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떠오르는 암초들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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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떠오르는 암초들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3.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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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에 일본에 뒤처진 성장률
과학기술, 중국에 추월
日 골든타임 허비하는 韓
미래 투자 촉진해 활력 불어넣어야
반도체 국가 총력전 본격 대처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일부 제조업종은 호황이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역동성이 떨어지는 등 한국 경제 곳곳이 암초에 걸 것으로 분석된다.ⓒ뉴시스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일부 제조업종은 호황이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역동성이 떨어지는 등 한국 경제 곳곳이 암초에 걸 것으로 분석된다.ⓒ뉴시스

한국 경제 곳곳이 암초다. 과학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성장률도 역전됐다. 일본식 장기 불황을 뜻하는 ‘잃어버린 30년’의 전철을 우리가 밟을 리가 있겠느냐며 설마 하던 일도 눈 앞에 다가왔다. 일본의 반도체 반격도 시작됐다.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두 나라 간 경제성장률 역전에 대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며 저출산·고령화와 생산성 및 경쟁력 저하 문제를 꼬집었다.

일본은 그동안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 채 경제 체질과 산업구조 혁신을 외면했지만 2012년부터 아베노믹스라는 비인기 정책과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시행하면서 인내심을 발휘한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엔 일본처럼 뼈를 깎는 구조개혁 과정은 없이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하고 있다. 고물가 속 저성장 기조를 탈피할 비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일본 주식시장만 보고 기업 밸류업 대책 등 외형만 따라 하려는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일본과 대조적으로 우리 경제는 저성장 초입에 들어섰다.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일부 제조업종은 호황이지만 전체적으로 경제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이미 정점을 찍었고, 초고령사회 진입이 목전이다. 2000년대 초반의 일본처럼 장기침체와 초고령사회 진입이 겹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경제성장률 1.4%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일본에 추월당했다. 우리도 '일본형 장기침체'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1억2000여만명의 인구가 내수시장을 지탱하고 축적된 자본력, 독보적인 소재·부품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성장 종식을 논하기까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우리의 현재 여건은 그런 일본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리나라 수출은 40%에 육박한다. 빠른 속도로 제조업 고도화를 이뤄내는 중국 의존 시기도 지났다. 일본·미국·대만의 거센 추격에 반도체·미래차 등 기술 경쟁우위도 자신할 수 없다. 기업과 국가의 운명을 가를 첨단산업 투자는 분초를 다툴 정도로 급박하다.

정치권, 미래 청사진 없어

정치권은 여야 없이 총선에 올인하며 수십조원의 세수 펑크를 아랑곳하지 않고 ‘빚 늘리기 공약’만 남발할 뿐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여력마저 소진시키다 총선 후 몰려올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지 답답할 뿐이다. 공약 심부름에만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최상목 경제팀의 존재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혁신을 주도하고 역동성을 살릴 묘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벽에 부닥친 경제를 도약시키려면 뼈를 깎는 구조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이 과제를 미루고 또 미뤄왔다.

정부는 땜질식 처방으로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 하고 사회 각 분야의 견고한 기득권층은 제 이익을 지키려 못 하는 일이 없는 지경이다. 신산업의 싹부터 잘라버리는 것은 그 한 예일 뿐이다. 사회적 타협을 주도해 구조 개혁의 물꼬를 터야 할 정치권은 표를 얻기 위해 숫자가 많은 이익집단에 영합하기만 한다. 그 결과가 미국·일본보다 낮은 구조적 저성장이다.

과학기술, 중국에 추월

우리나라 과학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어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운영위에서 보고한 ‘2022년도 기술 수준 평가 결과’에서 이같이 나타났다.

과기정통부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핵심기술 136개를 선정해 2년마다 주요 5개국(한국, 미국, EU, 일본, 중국)을 대상으로 그 수준과 격차를 점검한다. 세계 최고인 미국을 100%로 봤을 때 기술 수준은 EU(94.7%), 일본(86.4%), 중국(82.6%), 한국(81.5%) 순이었다. 2년 전 평가에서 한국이 80.1%, 중국은 80%로 간신히 우위를 점했는데 이번에 역전된 것이다.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중국은 평가 대상 11대 분야 가운데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기술 수준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우주·항공·해양 분야는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우리 기술 수준은 2년 전과 비교해 9개 분야에서는 다소 수준이 향상됐지만 우주·항공·해양 분야와 ICT·SW는 하락했다. 미래 성장분야 기술 개발에 안이하게 대응한 결과여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기술 경쟁력을 잃는다면 수출 시장에서 밀려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난해 대중무역수지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은 한중 기술 역전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에 뒤처진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대중 무역 적자가 고착화할 수밖에 없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생존하는 길은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양성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일괄 삭감의 문제점을 파악한 뒤 현장 실태 분석을 바탕으로 전략 기술 분야에 예산 지원을 늘릴 수 있도록 정교하게 예산을 짜야 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부와 국회·기업이 원팀이 돼 초격차 기술 확보에 매진해야 한다.

