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널리스트①]야권 MBC 앵커라인, '비주류는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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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널리스트①]야권 MBC 앵커라인, '비주류는 내 운명'
  • 오지혜 기자
  • 승인 2016.03.02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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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박영선·신경민, 높은 인지도에도 당내 주도권 못 잡아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오지혜 기자)

▲ 'MBC 앵커라인' 국민의당 정동영 전 의원-더민주 박영선 비대위원-신경민 의원 ⓒ 뉴시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을 이루는 특정직군이 있다. 최근 들어서 법조계 비율이 높아졌지만, 언론인 출신도 여전히 눈에 띈다. 여당은 그중에서도 KBS 출신이 다수인 반면, 야당은 MBC 출신이 많다.

최근 야권에서 'MBC 앵커라인'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MBC 앵커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비대위원과 신경민 의원은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릴레이에 동참해 주목받았다.

또 MBC 간판 앵커였던 정동영 전 의원은 국민의당으로 발길을 돌리자마자 더민주 지도부와 날을 세우면서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말 야권분열과 함께 언론에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박 위원이 지난 2014년 원내대표직에 올라 짧게나마 구가한 'MBC 전성시대' 이래 가장 큰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MBC 라인'은 야권 비주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기자 이력으로 높은 대중인지도를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 득표율 89.9% '화려한' 정계 데뷔…2007 대선 참패로 '내리막'

MBC 정치부 기자로 입사해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 앵커로 전국에 얼굴을 알린 정동영 전 의원은 1996년 정계로 진로를 바꿨다.

정치권 데뷔는 화려했다. 그는 DJ가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 간판으로 선거에 나서 15대 총선에서 89.9%, 16대 총선에서는 88.2% 지지율로 연거푸 전국 최다 득표 기록을 세웠다. 또 당 대변인과 총재 특보를 맡아 금세 스타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천정배, 신기남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2004년에는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개성공단 산파'로 정치이력에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그에게도 정치적 내리막이 찾아왔다.

그는 18대 재보궐선거 당시 당내 친노세력에 밀려 공천에서 배제되자, 무소속으로 전주 덕진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때 득표율이 72.27%로 재보궐 선거 62년 사상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를 발판으로 정치적 재기에 나선 그는 민주통합당으로 복당, 19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대 재보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정 전 의원은 비주류 정치인으로 밀려났다. 무엇보다 총선 출마를 위해 탈당과 복당을 반복, 정치적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단초를 제공한 게 문제였다.

그렇게 정치무대를 떠났던 정 전 의원이 지난 19일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그는 정부의 개성공단 중단 조치와 김종인 더민주 대표의 '북한궤멸론'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세를 퍼부으며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국민의당 역시 이번 총선에서 정 전 의원을 전북 전주병 단독 후보로 내세워 원내복귀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영입에도 국민의당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추락하면서, 그가 정치적 공백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야권 중심에 설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박영선, 원내대표로 'MBC 전성시대' 열었지만…'친노'에 밀려 리더십 상처
 
더민주 박영선 비대위원은 정계에 입문하기 전 MBC 미국 특파원과 뉴스 앵커를 역임하면서 사내 간판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박 위원에 정계 입문을 권유한 사람은 바로 MBC 선배 정동영 전 의원이었다.

박 위원은 2004년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 당 대변인으로 변신했다. 18대,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구로구을에 당선돼 정치력을 쌓아갔다.

정계에서도 승승장구하던 박 위원이 2014년 원내대표직에 올랐을 때는 'MBC 전성시대가 시작됐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시 박 위원의 최측근인 최명길 전 MBC 부국장이 문희상 전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 정무특보로 임명됐고, MBC 기자 출신인 김성수 대변인 역시 당시 원내대표 정무조정실장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좋은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박 위원은 당시 새누리당과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섰지만 당내 의원들과 유가족 모두 협상결과에 큰 불만을 드러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이상돈 영입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오히려 기름에 불붓는 격이었다. 공개 퇴진압박까지 이어졌다.

당시 상임고문이었던 정 전 의원도 박 위원의 질책에 가세했다. 그는 "이상돈 교수 영입은 새누리당 2중대라고 선언하는 꼴"이라면서 "박 원내대표도 거취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위원은 결국 6개월 만에 원내대표직을 내려놔야 했다.

이는 '친노세력의 흔들기'에 따른 결과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비노성향의 박 위원이 핵심 당직을 잡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이 논란이 되자 친노 좌장격인 문재인 전 대표 등이 직접 나서 흐름을 바꿨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박 위원의 정치적 리더십에 큰 흠이 생긴 탓에 당내 주도권 잡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3S 설' 신경민, 국민의당 이적 고심?…"99.9% 소설"

더민주 신경민 의원은 MBC 방송기자로 입사, '뉴스데스크' 앵커를 맡아 촌철살인 멘트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회사 방침으로 2009년 갑자기 교체돼 정치적 외압 의혹이 일었다.

신 의원에 정계입문을 권유한 것은 'MBC라인' 정동영 전 의원과 박영선 위원이었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그분들의 논리는 언론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에 와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그 말에 공감했다. 내가 간다고 정치를 바꿀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기여할 방법은 있지 않겠나"라고 밝힌 바 있다.

신 의원은 어떤 계파에도 휩쓸리지 않고 'MBC 라인' 선배들과 인연을 이어나갔다.

신 의원이 18대 총선 당시 서울 영등포구을에 선거사무실을 개소하자, 정 전 의원과 박 위원이 직접 들려 축하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특히 박 위원과는 여전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이 지난달 24일 서울 구로구민회관에서 당원필승결의대회를 연 자리에 같은 당 우윤근, 김영록, 이윤석, 이인영, 노웅래, 박광온 의원 등과 함께 신 의원이 모습을 보였다.  

또 신 의원이 지난달 25일 밤 필리버스터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 연단에 섰을 당시에도 박 위원이 휴대전화로 신 의원의 사진을 찍는 모습도 목격됐다.

그러나 비주류의 운명은 '각자도생'인지, 신 의원이 최근 국민의당 이적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3S 공천배제설'로 최근 탈당한 신기남 의원과 함께 더민주 신경민, 신계륜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공천배제 대상에 올라 탈당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국민의당 관계자는 지난 29일 "지도부가 신경민 의원과 계속해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신경민 의원실측은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국민의당에서 소망하는 바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다"면서 "99.9%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本立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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