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산업개발 직원들 향한 철퇴, 과연 옳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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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대산업개발 직원들 향한 철퇴, 과연 옳은 일인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3.27 09: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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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 책임' 뒤에 숨은 '진짜 책임자' 겨냥한 처벌 필요해
'惡意' 경영진 엄벌하고, '善意' 직원들에게 '재건의 기회' 줘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A아파트 일부 입주민들은 시공사인 에이치디씨현대산업개발과 조합 간 유착 의혹도 제기한다. ⓒ HDC현대산업개발 CI
국토부가 조만간 에이치디씨 현대산업개발에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에 대한 행정처분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 HDC현대산업개발 CI

문재인 정부가 HDC현대산업개발에 조만간 행정처분을 내릴 전망이다. 현재 정치권과 업계 내에서 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국토교통부가 검토 중인 처분 수위는 HDC현대산업개발이라는 대형 건설사가 순식간에 존폐 위기에 몰릴 만큼 높은 편이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붕괴 참사에 이어 지난 1월 광주 신축 아파트 붕괴 참사까지 거듭해서 대형사고를 야기한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이제는 인재(人災)사고 발생 시 하청업체, 현장책임자, 원청 하위직 등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 원청 기업 자체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시기라는 시대적 요구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대형 참사의 결과를 살펴보면 원청 기업이나 최고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은 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삼풍그룹 회장 등),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청해진해운 대표 등) 등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SK케미칼, 애경산업, 신세계 이마트 등), 2015년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코오롱그룹, 코오롱글로벌 등)처럼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의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인재 책임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 범위를 넓히고, 이를 자연인(自然人)에서 법인(法人)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제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는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사고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경영책임자와 법인에게 내려지는 징역형, 벌금형 등 형벌과는 달리, HDC현대산업개발이 받아야 할 고강도 행정처분은 사고와 전혀 무관하다고 볼 여지가 상당한 일반 직원들에게까지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면허취소 수준의 건설업 등록말소 처분이 떨어진다면 1600여 명(2021년 말 기준)의 HDC현대산업개발 직원 중 대부분이 당장 짐을 싸서 회사를 나가야 한다. 요즘 같은 불투명한 시대에 엄청난 수위의 사회적 형벌이다. HDC현대산업개발과 거래하는 하청업체들을 감안하면 수만 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여기에 그들의 자녀들까지 고려하면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감정에 호소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HDC현대산업개발의 경우는 좀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참사를 유발한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는 건 분명 시대적 요구다. 그러나 거기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한다. 대표적인 부작용이 '개인적 책임'을 피하고 '조직적 책임' 뒤에 숨어 버린 '진짜 책임자'를 놓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정몽규라는 강력한 리더십 하에 건설업을 영위한 업체다. 20여 년 전 현대자동차에서 HDC현대산업개발로 어쩔 수 없이 온 정몽규 회장이 회사에 주입한 핵심 경영철학은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원가절감'이었다. 그가 현대차에서 나오면서 현산으로 데려온 심복들의 철학도 비슷했다. 지난해 기준 HDC현대산업개발의 전체 직원 중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이 차지하는 비율은 45.64%로 10대 건설사 중 가장 높다. 차순위인 업체와는 10%p 가까이 차이가 난다. 또한 정 회장 부임 직후인 2000년대 초반 현대산업개발의 그것과 비교하면 30%p 가량 확대(전체 직원 수는 비슷하다)됐다. 이 같은 정몽규 리더십은 실적에는 확실히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지난해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아파트 붕괴 참사에 따른 손실을 선(先)반영했음에도 영업이익 2734억3512만 원으로 흑자를 냈다. 전년 대비 숫자 자체는 큰폭으로 줄었으나 적자전환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참 놀라운 성적표다.