대기업 일자리 비중 가장 낮아

한국의 전체 일자리 중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조사해 보니 2021년 기준 한국의 종사자 250인 이상 대기업의 일자리 비중은 14%로 OECD 32개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 다음으로 그리스(17%),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22%) 순이었다. ‘중소기업 강국’으로 평가받는 독일과 일본의 대기업 일자리 비중은 41%에 달했다. 미국(58%), 프랑스(47%), 영국(46%) 등은 그보다도 더 높았다.

양질의 대기업 일자리를 늘리려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차근차근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을 두텁게 보호하되 정부 보조금에 안주하지 않도록 지원책을 손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 등 과도한 규제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혁신과 도전으로 더 크게 성장할 때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위협받는 반도체 주권

인공지능(AI)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과거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남보다 앞서 나가지 못하면 즉시 도태되는 이 혁신의 시대에 한국 경제가 살아남으려면 창의적 인재를 키우고(교육 개혁), 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도록 혁신의 장을 조성하고(노동·규제 개혁),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해줘야 한다(연금 개혁).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과 달리 우리는 청년 세대의 역동성이라는 잠재력이 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을 통해 단군 이래 최고 경쟁력을 가진 우리 청년 세대가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가 살길이다.

규제 해소를 두고 특혜니 차별이니 갑론을박하며 허투루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기본조건은 우리 기업들의 기초체력을 높이는 것이다. 해묵은 과제인 선제적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을 이뤄내고 반도체, AI, 첨단방산 등 미래 투자를 촉진하는 데 정부와 국회가 총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의 엇박자에 골든타임만 흘러가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는 삼성전자, 인공지능(AI)에 쓰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1위는 SK하이닉스다. 반도체 경쟁은 국가 대항전으로 변했다.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론 현재의 1위를 유지할 수 없다. 대기업 특혜 논란에서 벗어나 일자리 창출, 경제 활성화 등 큰 틀에서 보자. 지역 민원 해결을 떠나 국가 경제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반도체 경쟁 우위를 지켜 낼 ‘코리아 원팀’이 절실하다.

미·일의 거센 추격에 우리나라의 반도체 주도권도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경쟁국에 비해 느긋해 보인다.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장을 짓겠다며 부지를 정한 게 5년 전이다. 내년에 착공해도 2027년께나 양산이 가능하다. 지난달 15일 정부는 2047년 중장기 프로젝트로 총 622조원 규모의 민관 합작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구축을 발표했다. 용수·전력 등 인프라 조성계획 등을 과거보다 구체적으로 마련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속도에선 한참 늦다.

실제 이 프로젝트에서 삼성전자의 1호 반도체 공장 가동이 2030년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장밋빛 계획만 다듬고 논쟁하다 세월을 보낼 때가 아니다. 지금 당장 규제 철폐와 세제감면 등으로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전폭 지원해도 경쟁국 추격이 만만치 않다. 미국과 일본을 보며 우리 정부와 기업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긴 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반도체산업은 국가대항전으로 바뀌었다. 기존 3류 정치와 2류 행정으로는 글로벌 전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한국 반도체는 기로에 선 상황이다. 그동안 1위를 지켜온 메모리 분야에서 후발주자들의 거센 추격을 받는 동시에 4차 산업혁명으로 수요가 폭발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선 TSMC는 물론 후발주자인 인텔에도 갈수록 밀리고 있다.

정부는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 지역에 ‘세계 최대·최고의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조성’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조성 목표 시기는 2047년이다. 일분일초가 숨 가쁜 반도체 전쟁에서 이런 속도로는 승리할 수 없다. 전략·용수 등 핵심 인프라를 조기 공급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세제·금융 지원에 가속을 붙여야 한다. 정치도 더 이상 ‘재벌 특혜’라는 낡은 구호로 방해해선 안 된다. 정부와 기업 모두 반도체 속도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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