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한 죽음의 개혁가 김옥균과 유승민 [역사로 보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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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한 죽음의 개혁가 김옥균과 유승민 [역사로 보는 정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4.03 13:5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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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외면 받은 개혁은 공염불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백성의 외면을 받는 개혁은 공염불과 불과하다. 사진(좌) 김옥균의 유허 사진출처 문화재청, 사진(우) 유승민과 이준선 사진출처 국민의힘 홈피
백성의 외면을 받는 개혁은 공염불과 불과하다. 사진(좌) 김옥균의 유허 사진출처 문화재청, 사진(우) 유승민과 이준선 사진출처 국민의힘 홈피


“아,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

김옥균의 묘비에 적힌 글이다.

김옥균은 조선 말 급진개혁파의 리더다. 그는 어린 시절 달을 보고 “저 달은 비록 작으나 온 천하를 비추는구나”라는 남다른 기개로 주위를 놀래케 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옥균은 어린 나이에 문과 알성시인 과거에 장원 급제해 미래를 보장받았다. 인재는 인재를 알아보는 법.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옥균을 총애했다.

역관 오경석, 의원 유홍기, 승려 이동인 등이 옥균에게 개화사상을 전수한다. 고종의 매제 박영효, 서재필과 조선의 개화를 시도했다. 그들은 조선의 현실에서 동떨어진 일본과 프랑스의 개혁을 꿈꿨다.

고종은 옥균을 아꼈다. 그를 임오군란 직후 3차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파견했다. 옥균에게 일본은 개화의 별천지였다. 일본바라기가 됐다. 옥균은 일본에게 17만 원의 차관을 받아 한성순보를 발행했다. 홍보의 중요성을 깨달은 셈이다. 

고종의 후원을 받는 옥균은 급진개혁의 대명사인 프랑스식 개혁을 주장했다. 개혁자금이 필요했다. 일본이 든든한 우군으로 생각됐다. 일본 정부한테 300만 원의 차관 제공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돈줄이 막히자 개혁 동력도 잃었다. 민비의 후원을 받는 온건개화파가 이를 놓치지 않고 역공에 나섰다. 

고종 정권의 대주주인 민씨 정권의 탄압이 시작됐다. 마침 민비의 후원세력인 청군이 청프 전쟁으로 일부 병력을 철수시켰다. 옥균도 반격에 나섰다. 일본도 군사지원을 약속했다. 박영효, 홍영식, 서재필, 서광범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빌미로 온건개화파를 제거하고 고종과 민비를 구금했다.

김옥균은 스스로 호조참판의 자리에 올라 개혁을 추진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30대 젊은 혈기에 온 천하가 내 세상이 됐다는 자만에 빠졌다. 자신들만의 개혁에 몰두했다. 백성이 간절히 원하던 토지개혁은 외면하고, 자신들의 권력 독점을 위한 제도 개혁에 몰두했다. 

토지개혁 외면은 자신들도 지주출신이기 때문이다. 기득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자신들이 ‘개혁’을 외치면 백성들도 무조건 복명복창할 줄 알았다. 자신들이 언제나 옳다는 독선과 아집이 지배했다. 반면 백성들은 어린 철부지들이 개혁을 명분삼아 신도적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이들을 철저히 버렸다.

신출내기 개혁가 옥균의 비상한 머리 속에는 복병 청나라가 없었다. 물론 일본의 배신도 생각 못했다. 자만이 스스로의 명을 재촉한 셈이다.

조선의 종주국 청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정변 3일만에 원세개의 청군이 창덕궁에 진입했다. 믿었던 일본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옥균은 할수없이 일본으로 도주했다. 조선에 남겨진 정변 동지들은 참살됐다. 옥균의 가족 형제들도 역적이 돼 죽음을 당했다. 

일본도 조선의 역적 옥균이 달갑지 않았다. 조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외지로 떠돌게 한다. 옥균은 일본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청으로 넘어가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려는 시도에 나섰다. 이른바 한중일 삼국이 힘을 합해 서양의 침략에 맞서자는 삼화(三和)주의다. 

민비도 김옥균의 계획을 감지하고 자객 홍정우를 시켜 옥균을 처단한다. 옥균의 시신은 조선으로 송환됐고, 복수의 화신 민비는 옥균을 효수하고, '대역부도옥균'(大逆不道玉均)의 딱지를 붙였다. 후일 옥균의 머리는 한 일본인이 수습해 도쿄의 어느 절에 묻혔다고 한다. 조선의 젊은 개혁가의 최후는 말 그대로 ‘비상한 죽음’만이 기억된다. 

유승민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한때 개혁보수의 기치를 들고 박근혜 정권에 맞섰고, 탄핵을 주도했다. 바른정당을 창당했지만 19대 대선 직전 탄핵동지 김무성 전 의원과 결별해 독자 출마했고 6%대의 저조한 지지율로 4위에 그쳤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을 잡고 바른미래당을 창당했으나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했다. 당시 보수 분열로 민주당 압승에 기여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안철수 대표와 결별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20대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고, 윤석열 후보를 민주당 못지않게 비난했지만 윤석열 대세론에 밀려 3위에 그쳤다.

대선기간 중 윤석열 후보를 돕는 모습은 거의 없었다. 두문불출하던 유승민은 막판에 원팀 유세에 참여했다. 특히 이번에 출마하는 경기도 지역에서 유승민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하지만 유승민은 이제 여당 간판으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서고자 한다. 그가 당선된다면 대선 도전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도를 대선 도전의 디딤돌로 삼으려는 정치적 계산이 엿보인다.

정치인 유승민은 개혁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지만 국민은 유승민의 개혁이 뭔지 모른다. 조선 백성들이 김옥균의 개혁을 외면했던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백성의 외면을 받은 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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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2022-04-04 12:40:11
아~~~ 정치역사에선 그렇게도 볼수 있겠군요. 상당히 흥미로운 시각이네요.

Ooo 2022-04-03 17:00:39
동감합니다. 정치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상대 안하는 유형입니다.

김옥균 2022-04-03 14:37:34
2015년 4월 교섭단체 국회연설 다시 들어보시길. 배신자로 억지로 누명 씌워 얻고자 하는 수십년 징역 중범죄자의 존엄은 실체가 뭔가요. 문재인의 적폐청산과 윤석열의 공정이 뭔지 아는 국민은 있고요?

진연 2022-04-03 14:15:43
참 한심한 칼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