정 회장의 원가절감 경영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최근 수차례 조직개편을 실시해야 했다. 2018년 정 회장이 '애자일 경영'을 회사에 들여와서다. 애자일(Agile, 민첩·유연한) 경영은 주로 보험업에서 활용되는 기법으로, 조직·절차 등을 슬림·유연화하고 일선현장에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영업팀에게 여러 권한을 집중시켜 영업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영업사원 법인카드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애자일은 실현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HDC현대산업개발은 부서 간 경계를 허물어 현장에 의사결정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명분 하에 기존에 전문 분야별로 분산됐던 인적 자원을 최근 5년 간 4차례나 이동시키고, 통폐합했다. 수주영업본부가 신설되기도 했고, 개발본부와 수주본부가 개발영업본부로 통합되기도 했다. 또한 프로젝트가 생기면 그때마다 TF를 구성해 그 팀이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모든 업무를 보도록 했다.

본지와 만난 복수의 전현직 HDC현대산업개발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상당한 불편과 혼란을 느꼈으며,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나는 일도 늘었다고 했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몇몇 직원들이 임원과 상사들에게 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대부분 묵살됐다고 한다. 여느 건설사들과 마찬가지로 기업문화가 보수적·수직적이라는 영향도 있지만, 애자일 경영 자체가 정 회장이 직접 주도한 사안이고 경영진은 정 회장의 영향력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의 우려대로 건설업은 애자일과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과거 HDC현대산업개발의 사업장에선 목격하기 어려웠던 충격적인 사건·사고들이 애자일이 본격화된 후 매년 터졌다. 2020년 신축 아파트 콘센트 누수 사건, 2021년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그리고 지난해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까지 말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17일 서울 용산 사옥에서 광주 아파트 건물 붕괴사고에 대해 사죄하고 회장직을 사임하겠다느 입장을 밝혔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정몽규 에이치디씨 그룹 회장은 지난 1월 17일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사옥에서 광주 아파트 건물 붕괴사고에 대해 사죄하고 에이치디씨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대형사고를 야기한 기업에 대한 처벌의 진정한 의미는 사고를 조장하고, 위험을 방치한 조직구조와 시스템, 기업문화 개선에 있다. 이번 사안엔 적용되지 않을 전망이나 얼마 전부터 시대역 요구에 부응해 시행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의 조직문화 또는 안전관리 시스템의 미비로 인해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동법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감히 미뤄 보건대, 기업의 조직과 문화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악의(惡意)의 경영진들을 엄벌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해당 기업이 사회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재건의 기회'를 주는 것이야말로 사고 유발 기업에 대한 처벌이 갖는 진정한 의미이리라. 대다수인 선의(善意)의 직원들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건 그 의미와 상충되는, 결코 옳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HDC현대산업개발에 최고 수위에 해당하는 행정처분을 내려도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책임 있는 경영진들 대부분은 앞으로도 잘살 것이다. 또 하나 차려도 되고,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통해 새롭게 정관상 사업목적에 추가하게 될 유통·물류업 등을 아이파크몰과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중심으로 전개해도 된다. 심지어 정 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폭락한 지주사 HDC 주식을 주주가치 제고라는 명분을 앞세워 집중 매수하면서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고, 향후 자녀 경영권 승계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애초에 원치도 않았던,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는 건설업에서 손을 털게 돼 오히려 속이 시원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HDC현대산업개발에서 근무하는 수많은 직원들, 협력사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자녀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험난한 길을 걸을 공산이 크다. 

지난 1월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신을 HDC현대산업개발의 직원이라 소개한 한 청원인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깊이 사과드린다. 나 또한 납득이 가질 않는 현실에 괴롭다. 40년 넘게 피땀 흘려 일군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 가슴이 아프다. 부실시공이라면 당연히 책임을 통감하고 철거·재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존폐 위기에 직면했지만 결코 책임을 회피하진 않을 거라 믿는다. 이번을 계기로 회사도 부족한 부분을 개선할 것이다. 모든 아이파크 현장이 부실한 건 아니다. 내가 아는 현대산업개발은 언론에 보도된 만큼 부실기업이 아닌 기술자의 사명과 신뢰로 노력하는 기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라는 회사 전체에 대한 강도 높은 처분보다는 '조직적 책임' 뒤에 숨어 '개인적 책임'을 피하게 될 '진짜 책임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HDC현대산업개발 구성원들에게는 잘못된 조직과 문화를 수정하고 개선해 '기술자의 사명과 신뢰로 노력하는 기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재건의 기회'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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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2022-03-28 08:50:48
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쓴 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