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서거 6주년…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YS, DJ, MB와의 인연
노무현 서거 6주년…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YS, DJ, MB와의 인연
  • 홍세미 기자
  • 승인 2015.05.23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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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필담>노무현, 역대 대통령들의 관계는?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홍세미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 ⓒ 뉴시스
2015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다.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전국 곳곳에선 추모 행사가 진행된다.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여정을 훑어보면 굵직한 사건엔 역대 대통령들이 등장한다. 역대 대통령들과의 인연으로도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 처음과 끝을 알 수 있다. <시사오늘>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년을 맞이해 노 전 대통령이 YS, DJ, MB와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김영삼(YS)
 
노무현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YS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했다. 당시 YS가 노무현을 발탁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노무현은 대전에서 판사로 1년 동안 재직하다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치 경력이라곤 ‘전무’한 상태였다.
 
당시 대구·경북(TK)는 여당이었던 민정당이, 부산·경남(PK)는 YS가 이끄는 민주당이, 호남은 DJ가 이끄는 평민당이, 충청권은 JP가 이끄는 공화당이 말뚝만 박으면 당선됐다. 이들이 지역구에 공천을 준다면 ‘당선’은 보장됐다.
 
YS에게 PK지역구 공천을 받기 위해 돈 보따리를 들고 오는 사람이 많았다. YS는 그런 사람을 마다하고 노무현을 택했다. 돈 보단 인권변호사를 택한 것이다.
 
13대 총선 부산 동구에서 당선된 노무현은 그렇게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1988년 제5공화국 비리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논리적이고 정확한 언변을 보여줘 일명 ‘청문회 스타’로 거듭났다. 
 
그러나 YS와 노무현은 좋은 결말을 맞지 못했다. 1990년 YS가 3당합당을 선언하자 노무현은 이에 반대해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통일민주당 잔류 세력인 김광일, 이기택, 박찬종 등과 함께 잔류했다. 이를 일컬어 ‘꼬마민주당’이라고 불렸다.
 
◇김대중(DJ)
 
노무현과 DJ는 묘한 사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 가장 이루고 싶던 꿈은 ‘지역주의 극복’이다. 노무현은 재임 당시에도 “대통령이 되는 것은 나의 꿈이 아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지역주의 극복’을 평생 업으로 생각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모토로 삼은 노무현은 DJ와 이 부분에서 갈등을 빚기도 했다. DJ가 4자필승론이나 지역등권론 등을 내세웠기 때문.
 
DJ는 1995년 미국에서 돌아와 정계에 복귀했다. DJ는 ‘지역등권론’을 주장하며 지역주의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노무현은 신문 기고를 통해 DJ의 지역등권론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나는 DJ를 용납할 수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역사적 행위다. 역사의 주인인 국민대중을 졸로 보고 수단으로 여기는 등권론, 정치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지긋지긋한 지역대결구도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DJ의 지역등권론이다."
 
◇이명박(MB)

노무현의 인생을 거론할 때 MB는 빠질 수 없는 인물 중 하나다. DJ의 지역등권론으로 부산시장에서 낙선한 노무현은 YS가 이끄는 신한국당과 DJ의 국민회의에 맞서 민주당 소속으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했다. 이 때 노무현은 3위로 낙선했는데, 승리한 사람은 바로 신한국당의 이명박이었다.
 
이후 노무현은 국민통합추진회의(약칭 통추)를 만들어 활동했다. 그러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통추인사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노무현은 “50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룩해야 한다”며 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지역주의 정치인이라고 원색비난했던 DJ 곁으로 노무현이 자리를 옮긴 것은 아이러니하다.
 
1998년, MB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을 최종 선거받기 직전 자진사퇴했다. 그 해 7월 21일 재보선이 치러졌고 노무현은 MB의 자리(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정인봉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것이다.
 
이후 노무현은 2000년 치러졌던 16대 총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 종로구에 출마하지 않았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부산 북강서을로 출마해 낙선됐다. 이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노무현은 2003년 16대 대선에서 고지를 점령한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넘어간 이후 2009년 일명 ‘박연차 게이트’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각에선 MB정부의 검찰이 과대 수사를 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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