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기각’ 정국 바로보기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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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기각’ 정국 바로보기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10.07 09: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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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모두 誤讀(오독) 말라
앞뒤 안 맞는 논리
유·무죄는 재판서 결정될 것
국회 비정상은 이제 끝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일 페이스북에 “캡사이신, 물대포같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야 할 유물들이 부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사진은 이 대표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방류 시도와 민생대책 방안 긴급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 기각을 둘러싼 정국 진단에 주목한다.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개인 범죄 혐의를 둘러싼 논란들이 1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정치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국가적 난제나 삼엄한 국제 상황에서 민주당은 오직 당 대표 한 사람 지키기에 올인했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 영장 기각으로 대치 정국이 한층 가팔라지고 있다. 민주당은 대통령 사과와 법무부 장관 파면을 요구하고, 국민의힘은 '법원이 개딸에 굴복했다'며 사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이제 국민들은 더 이상 그 꼴을 봐 줄 수 없다는데, 법원이 그 꼴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구속영장 기각을 놓고 법원이 법과 형평성에 충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강성 팬덤을 거느린 정치인이자 원내 제1정당 대표인 권력자에게 특혜를 줬다는 평가가 합당할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백현동 개발 특혜와 대북송금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 대표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속영장 기각은 무죄가 아니라, 재판에 가서 유무죄를 밝히라는 의미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 총선에 미칠 파장에 주목한다.ⓒ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 관련해 정국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연합뉴스

국회의원 특권 지켜준 셈

구속하지 않으면 증거를 인멸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피의자는 없다.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지 않은 피의자도 없다. 이 대표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대로라면 앞으로 현행범이 아닌 이상 구속 수사를 받아야 할 피의자는 없을 것이다.

이 대표에 대한 1차 국회 체포동의안은 올해 2월 27일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러자 '방탄 국회' 논란이 더욱 가열됐고, 이 대표는 6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말뿐이었다. '백현동 특혜·불법 대북 송금' 등으로 검찰의 2차 구속영장 청구 일정이 구체화되자 '체포동의안 부결 호소용 단식'에 돌입했다. 그러나 더 이상 '방탄 국회'를 용납할 수 없다는 민의가 분출하면서 그에 대한 2차 체포동의안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럼에도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국회의원 특권을 지켜준 셈이 되고 말았다.

판사는 이 대표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과 백현동 개발 비리, 검사 사칭 관련 위증 교사 혐의에 대해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영장 기각엔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다. 위증하도록 시키는 것은 대표적인 증거 인멸이다. 판사는 이 대표가 검사 사칭 사건에서 “(위증 교사를 한) 혐의가 소명됐다”고 했다. 증거 인멸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물적 자료에 비춰 (추가)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한 번 증거 인멸을 한 사람은 또 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사법 리스크 탈출 오독

민주당이 '영장 기각'을 사법 리스크 탈출로 본다면 오독이다. 영장 기각은 수사의 한 과정일 뿐 무죄 판단의 결과가 아니다. '영장 기각'은 역설적인 요소를 감추고 있다. '리스크'는 되살아났고, 오히려 더 장기화하고 심화하게 됐다. 민주당의 '안심'은 이르다. 이때다 하고 총반격에 나서 '대통령 사과' '내각 총사퇴' '국정기조 대전환' '법무부 장관 탄핵' 등 무리수를 동시다발 추진한다면 정국은 혼돈 속에 빠져든다.

국민의힘도 '영장 기각 사유'를 더는 오독 말아야 한다. '이재명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에 기대던 태도에서 벗어날 때가 왔다. '이재명 의혹'은 '정치의 시간'을 접고 '사법부의 시간'으로 넘겨야 한다. 국정을 책임진 여당으로서 정치 회복과 정상화가 다급한 과제다. 국민 삶을 지키고 민생의 어려움을 해소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정부 여당의 존재 이유다. 부디 '영장 기각'을 전면전의 빌미로 삼지 말라.

여야 대치 정국은 한층 가팔라질 전망이다. 정기국회에서도 쟁점 법안 처리,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을 놓고 여야 간 첨예한 갈등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 진영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극단적인 대결 정치에 국민들은 지쳐 간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연합뉴스

민생에 전력 투구를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지만 무섭게 오른 물가 때문에 고민이 많다. 추석 차례상 준비부터 자고 나면 오르는 기름값까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 대표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한 판단이 법원으로 넘어갔으니, 여야는 국회의 시간으로 돌아와야 한다. 위기에 빠진 민생을 돌보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다.

이번 영장실질심사에서 판사는 "(검사 사칭 관련)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대표 혐의와 관련 있는 종범들이 줄줄이 구속돼 있다. 당내 의원들이 수사하는 검찰을 압박하고, 이 대표 주변 인물들이 대북 송금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의 진술에 개입한 정황도 발견됐다. 영장 전담 판사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판사는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기에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를 폈다.

문제는 영장 기각이 여야 정쟁을 더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반격에 나서 정부를 공격하면 정기국회 전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싸우더라도 국회에서 최소한 할 일은 해야 한다.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해 초유의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는 매듭지어야 한다. 각종 민생 법안과 노동·교육·연금·재정·규제 개혁안 등 나라와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안들도 마찬가지다. 영장 기각 후 이 대표는 국민 삶을 챙기는 정치로 되돌아가자고 했다. 이번만큼은 그 말을 실천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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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태 2023-10-07 15:46:11
객관적인 상황분석에 항상 감사드립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