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복국] “우리가 남이가”…지역감정 조장 사건 있었던 그 곳
[초원복국] “우리가 남이가”…지역감정 조장 사건 있었던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1.1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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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대 대선 과정에서 지역감정 조장 전략…통일국민당 도청으로 세상에 폭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초원복집 사건’의 현장이었던 ‘초원복국’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사오늘
‘초원복집 사건’의 현장이었던 ‘초원복국’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사오늘

부산 지하철 2호선 경성대·부경대역과 남천역 사이, 대남교차로에서 수영만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우측으로 농협 건물이 보인다. 농협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더 들어가면, 어딘지 익숙한 이름의 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복국집일 ‘초원복국’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식당일뿐인 이 장소가 전국적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92년에 일어난 ‘부끄러운 정치적 사건’ 때문이다. 1990년 ‘3당합당’으로 군부독재 세력과 손을 잡은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치열한 내부투쟁 끝에 민주자유당 후보 자격을 손에 넣고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당시 민자당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은 제14대 총선에서조차 과반에 근접한 149석을 얻었던 ‘거대 여당’이었으므로, 당연히 YS는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충청도의 지지 하에 우세를 유지해나갔다.

그러나 탄탄대로일 것 같았던 YS의 대권 행보에 변수가 등장한다. 통일국민당을 결성, 제14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정주영이 TK 표를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주영은 ‘반값 아파트’ 등 창의적이면서도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공약으로 관심을 끌어 모음과 동시에, 반(反) YS 정서를 지닌 TK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자신의 지지 기반을 서서히 넓혀나갔다.

사실 YS는 3당합당 후 대선 후보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민정계와 격렬한 권력투쟁을 벌여야 했다. 이러다 보니 민정계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TK에는 YS에게 반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정주영이 이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실제로 정주영은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후 박철언, 유수호, 김복동 등 민정계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며 TK 표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지난 30년 동안 세 명의 대통령을 잇따라 배출하며 권력의 유력한 버팀목이 돼온 이 지역은 이번에 ‘출신 후보’를 갖지 못한 데 따른 ‘허탈감’이 선거 초반에 폭넓은 부동층 분포로 나타나기도 했으나 투표일을 열흘 앞둔 종반으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표의 향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행정당국과 경찰 및 각 정당간부 등 이곳 선거관계자들은 현재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전통 여권표를 어느 정도 추슬러내 50%를 약간 웃도는 지지로 선두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국민당 정주영 후보가 이 지역의 오랜 ‘반 김영삼’ 정서를 활용해 현역의원 5명(전체 11명)의 대구를 중심으로 김 후보를 맹추격하며 막판 역전을 노리는 형국으로 보고 있다. (중략)
최근의 대구 경기침체와 정부농정실패를 집중거론하며 정주영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적극 홍보해온 국민당 쪽은 이곳 유권자들이 정 후보를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난 총선 때 28.6%를 얻은 대구에서의 과반수 득표는 물론 경북에서도 득표율 40%를 자신하고 있다.
국민당 관계자는 “이 지역민들은 노 대통령 등 이른바 ‘대구·경북(TK) 세력’을 온갖 방법으로 옥죄고 제1당 후보자리를 꿰찬 김영삼 후보의 정치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에게 선뜻 표던지기를 주저하고 있다”며 “중소상인과 서민층을 주요 기반으로 정 후보의 인기가 빠른 속도로 상승해 부동표가 대거 우리 쪽으로 올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후략)
1992년 12월 9일자 <한겨레> ‘지역별 판세점검-대구·경북, 민자 50%선 유지…국민 맹추격’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뉴시스
‘초원복집 사건’을 주도한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맡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뉴시스

이런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초원복집 사건’이었다. 흔들리는 TK 민심을 다잡아야 했던 민자당 측은 대선을 일주일 앞둔 1992년 12월 11일,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초원복집에서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만나 선거 전략을 논의한다. 이 사건은 선거에서 중립을 지켜야 할 기관장들이 특정 정당 후보 당선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점에서 위법(違法)의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줬던 것은, 이들이 표심을 모으기 위해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국민당의 김동길 선거대책위원장은 15일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용 부산경찰청장, 이규삼 안기부 부산지부장, 김대균 부산지역 기무부대장, 우명수 부산교육감, 정경식 부산지검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회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 7명이 지난 11일 아침 7시 부산시 남구 대연동 초원복집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폭로하고 이들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중략)
김 위원장은 “이 테이프에 따르면 이들 기관장들은 이날 회의에서 ‘이번 대선에서 경남, 부산이 발전할 기회를 못 잡으면 영영 파이다’ (김 기무부대장), ‘잘못하면 혁명적 상황이 와서 전부 끌려들어가야 할 판’, ‘부산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남들이 비웃을 것이다. 당락을 불구하고 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 받는다’ (김 전 법무장관), ‘팔이 안으로 굽는 것 같이 상공회의소회장은 다 여당권입니다’ (박 상공회의소 회장), ‘부산지역 호남인 표 10%와 군소정당 표 3~5%를 빼면 나머지 85%인데, 이중 15%를 정주영이가 가져간다면 ○○은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60대로 떨어지니까 10% 미만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김 부산시장), ‘하여튼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김 전 법무장관) 등등의 대화로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이들은 ‘최근 현대 수사하고 나서 많이 좋아졌어. 기가 많이 죽었는데 그대로 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지역신문이 더 단결하면…’ (이 안기부 지부장), ‘그렇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원체 삐딱하니까…. 숨어서 지금도 하고 있는데…’ (김 시장), ‘고향발전을 위해서 해달라고 해보십시오. 관리들은 하기 곤란하니까 업계에서’ (김 전 법무장관) 등의 대화로 김영삼 후보의 당선대책을 노골적으로 논의했다”고 주장했다. (후략)
1992년 12월 15일자 <동아일보> ‘“부산지역 기관장 대책회의, 김영삼 당선 지원 논의했다” 국민당 폭로’

그러나 이 사건은 선거 결과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민자당은 역으로 통일국민당이 불법적 방식으로 도청을 하고 사생활을 침해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프레임을 전환시켰고, YS는 부산에서 73.3%, 경남에서 72.3%, 대구에서 59.6%, 경북에서 64.7%의 득표율을 올리며 영남의 몰표를 받는 데 성공했다. 반면 정주영은 대구에서 19.4%, 경북에서 15.7%를 받는 데 그쳤다. 전국 득표율이 16.3%였으니, 사실상 초원복집 사건 폭로는 득표율에 도움을 주지 못한 셈이다.

오히려 초원복집에서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임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내실에 몰래 도청장치를 설치했던 문종렬(전 통일국민당원), 김남석(전 안기부 직원), 안종윤 등은 주거침입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도청 사건 기획자로 알려진 정몽준 의원도 이들에게 도피자금을 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가 1심에서 징역 6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게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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