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세종과 연산의 갈림길과 후보교체론
스크롤 이동 상태바
[역사로 보는 정치] 세종과 연산의 갈림길과 후보교체론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12.12 14: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신 이익보다 국가 이익 생각해야 할 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후보교체론, 대한민국이 세종이 되느냐, 연산군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사진(좌) 연산군묘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우) 청와대 사진출처=청와대
후보교체론, 대한민국이 세종이 되느냐, 연산군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사진(좌) 연산군묘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우) 청와대 사진출처=청와대

국본(國本), 국가의 근본이라는 뜻으로 대권을 이을 세자 또는 태자를 말한다. 국본을 누굴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국본 결정은 중국의 조공책봉체제 하에서는 중국 왕조의 승인도 얻어야 했다. 중국의 이익에 반하는 인물이 왕위에 오른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태종과 광해군의 국본책봉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대표적이다.

국본책봉은 최종 결정권자가 국왕이지만 신하들도 자신들의 생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변과 사화, 붕당 등 정치적 격변에 의해 집권한 세력들일수록 국본결정에 사활을 건다. 혹시라도 반대 세력이 지지하는 왕족이 국본이 된다면 이는 곧 정치적 사망선고다.

국본교체는 국가의 근본을 바꾸는 일이다. 즉 세자 폐위다. 이는 논의 자체가 국가를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국본교체는 태종의 양녕대군 폐위가 있다. 태종이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집권한 콤플렉스가 있었기에 ‘장자 계승의 원칙’을 세우고자 했지만 결론적으로 본인이 그 원칙을 무너뜨리게 된다.

세자 양녕대군은 국왕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지만 비정한 권력의 속성을 혐오했다. 부왕 태종이 자신의 형과 동생을 죽이면서 집권했고, 즉위 후에도 외삼촌들을 차례차례 참살하는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다.

결국 양녕의 선택은 왕위포기였다. 세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기행을 저지르며 폐위를 유도했다. 태종은 양녕의 폐위를 끝까지 막아보고자 했지만 신하들의 반발이 거셌다. 양녕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녕은 이들의 속내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태종도 절대군주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의 의견을 무작정 반대할 수는 없었다. 왕권안정을 위해 국본교체라는 결단을 내려 세자 양녕을 폐하고, 셋째 충녕을 새로운 국본으로 세웠다. 후일 칭송받는 세종대왕, 바로 그 분이다.

태종의 국본교체는 결과론적으로는 성공작이었지만 신생국 조선으로선 국운을 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만일 세종이 폭군이 됐다면 조선은 대혼란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고려의 유신들이 이 혼란기를 틈타 왕조교체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국본교체에 실패해 국운이 기울어진 비극도 있다. 연산군의 사례다. 성종이 중전 윤씨를 폐위했지만 연산은 ‘장자계승’의 최대수혜자였다. 연산에게는 모친 윤씨의 폐위라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적장자라는 명분이 있었다. 일부 신하들은 연산이 즉위한 후 폐비 윤씨 사건을 알면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깊은 우려감을 표했지만, 정권 최대 주주인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선택은 국본교체 반대였다.

결국 우려대로 연산은 갑자사화를 일으켜 모친의 복수극을 펼친다. 폐비와 관련된 인물들은 무참히 살해됐고, 한명회는 부관참시의 치욕을 당했다. 인수대비도 제 명을 재촉해 사실상 살해당했다. 결국 연산군은 중종반정 쿠데타에 의해 폐위되는 조선 최초의 군주로서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대선이 불과 4개월도 채 안 남았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도 후계자 문제는 치열한 권력투쟁 그 자체였다. 이기붕이 3·15 부정선거를 일으킨 것도 이승만 후계자로서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하는 권력욕이 낳은 비극이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도 2인자끼리의 권력투쟁이 낳은 사필귀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 지지율이 현저히 떨어지면 후보교체론이 제기되기 마련이다. 16대 대선때 노무현 후보 교체론이 대표적이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뒤지자 당내에선 교체론이 적극 제기됐다. 당내 기반이 약했던 노무현 후보는 낙마의 위기에 봉착했으나 정몽준과의 단일화 승부수를 던져 위기를 극복하고 대권을 쟁취했다.

이번 20대 대선은 유력 대선후보들이 각종 의혹이 난무하며 정책이나 인물보다는 ‘정권교체’와 ‘정권유지’라는 이슈에 파묻힌 특이한 선거로 기억될 것 같다. 특히 윤석열-이재명 양강 후보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지지율격차가 벌어질 경우 후보교체론이 거세게 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이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겨야 할 정치인들이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대선 자체가 대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후보교체론, 대한민국이 세종이 되느냐, 연산군이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