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내 그럴 줄 알았지”… 민주당의 이유 있는 브레이크
[취재일기] “내 그럴 줄 알았지”… 민주당의 이유 있는 브레이크
  • 한설희 기자
  • 승인 2019.12.20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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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민주당엔 실익이 없고, 책임만 있다. 그러니 민주당은 책임 소재를 남에게 돌리는 일만 남았을 테다. ⓒ시사오늘 김유종
민주당엔 실익이 없고, 책임만 있다. 그러니 민주당은 책임 소재를 남에게 돌리는 일만 남았을 테다. ⓒ시사오늘 김유종

“그럴 줄 알았다.” -19일, 야당 소속 호남 지역구 의원
“예상했던 일.” -20일,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19일, 바른미래당 관계자

선거법 개정안을 논의했던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 결국 분열 초읽기에 들어섰다. 협의체 소속 야4당이 제시한 중재안을 민주당이 전면 거부하고 ‘先공수처법 처리’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20일 국회에선 여야 할 것 없이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말이 쏟아졌다. 야4당 쪽에선 “반 년 넘게 끌고 온 선거법이 이렇게 좌절되느냐”는 탄식도 들렸다.

 

민주당에게 선거법이란?… “실익은 없고 책임만 있네”

민주당 입장에선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사실 4+1협의체가 논의된 11월부터 정계에선 민주당이 미적거리며 시간을 끌다 결국 선거법 개정을 무산시킬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선거법이 통과되면 거대 양당 입장에선 ‘맡아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지역구 의석이 다소 줄어들고, 비례대표 의석을 대거 군소정당에게 빼앗기는 셈이 된다.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난 4월 ‘빠루(쇠 지렛대) 정국’부터 일관되게 “선거법은 본회의 문턱에서 좌절될 것”이라고 주장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단언하기도 했다.

“민주당에 실익이 없는데 왜 하나? 두고 봐라. 마지막엔 야당(3+1)이 아닌 한국당과 협상하려 들 것이다. 공수처만 받든지, 다른 안으로 거래를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정국’의 책임이 있는 민주당이 모든 협상을 원점으로 돌린다면, 지지자들의 비난마저 피할 수 없게 된다. 지난 11월 말 민주당 당직자도 통화에서 “당이 밀어붙였던 패스트트랙을 아예 없는 일로 만들 수는 없다는 맹점이 있다. 그래서 250+50으로라도 가자는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요컨대 민주당엔 실익이 없고, 책임만 있다. 그러니 책임 소재를 남에게 돌리는 일만 남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지난 18일 ‘3+1당’이 민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한 합의안을 가져왔지만, 민주당이 의원총회 끝에 ‘석패율제’를 명분으로 거절한 것이다. 한술 더 떠 민주당은 ‘국민들의 국정피로감’을 앞서 걱정하며, 선거법 처리를 미루고 시급한 민생법안부터 우선 처리하자고 언론에 호소하고 있다.

이에 야4당으로부턴 즉각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이 주장했던 석패율제를 개악인양 호도하는 것은 자가당착이자 소인배 정치” - 20일,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

“여기서 뭘 더 조정하나? (3+1합의안을) 민주당에서 못 받겠다면 나라 개판 만드자는 거지, 뭐. 석패율제는 최소한의 요구다.” -20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민주당이 큰 뜻을 가지고 ‘민생 원포인트 국회’를 주장했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은 빨리 패스트트랙 국면을 정리하는 것이 민생 법안 처리를 앞당기는 일” -20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선거법 브레이크’에 청와대의 노파심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정의당과 호남계 정당을 포함한 범여권 정당의 확장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관점에서다. ⓒ뉴시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선거법 브레이크’에 청와대의 노파심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레임덕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정의당과 호남계 정당을 포함한 범여권 정당의 확장을 꺼린다는 것이다. ⓒ뉴시스

민주당의 이유 있는 브레이크… “文 식물정부 만들 야당 확장 두려워”

민주당이 ‘선거법 드라이브’의 시동을 끈 이유는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엔 ‘225+75’ 때문에 주저하더니, 다음엔 ‘한국당과의 협상가능성’을 열어두고 본회의 강행을 연기했다. 18일엔 ‘석패율제’를 두고 반대하다가, 20일엔 ‘민생이 우선’ 카드를 꺼내들었다. 야4당이 “핑계 좀 그만 대라”, “이젠 무슨 핑계를 댈 거냐”고 비판하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민주당이 스스로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예비후보 등록일(17일)도 지나갔다. 예비후보들은 선거구 획정도 모른 채 깜깜이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이 ‘브레이크’에 청와대의 노파심이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든 정부는 총선을 두려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총선 이후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정부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야당의 확장을 꺼릴 수밖에 없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문 정부는 본격적으로 집권 하반기를 맞게 된다. 같은 당이라 하더라도 ‘대통령 비호’ 대 ‘대통령 비판’이라는 지리멸렬한 계파 싸움이 시작된다. 이는 지난 박근혜 정부(친박 대 비박), 이명박 정부(친이 대 친박)에게서도 관찰됐던 모습이다. 

민주당 의석이 20대 국회보다 줄어들고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몸집을 불린 정의당 또는 호남 정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비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범여권이라고 해서 국정 동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당 일각에서는 “그들이 무슨 범여냐, 당권 경쟁에서 친문(親文) 세력에 패배했던 사람들이니 더 이를 갈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결국 민주당의 ‘선거법 브레이크’는 ‘식물정부화’를 두려워 한 정부여당이 야4당의 세 확장에 ‘브레이크’를 건 것과 마찬가지다. 핑계 없는 무덤 없듯, 이유 없는 반대도 없다. 민주당에게는 선거법을 반대할 핑계도, 이유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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