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의 화신 조광조와 박지현의 586 용퇴론 [역사로 보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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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투쟁의 화신 조광조와 박지현의 586 용퇴론 [역사로 보는 정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5.27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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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은 민생이 중심에 설 때 빛 발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문정공 조광조묘 및 신도비 사진출처: 문화재청
문정공 조광조묘 및 신도비 사진출처: 문화재청

조광조, 조선 개혁의 원조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도학정치로 승승장구하다가 이로 인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요즘으로 말하면 강남좌파의 원조랄까? 덕분에 사림은 조광조의 죽음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권력 장악에 성공했고, 정치적 위기 때마다 잘 활용했다.  

역사는 조광조를 현량과와 위훈삭제로 기억한다. 흔히들 개혁정치의 상징으로 미화된다. 시각을 달리해보자. 권력투쟁의 화신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조광조는 영민했다. 자신의 의지와 달리 졸지에 왕위에 올랐던 중종의 불안심리를 잘 이용했다. 권력기반이 전무했던 중종은 반정 공신들에게 휘둘려 사실상 권좌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현량과는 훈구파의 기득권을 뺏기 위한 인위적인 인사정책이다. 일단 편향적 인사다. 천거를 통해 인재를 등용한다는 명분으로 사림 28명을 대거 선발했다. 인재가 사림에게만 있단 말인가? 진정 개혁 의지가 있었다면 훈구의 젊은 지식인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결국 자신의 입맛대로 세력 확장에 적극 나선 셈이다. DJ정권 시절 운동권 386이 대거 수혈됐던 사례처럼 말이다.

위훈삭제도 마찬가지다. 공신들의 기득권 기반인 위훈은 과거사 청산이다. 실제 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훈구파의 기득권은 조광조에게 좋은 먹잇감이 됐다. 정적 제거를 위한 기가 막힌 프레임을 제공한 꼴이다.

중종도 솔깃했다. 자신을 핫바지로 취급하던 훈구를 혐오했다. 그래도 명색의 왕인데, 신하 주제에 나를 무시하다니. 하지만 중종도 수양대군의 피가 흐르던 전주 이씨였다. 숨겨진 권력 본능이 되살아났다.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떠올랐다. 조광조를 이용해 훈구를 제거하면 된다는 판단도 섰다. 조광조도 점점 싫어졌다. 열등감이랄까? 조광조도 대놓고 자신을 무시했다. 자꾸 자신을 가르치려 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간도 나를 무시하나?하는 자괴감이 분노로 변했다.

조광조는 자신을 개혁의 화신으로 오판했다. 만만한 중종이 자기 말이라면 무조건 '오케이' 할 줄 알았다. 중종이 흔쾌히 위훈삭제를 승인하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썩어도 준치라고 훈구도 발빠르게 반격에 나섰다.

중종은 자신의 권좌가 제일 중요했다. 이번엔 훈구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상 기묘사화를 조종했다. 조광조를 전격 해임했다. 권력은 냉정했다. 이왕 훈구와 손을 잡은 바에 조기에 화근을 없애버리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 달 후 사약을 보냈다. 

조광조는 역사의 패배자다. 개혁은 백성을 위해야지 권력쟁취를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조광조가 실패한 이유다. 명분은 백성이었지만 실체는 권력이다. 도학정치도 민생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리그다.

하지만 사림은 조광조의 죽음을 정권교체 프레임으로 삼았다. 사림은 조광조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훈구파와의 대결에 나섰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사림 300년 천하가 열렸다. 죽은 조광조는 선조 초에 신원돼 영의정이 추증되고, 문묘에 종사됐다. 조선 팔도 곳곳의 많은 서원과 사당에 제향됐다. 죽은 후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싶다. 백성은 더 죽겠다고 하는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는 말처럼 조광조 덕분에 사림은 천하를 얻었다. 반면 조선 백성은 더 큰 도적을 만났다. 사림은 집권 초부터 동인이네, 서인이네 하면서 편가르기를 했다. 얼마 후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었다. 민생보다 도학을 중시했던 정치꾼들이 초대한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요즘 박지현 586 용퇴론이 시끌벅적하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은 친문이네, 비문이네 하면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조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찢어져 싸우던 역사가 오버랩된다.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586 용퇴론을 전격 제기하자 당내 강경파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주로 친문계열이다. 20대 여성 청년 정치인 박지현의 도발이 노회한 기득권층 586을 자극한 꼴이다.

여기서 잠깐, 박지현의 의도도 수상치 않다. 586 제거는 곧 이재명의 당권장악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든다. 결국 권력투쟁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무조건 586이 나가면 국민이 민주당에게 표를 줄까? 이재명 후보도 개혁 대상인 586인데 말이다. 

하지만 박지현 비대위원장은 이재명 후보를 개혁대상으로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용퇴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면  정쟁에 몰두한 기성 정치인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무엇을 위한 586 용퇴인지는 잘 모르겠다. 뜬금없는 사과 퍼포먼스보다는 청년 정치인다운 민생 개혁을 선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개혁은 민생이 중심에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성상납 의혹으로 당 내외 비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당내 정쟁에 더 집중하고 있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호기가 아닌가?

조광조의 실패는 민생보다 도학을 중심에 둔 탓이다. 박지현 위원장이 인적 청산보다는 민생을 먼저 볼 것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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