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부동산시장, ‘팔꿈치’가 필요하다
과열된 부동산시장, ‘팔꿈치’가 필요하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0.07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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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파리 그림을 그려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옛날 옛적에 태양과 바람이 서로 힘을 겨루려고 한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내기를 했다. 바람은 강한 돌풍을 만들어 옷을 억지로 날리려고 했지만, 나그네는 오히려 쌀쌀한 바람 앞에 옷깃을 꼭 여몄다. 반면, 태양은 햇살을 잔잔하게 뿌렸고 나그네는 슬며시 옷을 벗어 한쪽 어깨에 걸친 채 따사로운 햇볕을 즐겼다. 태양의 완승이었다. 누구나 꼭 한번쯤 들어봤을 오래된 이야기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정권 당시 햇볕정책의 유래가 된 우화로 널리 알려졌다.

햇볕정책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고,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때로는 부드러움이 강함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강도 높은 처벌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때 주로 인용된다. 부동산 관련 기사에서도 많이 쓰인다. 규제 일변 정책으로는 집값을 잡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다. 그러나 조금만 이야기를 비틀어서 생각해보자. 이들의 내기는 과연 올바른가. 누가 더 힘이 센지 겨루기 위해서라면 태양과 바람 둘이서만 싸우면 될 일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거센 바람을 맞고, 뜨거운 햇볕 아래 놓인 나그네는 졸지에 건강을 걱정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태양과 바람 앞에 나그네는 미약한 존재였다. 이들의 한판 대결이 남긴 건 선량한 피해자뿐이었다. 

어느 정책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정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크게 바뀌었다. 정책의 연속성은 현격히 떨어졌다. 주택시장 안정화와 국민 주거권 실현·보장이라는 명분은 똑같은데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규제가 풀린 반면,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규제가 시행됐다. 마치 힘을 겨루는 것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인 것처럼 서로 다른 정책을 펼쳤지만 결과는 비슷했다. 부산 영산대 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노무현 정부(15.91%) 때 가장 높았지만, 전세가격 상승률은 박근혜 정부(18.16%)와 이명박 정부(17.90%) 때가 높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 지역 일부 아파트값은 3.3㎡당 1억 원을 돌파했다. 매매가가 폭등하거나, 전세가가 폭등하거나,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건 내 집 마련을 위해 몸부림치는 선량한 국민들뿐이었다.

그럼 시장에 모두 맡기는 게 효율적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부동산을 자산증식과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2017년 기준 총 2415명의 미성년자가 임대료로 504억 원을 벌었다. 인원과 금액이 역대 최대 규모다. 또한 2013~2017년 5년 간 미성년자가 물려받은 땅과 주택이 1조1305억 원에 달한다. 돈 놓고 땅 먹기, 땅 놓고 돈 먹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모든 걸 시장에 맡긴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나라 부동산시장 구성원들은 경제학 교과서 속 합리적 인간이 아니다. 진보정권의 규제 대상 지역은 집값이 무조건 오르는 곳이라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예측까지 할 정도다.

집과 땅을 삶의 터전이 아니라 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정서가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고,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근로소득만으로는 도저히 사회적 성공을 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질 것이다. 늘어나는 소득격차와 부의 편중,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 등으로 사회구조 자체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정부보다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장은 이미 비효율적인 인간들이 구축한 비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시장에 전권을 부여하는 건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거론했듯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전세가격이 폭등해 주택시장 내 수요자 지위가 폭락한 게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시장에 개입하면 사정이 좀 나아질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부동산시장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구성원들도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 안정화 대책은 오래 전부터 제시돼 있다. 일례로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거시적 정책을 유지한다면 시간은 좀 걸려도 주거권 문제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공익보다 욕망을 우선시하는 인간이 변수로 작용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 표밭을 다지기 위해 예산을 낭비하고, 정보의 비대칭성을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은 굳이 사례를 거론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지기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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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비효율이 만연한 시장과 정부 정책, 이를 해결하기에 알맞은 이론이 하나 있다. 바로 '넛지'(nudge, 팔꿈치로 쿡 찌르다)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인간과 시장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으며, 비효율적인 시장과 인간을 효율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옆 사람을 팔꿈치로 쿡 찌르듯 부담을 주지 않는 부드러운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넛지라는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탈러 교수가 든 사례는 남자 소변기에 붙은 파리 그림이다. 소변으로 파리를 맞추려는 남자들의 본능을 이용함으로써 소변기 주변에 떨어지는 잔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센스 넘치는 넛지라는 것이다.

다만, 탈러 교수는 넛지를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정의했지만 이를 '부드러운 유도'라는 표현으로 조정하고 싶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개입보다 유도가 필요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집값 과열 현상이 발생한 주된 원인은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라는 게 중론이다. 국내외 경기가 침체국면에 돌입하면서 부동산 등 안전한 실물자산을 향한 투자심리가 높아진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공개한 '2019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10억 원 이상 금융자산 보유자)들의 자산 구성비는 2015년 부동산 52.4%·금융 43.1%·기타 4.5%에서 2019년 부동산 53.7%·금융 39.9%·6.4%로 변화했다. 금융자산 비중은 줄어든 반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 비중은 높아졌다. 여기에 기준금리까지 인하된 상태다.

고소득층, 저소득층 가릴 것 없이 부동산을 제외한 다른 곳에 투자를 망설일 수밖에 없는 형국에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건, 유동성이 부동산시장 밖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투자자들이 조준할 수 있는 파리 그림을 부동산시장 바깥에 그려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되레 파리 그림을 시장 안에 더 크게 그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공모형 부동산간접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부동산 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와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 투자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경기부양을 위한 고육지계라고 이해하기엔 부동산시장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다.

강한 바람도, 뜨거운 햇볕도 필요 없이 그저 나그네의 옆구리에 팔꿈치를 쿡 찌르고 '저기 더 좋은 옷이 있으니 바꿔 입으라'고 말하면 되는데, 조국 정국과 차기 총선으로 어지러운 정치권에게 그런 넛지를 발휘하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일까. 옆구리를 쿡 찌르는 팔꿈치가 절실한 건 어쩌면 우리 정치권인지도 모를 일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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