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이병도의 時代架橋]
스크롤 이동 상태바
고물가…실효성 있는 대책 필요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11.18 14: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민 생계 위협
민생에 답이 있다
과도한 재정 확대는 자제해야
조삼모사 대책으론 해결 못 한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권재한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이 15일 식품 물가 안정을 위한 릴레이 현장 방문으로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를 찾아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연합뉴스
권재한 농림축산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이 15일 식품 물가 안정을 위한 릴레이 현장 방문으로 서울 동작구 농심 본사를 찾아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들이 피부로 체험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가히 서민 생계를 위협할만한 수준이다. 식료품 물가 지수는 1년 전보다 6.6% 올랐는데 이는 작년 10월(7.6%) 이후 12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사과(72.4%) 복숭아(47.0%) 등 과일과 상추(40.7%) 파(24.6%) 생강(65.4%) 등 채소류의 오름폭을 보면 지갑 도둑맞았다는 하소연이 나올 만하다. 여기에 식품업체들이 가공식품 가격을 잇달아 올리면서 서민의 고물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월급 빼고 모든 생활물가가 오르고 있다. 울산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시 4%대를 찍었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커진 데다, 이상기온과 맞물려 농산물값이 초강세를 보이면서 물가 불안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서민들의 구매 빈도와 지출 비중이 높은 생활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4.9%나 올랐다.

물가 안정은 서민들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민생대책이다. 하지만 물가 불안을 잡기 위해 정부의 뾰족한 대책은 잘 보이질 않는다. 물가를 막기 위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카드는 세계 최고의 가계부채, 미국발 기준금리 인상 발작과 국채불안 등의 장벽에 막혀있다. 경기침체 속 장기간 고물가 흐름이 계속되는 ‘끈적한 인플레이션(sticky inflation)’이 서민 가계를 짓누르고 있다.

가계소득 4년만에 처음 감소

물가불안의 가장 큰 피해자는 막대한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서민들이다. 통계청 조사결과 올해 2분기 가계소득은 4년만에 처음 감소했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소득이 줄었다. 심지어 소득의 62%를 빚 갚는데 사용한다는 차주만 45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끈적한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한다면 종국에는 생계형 대출 증가 등 악순환이 이어져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 정부와 울산시는 서민가계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민생 안정대책을 세워야할 것이다.

그렇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방법론부터 고민하자. 우선 용산과 정부 여당은 국민과의 소통기회를 늘려야 한다. 보수 뿐 아니라 중도층이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린 이유를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공정과 상식은 어느 새 잊혀진 문구가 됐다. 선택적 공정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실만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현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거시 경제와 민생을 책임질 부처는 민생 현장과 철저히 괴리돼 있다. 소상공인들이 어쩔 수 없이 간판을 내리고 가게 문을 닫는 이유를 철저히 살펴야 한다. 윤 대통령이 말했듯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은행의 종이 돼선 안 된다.

국가의 손길 뻗어야

국가 존재 이유는 뭔가.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답을 제시했다. 어려운 국민들에게 국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지금은 물가와의 전쟁을 펼쳐야 한다. 여기에 더해 국민들의 원리금 부담을 줄여야 하는 시기다. 민생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실천이 중요하다.

물가를 잡기 위한 교과서적 처방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재정 투입을 줄이는 긴축적인 거시경제 정책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걱정되는 현 상황에서 경제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긴축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쓰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재정을 너무 쓰면 물가를 자극할 우려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타운홀 미팅 형식의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재정을 더 늘리면 물가 때문에 또 서민이 죽는다”고 한 말은 틀린 게 없다. 지금의 고물가가 아무리 고유가와 고금리라는 외생 변수의 영향이 크다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허리띠를 조일 필요가 있다.

재정을 과도하게 투입해 물가를 자극하고 건전재정 기조까지 흔들지는 말아야 한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에게 건전재정은 국가신인도와 직결되는 문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우리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나라 재정을 마음껏 쓰며 국가부채를 400조 원이나 늘렸던 문재인 정부의 방만 재정에 민주당이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낀다면 과도한 재정 확대 주장은 접어야 한다.

심각한 포퓰리즘 짬짜미

먹거리 물가가 너무 오르다보니 서민들은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고 아우성이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이미 공포 수준이다. 이미 붕어빵조차 마음 편히 사먹기 힘들게 됐다. 월급은 안 오르는데 물가가 이렇게 상승세이니 생계비 압박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장보기가 겁나고,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 한잔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먹거리 물가 불안이 가중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총 245억 원을 투입해 배추·무 등 14종 김장재료의 할인품목·수준을 대폭 확대하고, 출하계약·비축 물량 1만 톤도 공급해 소비자가격을 최대한 낮춘다는 방침이다.

역시 해묵은 대책들 뿐이다. 재탕 삼탕, 늘 봐왔던 수준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수준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정책으론 천정부지 먹거리 물가를 잡을 수 없다.

문제는 예산 편성권을 가진 정부와,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예산 편성 기조가 정반대라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재정 투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거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심각한 포퓰리즘 짬짜미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 관심이 절실하다.

물가 잡아야 민심도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물가와 민생을 국정의 최우선에 두겠다고 하면서 정부가 범부처 특별물가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총 245억 원을 투입해 배추·무 등 14종 김장재료의 할인품목과 할인폭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8개 수입과일·식품원료에 대해 신규 할당관세 적용, 동절기 취약계층 에너지바우처 지원 등도 시행된다.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한 긴요한 대책들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유가 불안,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수입원자재 가격 오름세 등에 대한 선제적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한국은행은 올 연말 물가상승률이 3%대 초반으로 낮아질 것으로 발표한 바 있으나 지난달 30일 펴낸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 현황과 평가’ 보고서에서는 내년의 물가둔화 속도마저 시원치 않을 수 있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고물가 상황이 적어도 1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최근에 불거진 중동사태는 또 다른 변수여서 물가불안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현재의 고유가와 고환율은 모두 외생 변수여서 대응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에너지 수입처 다변화, 무역구조 개선 등으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더 단단하게 할 기회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가 물가를 민생 안정의 최우선과제로 설정한 만큼 비상한 각오로 실효적 대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물가를 잡아야 민심도 잡을 수 있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