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지난 주말 아침 일찍 용산고등학교로 향했다. 공인중개사 모의고사가 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 모의고사 감독관을 하기로 했다.
시험은 9시부터 시작하지만, 감독관들은 이보다 한 시간 앞서 도착해야 한다. 교육이 있기 때문이다. 시험 감독을 할 교실도 배정받고 수험생들의 자리 배치나 시험지 배포 방법, 답안지 교체 방법 등등 이것저것 교육을 받고 시험이 시작되기 20분 전 문제지와 OMR카드를 들고 각자에게 배정된 교실로 들어갔다.
시험을 앞둔 교실은 말 그대로 긴장감 가득한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수험생들은 책을 보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으면서 시험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간단히 소개하고 긴장을 풀어줄 적당한 말을 찾았지만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육받은 대로 시험 시작 10분 전에 OMR카드를, 5분 전에는 A형과 B형으로 구분된 문제지를 나눠줬다. 드디어 종이 울리고 공인중개사 모의고사 1차 부동산학개론과 민법 시험이 시작됐다.
나도 재작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봤다. 올해 10월에 있을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이 30회째니까 나는 28회 시험을 준비했었다. 직장인이라면 직장에서의 위기의식과 조직에 대한 회의를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누구나 겪는 것들이지만 참아내면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고 도망치듯 사표를 냈다. 누군가가 나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라도 따야겠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새로운 회사에 다니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나 해보자며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 '어차피 상대평가도 아니고 60점만 넘으면 되는 시험인데 얼마나 어렵겠냐'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무료 인터넷 강의 사이트인 '공인모'라는 카페가 있길래 가입하고 교재를 주문하며 드디어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강의를 듣자마자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쏘련말' 같았다. 민법을 비롯해 부동산 관련 법 과목들이 너무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을 먹은 뒤부터는 안팎으로 신경 쓸 일도 많이 생기고 술 먹자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퇴근 뒤 두어 시간 강의를 듣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술 담배에 찌들어 멍청해진 머리는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이었다. 강사가 '방금 설명했듯이~' 하면, '방금? 뭐였지?' 하며 강의를 다시 되돌려보기 일쑤였다. 그리고 책상에 좀 앉아 있으면 몸 이곳저곳이 어찌나 결리고 쑤셔대는지…. 어르신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도 때가 있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옛말은 정말 틀린 말이 없다.
'공인중개사라도~', '60점만 넘으면~' 어쩌고저쩌고 건방을 떨면서 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우리나라 모든 공인중개사에게 사죄라도 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정도였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모의고사에서 나는 평균 60은 고사하고 40점도 넘지 못하는 과락 과목이 매번 나왔다.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에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렇게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됐던 모임이 '공인모'였다. 이 카페에서 강의를 듣는 수험생들끼리 정보도 교환하고 고민도 털어놓고, 게시판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올려놓으면 누군가가 명쾌한 해설을 댓글로 달아주기도 했다. 가까운 동네 사람들하고는 도서관에서 만나 함께 공부하다가 가끔 술도 한 잔씩 했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하는 위안도 얻을 수 있었다. 이날 모의고사 감독관으로 참여했던 공인중개사 대부분은 그렇게 온·오프라인에서 공부를 했고, 결국 함께 자격증을 땄던 사람들이다.
모의고사 1차 시험이 끝나고 2차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수험생들은 내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어떻게 준비를 했는지,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공부했는지, 민법 과목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등등 힘들고 답답하고 절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 모두는 가계를 꾸려야 하고, 각자의 생업도 있다.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세월만 덧없이 흘러버렸다. 예전에는 깨알 같은 글씨도 그렇게 잘 보이더니 이제는 노안이 되어 책을 보기도 힘이 든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왜 '중년의 고시'라고 하는지 이 시험을 준비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알지 못한다.
시험이 끝나고 감독관들과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할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합격하자마자 바로 중개업에 뛰어든 사람도 있고, 자격증을 아직 장롱 속에 넣어 두고 있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편의점보다도 많다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그들에게 이 자격증은 또 다른 고민과 치열한 삶의 시작이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은 10월 마지막 주에 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던 10월 초 한가위 연휴였다. 고향에 내려갔지만, 시험공부를 할 요량으로 부모님께는 회사 일이 많다는 둥 핑계를 대고 차례만 겨우 지내고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다. 그런데 그런 내 속을 모르는 고향 친구 녀석으로부터 진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자기도 일찍 서울에 왔다면서 술이나 한잔하잔다. 어릴 적부터 워낙 친한 친구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거절은 하지 못하고 '내가 할 일이 있어 그러는데 오늘은 진짜 조금만 마실꺼니까 나에게 절대 술을 권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고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한창 물이 오른 가을 전어와 함께 술자리는 시작됐다.
다음 날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짜며 잠에서 깨어보니 신용카드와 신분증이 들어 있는 지갑과 그것을 담아놓았던 점퍼까지 몽땅 잃어버린 것이다. 신용카드부터 사용정지를 해야 될 것 같아서 카드사에 전화했다. 친절한 상담직원이 나의 사연을 안타까워하며 내게 물었다. "마지막 사용내역을 확인해 드릴게요. '옥소리 노래방' 맞으세요?" 그날 난 정말 집에서 쫓겨나는 줄 알았다.
온갖 유혹과 세파를 견디어내며 오늘도 도서관에 앉아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모든 중년 동지들에게 나의 뜨거운 마음을 담아 응원을 보낸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