된 부담스럽지 않은 유머는 각 등장인물들의 개성 넘친 연기와 합으로 어우러져, 자칫 살벌한 기업 세계의 이면을 그린 영화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를 상쇄시킨다. 

이젠 차라리 헐리우드 배우들의 아버지와 같은 로버트 드 니로와 친어머니의 원숙한 백합의 매력을 이어받은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그 합의 주변부에서 도저히 가려질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주인공과의 러브 라인은 없어도 신데렐라의 요정 대모와도 같은 브래들리 쿠퍼의 부드러운 외모와 푸근함은 절대적이진 않으면서도, 분명 어려운 현실 속의 소금과도 같은 빛을 뽐낸다. 

솔직히 주연을 맡은 불세출의 여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중화시키려 일부러 배치한 조연들의 존재감과 이름값은 너무 커서, 때로는 부산스럽고 산만한 갈등처럼 부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대끼며 질척대는 그 갈등 구조야말로 우리들 삶의 진정한 모습이라 인지한다면, 감독의 연출력은 그 부산함과 산만함을 오히려 관객과의 공감대로 전이시켜 나가는 느낌이다. 

단순히 영화 속의 극단적 상황 같지만 누구에게나 완벽한 삶은 없듯, 어차피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요, 처한 현실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을 전환시킬 기회와 아이디어는 있다. 

그러나 저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인생의 기회와 아이디어를 살리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들은 흔치 않다. 

자신들의 치우친 세계관에서 항상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이 후속세대들에게 편하게 강변하는, 긴 음운의 노력이란 단어를 새삼 내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자고로 사업이란 추운 겨울에 배를 몰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사업뿐만 아니라, 본디 인생 역정 자체가 겨울바다를 뚫는 훨씬 긴 항해임을 깨닫는다면, 진정 자신이 가고자 정한 길을 헤쳐 나가려는 현재를 돌아 볼 배짱조차 없는 이들에게 녹록치 않은 현실은 늘 자기합리화의 기제가 될 따름이다. 

비록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교롭게도 같은 극중 이름의 또 다른 싱글맘에게 여우주연상 트로피는 넘겼지만, <조이> 는 그 인생의 배짱을 보여주는 제니퍼 로렌스가 현재 헐리우드 최고의 여배우라는 데에 반론의 여지가 없음을 여실히 과시한다. 

동시에, 현재 그녀가 넘나드는 연기 영역의 그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영화이기도 하다.

3월 10일 개봉한다.

  

★★★★☆

 

·영화 저널리스트
·한양대학교 연구원 및 연구교수 역임
·한양대학교, 서원대학교 등 강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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