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합당과 영남패권론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통합당과 영남패권론
  • 김병묵 기자
  • 승인 2020.04.17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남당 전락’ 일보직전…전국정당 첫걸음은 탈영남 대권주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4·15 선거가 미래통합당의 참패로 끝났다. 영남에서 의석을 4석 탈환하며 거의 싹쓸이 했다는 점이 위안이다. 하지만 통합당의 '영남당' 전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당이 영남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영남패권론'이 강해질 것에 대한 우려기도 하다. 통합당이 갈 방향은 더불어민주당이 걸어갔던, 전국정당의 길이다.

영남패권론은 귀납적 사고에서 나온 논리다. 영남은 단 한 차례도 지역 출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대권을 놓쳐본 적이 없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 수립 이후,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모든 대통령은 영남 출신이었다. DJ가 당선된 제15대 대선에선 영남 출신 후보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영남 출신'이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논리가 탄생했다. 그 집대성이 '영남패권론'이다. 

처음에 이렇게 정치적 전략으로 시작한 영남패권론은 어느샌가 비 영남권의 대권 주자들을 견제하는 논리가 됐고, 영남 출신 인사들이 총체적으로 정치권의 헤게모니를 쥐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변질됐다. 영남 출신이 아니면 당 대표를 비롯한 '요직'에 앉기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이는 통합당의 전신을 포함한 보수진영에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2013년 한 대학 강연에서 "한나라당의 주류는 영남 출신 법조인"이라고 규정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진단이다.

통합당의 영남 대승은 이러한 영남패권론을 더욱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제21대 국회에서 활동하는 의원들을 기준으로, 84석의 지역구 의석 중 56석(약 67%)이 영남 의석이다. 범보수 진영인 무소속 홍준표·김태호 당선자까지 합치면 58석에 달한다. 영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 정치가 이뤄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으로선 영남패권론을 탈출하지 못하면 전국정당으로 성장한 더불어민주당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 지역기반 정당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신호가 나오면서다. '호남 대안론'을 중심으로 '전남대통령', '호남대통령' 등의 슬로건을 내걸었던 민생당은 이번 제21대 총선서 전멸했다.

반면 한때 '호남당'으로 불렸던 민주당은 전국정당화에 성공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선 승리에서 시작해 지난 제20대 총선을 계기로 자리를 잡았다. DJ가 첫 '호남 정권'을 창출했지만 다음 후보는 영남 출신인 노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이로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 김해, 노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부산 북강서를 필두로 영남으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가 놓였다. 현재 두 지역은 제20대, 제21대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다.

전국정당화의 반동인지, 지난 제20대 총선에선 안방 호남을 국민의당에 대거 내줬지만, 수도권 대승과 영남 의석 진출, 충청권의 선전 등을 통해 고르게 의석을 가져오며 원내 1당에 등극했다. 호남은 결국 이번엔 다시 민주당에 '싹쓸이 당선'을 안기며 강한 지지를 보내줬다. 

지난 선거에서도 범 보수 진영은 홍준표 전 경남지사, 유승민 의원을 내세우면서 영남 대권주자를 내보냈지만 패했다. 모처럼 나왔던 '비 영남권 당대표이자 대권주자'인 황교안 전 대표의 사퇴로 통합당은 다시 한번 '영남당'의 기로에 섰다.

황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은 이번 선거에서 패해 더 이상 대권주자가 아니다.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현재 보수에서 꼽히는 유일한 비 영남권 대권주자다. 원 지사에게 무작정 기회를 줄 필요는 없지만, 만약 원 지사가 당 전면에 나선다면 선거지형상 서부전선인 제주도부터 색깔이 파란색에서 분홍색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곧 통합당 전국정당화의 시작인 셈이다.

때문에 내부에 팽배한 '그래도 영남 주자'라는 인식은 경계해야 한다. 민주당이 약진하고 통합당이 영남 수성전에만 나서게 된 이유를 이번 총선결과를 통해 성찰해야 한다. 그 출발은 '비 호남 대권주자'였고, 통합당도 영남패권론을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꼭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 명제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