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포럼] 진중권 “한국 보수, 국가주의·자유지상주의·권위주의 버려야”
[북악포럼] 진중권 “한국 보수, 국가주의·자유지상주의·권위주의 버려야”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10.20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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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서 만난 정치인(188)〉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0월 19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섰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10월 19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섰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누군가는 ‘진중권이 변절했다’고 한다. 혹자는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진중권은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그저 ‘보수냐 진보냐’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양극화 시대에,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바른 말’을 해대는 이 논객이 이상해 보일 뿐이다.

진영 논리로 가득한 우리 정치에서 피아(彼我) 구분 없이 ‘마이 웨이(My Way)’를 걷는 그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10월 19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보수·진보, 산업화·민주화 서사에서 못 벗어나”


이날 강연은 ‘보수를 말하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그러나 진 전 교수는 보수의 현 상황을 진단하기 전에, 한국 사회 전반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정치를 이끌어 온 두 가지 거대한 서사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죠.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성취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입니다. 그리고 산업화는 박정희 서사로, 민주화는 김대중과 노무현의 서사로 연결되죠.

문제는 이후에 보수도 진보도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먼저 진보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민주당 사람들은 기득권화가 됐습니다. 운동권 자체가 이 사회의 새로운 주류로 올라섰죠. 과거에는 돈 많은 사람들이 보수였는데, 지금은 민주당이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가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경제 주체들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건설이나 토목, 제조업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인터넷이나 게임이 주류가 됐고, 이런 산업을 이끄는 사람들이 4050 세대입니다.

이렇게 다 기득권층으로 편입된 상태인데도, 이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민주화 투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행정·입법·사법·학계까지 모든 헤게모니를 쥐고, 강남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스펙을 조작해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은 개혁 세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들끼리 하는 기득권 추구를 민주화 운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보수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박정희 서사는 끝났는데, 그에 대한 대안 질서를 만드는 데 실패했죠. 이러다 보니까 아직까지도 박정희 서사를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박정희 정권 시절의 고도성장 신화를 재현하겠다고 한 것이나, 토목 사업을 토대로 경제 성공을 이끌려고 했던 것들이 대표적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아예 상부구조를 제3공화국 시절로 회귀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하다가 탄핵을 당했습니다. 이게 현 한국의 지형인 거죠.”

진 전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을 언급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진 전 교수는 한국 사회 전반을 언급하면서 강연을 시작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국 보수, 꼰대식 접근에서 벗어나 대중 설득해야”


진보와 보수 모두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 진 전 교수는, 한국 보수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기존 보수의 멘탈리티는 크게 세 가지로 이뤄져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국가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그것도 굉장히 극단적인 형태인 자유지상주의 또는 시장만능주의, 문화적으로는 권위주의입니다. 세 가지 모두 시대착오적이죠. 우선 국가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자유주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북한 인권만 이야기하지, 남한의 인권에는 무관심합니다.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주의, 국가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로 가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죠.

경제적으로는 시장만능주의를 외칩니다. 말만 하면 규제 풀자, 세금 줄이자 그러는데 지금처럼 전 세계적 양극화 시대에는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수의 어젠다가 먹히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1970년대 밀튼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의 자유지상주의, 레이거니즘·대처리즘 이 때에 머물러 있고 세계의 조류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그 다음은 권위주의인데, 권위주의의 진짜 문제가 뭐냐면 커뮤니케이션이 안 된다는 겁니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오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쌍방향화·수평화 됐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보수 정권은 자신들이 사회의 주류였으니 내 입장이 곧 사회 전체의 입장이 됐습니다. 그러니 설득이 필요 없었죠. 말 안 들으면 군대가 있고 보안사가 있고 안기부가 있었으니까요. 시대가 바뀌면서 이제는 꼰대식 접근에서 벗어나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데, 보수는 이데올로기도 없고 그걸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터도 없습니다.”

 

“차기 대선, 민주당이 도덕적 헤게모니 상실한 선거”


보수의 현 상황을 분석한 진 전 교수는, 끝으로 보수가 가야 할 길을 조언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보수의 현 상황을 분석한 진 전 교수는, 끝으로 보수가 가야 할 길을 조언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보수의 현 상황을 분석한 진 전 교수는, 끝으로 보수가 가야 할 길을 조언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했다.

“제가 한국 보수에 권하는 것은 우선 이념을 정립하라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동체주의 보수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장 중시는 보수의 기본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시장경제가 갖고 있는 단점을 국가가 해결해야 합니다. 경제적 양극화라든가, 경쟁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는 걸 분명히 해야 합니다.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루저’라는 식의 발상으로는 21세기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또 애국주의는 괜찮지만 국가주의는 버려야 합니다. 우리 보수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굉장히 둔감합니다. 아직도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어요. 이거야 말로 사상의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경쟁하게 맡겨두면 되는데, 굳이 막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언론중재법이 나왔을 때 싸울 수가 없습니다. 본인들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있으니까요. 말할 자격을 잃어버린 게 큽니다.

권위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문제는 권위는 없는데 권위주의만 남은 거예요. 진짜 권위 있는 사람은 권위주의가 필요 없어요. 사람들이 저절로 존경하고 존중하니까요. 그런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항상 남한테 그런 대접을 강요하는 겁니다. 이런 건 좀 없어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수가 과감하게 개혁의 의제들을 끌어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동개혁 같은 경우 보수에서는 자꾸 민노총을 잡겠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를 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대화 상대로 인식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되는 거죠. 연금 개혁도 ‘우리가 희망을 잃고 좌절해 있는 젊을 세대들에게 미래의 빚을 떠넘길 수는 없지 않느냐, 대타협을 이뤄내겠다’ 이런 어젠다를 던져야 합니다.

또 이번 선거는 역사상 최초로 민주당이 도덕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선거입니다. 이걸 공략하려면 보수가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하고, 그러려면 자기 희생이 필요합니다. ‘국가를 위해 우리가 손해를 보겠다’ 그런 자세를 보여주고, 개혁의 어젠다를 선점한다면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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