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사교육’은 바로잡아야 한다 [金亨錫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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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교육’은 바로잡아야 한다 [金亨錫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6.23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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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언급에 기다렸다는 듯이 반기”
“이해 당사자들 조직적 반발 지속”
“대통령 지시 비웃은 킬러 문항 관련자들”
“사교육비 부담에 결혼까지 기피하는 세상”
“애들 볼모로 한 수능 장사 이제 그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형석 논설위원)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연합뉴스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연합뉴스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온 시중의 역설적인 얘기 하나. ”문교부(교육부 전신)가 없어져야 교육이 정상화한다“. 역대 정권의 교육정책이 그만큼 학부모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얘기다.

교통 문제와 함께 교육 문제는 대부분 국민이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당사자다. 그러니만큼 전문가도 많고, 찬반 여론도 항상 뒤끓을 수밖에 없는 분야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의 킬러 문항 배제’ 등을 언급하자 이번에도 예외 없이 찬반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번에는 야당의 반대와 함께 특히 사교육 분야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재미를 봐온 세력들의 조직적인 반발까지 더해져 반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윤 정부의 교육개혁이 어느 정도 예고돼온 터라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부작용의 ‘가능성’을 들이대며 수험생들을 겁주고 있는 중이다. 그들의 말대로 요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초토화되고 있다. 尹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

대통령 지시 비웃은 ‘이권 카르텔’의 실체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전년보다 10.8% 늘어났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초등생이 37만2000원, 중등생 43만8000원, 고등학생 46만 원이었다. ‘사교육비가 괴물처럼 커졌다’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고 애 키우기 겁나서 결혼 못 하겠다는 청년들의 하소연도 엄살이 아닌 셈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사교육 실태 파악에 나서게 된 이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80년대 이후 이른바 8학군의 유리한 고지 위에 일타강사 또는 학원재벌로 일컬어진 머리 좋고 수완 좋은 사람들이 이 동네를 ‘학원 성지’로 일궈왔다. 80년대 이후를 통과해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이라면 대개 아는 이름의 유명인들, 유명 학원들이다.

80년대 학번이 대부분이고 학생운동을 열렬히 해 당시 정부의 사찰을 받았던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갈팡질팡하던 교육정책의 와중에서 지옥 같은 대학 입시를 일컫던 ‘죽음의 트라이앵글’ ‘죽음의 사각형’같은 말들이 수험생들 간에 회자되면서 이들은 더욱 명성과 몸값을 올려왔다. 이들이 여전히 사교육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 야권과 합세해 윤 정부의 교육개혁을 저지하려는 중추세력이다. 정부가 이들의 조직적인 저항 사례와 함께 이권 카르텔의 실태를 조사했다고 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교육 실태에 관한 보고를 받고 지난해 말 교육부에 킬러 문항을 내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올해 3월, 4월 모의고사에 여전히 킬러 문항이 나와서 대통령이 질타하자 정책이 갑자기 바뀌면 혼란이 오니 차츰 조절하겠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윤이 다시 교육부에 6월 모의고사에 킬러 문항을 절반으로 줄이고 9월 모의고사에선 또 그 절반으로 줄이고 11월 수능에선 완전히 배제하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그러나 6월 모의고사에서 여전히 똑같은 비율로 킬러 문항이 나와 교육부 정책국장이 경질됐다.

당국은 일부 킬러 문항 생산자들이 수능 시장에서 상당한 이권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사당국의 조사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가 나오자 이들은 ”애들만 불쌍하다“라고 여론을 띄우며 반발했다. 그러나 인터넷 댓글에서 많은 ‘불쌍한’ 학생들이 오히려 이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들이 킬러 문항이 아니라 다른 사교육 개선 정책이 나와도 가로막을 세력, 즉 ‘사교육 이권 카르텔’로 분류하고 있다.

일타강사 하면서, 킬러 문항 장사하면서 그만큼 벌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학생들을 볼모로 언제까지 더 장사를 계속할 심산인지!

교육 개혁은 지금 당장도 이르지 않다

킬러 문항 배제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 대표 측은 그에 대해 그러긴 했지만 ‘시일을 두고’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고 말한다. 맞는 해명이며 윤 측의 해명도 그와 비슷하다.

그러나 마냥 늦출 수도 없는 게 모든 분야의 개혁이다. 수능 5개월 앞둔 시점에 혼란 준다면, 6개월 앞둔 시점에는 괜찮나? 7개월, 8개월… 통상적으로 말하는 1년 앞둔 시점의 발표 역시 혼란 시비는 나오게 마련이다. 성격은 좀 다른 얘기로, 김영삼 정부가 전격 실시했던 금융실명제가 당시에는 작지 않은 파장과 혼란을 가져왔지만 우리의 금융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큰 기여를 했던 점을 기억한다.

사교육 시장의 병폐와 부작용이 거듭거듭 확인돼 그 개선이 긴요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면 바로잡는 일은 당장 해야만 한다. 더욱이 그 사안이 정규 학교 과정에서 취급되지 않은 것들을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당연한 주문이라면 늦출 이유가 없다. 변별력, 고난도의 재설정 같은 문제는 출제진들이 고민하고 연구해서 풀어내야 할 부수적인 사항일 뿐이다.

그렇지만 윤 정부의 지속적인 홍보 부족은 이번에도 지적받을 일이다.

한국의 맹모들과 ‘개천 용’

한 조사에 따르면 만 0~6세 영유아 중 20% 이상이 학원에 다니고 12%는 학습지 공부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벌이 부부와 친가 외가의 할머니 할아버지 등 온 가족이 동원돼 어린이들의 학원 등하원을 뒷바라지한다. ”뒤처질까 봐 할 수 없이 학원에 보낸다“며 비용도 부담스럽다고 털어놓는다. 돈은 돈대로 들이고 어린이들을 때이르게 사교육 현장으로 내몰아 뛰어놀지도 못하게 하는 꼴이다. ‘강남’이 중심이 돼 사교육을 리드해온 결과다.

우리의 대단한 교육열이 국가적 성취에 큰 뒷받침해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젠 지나친 열을 좀 식힐 때도 됐다. 제주도에서 서울의 학원에 보내기 위해 매주 항공기를 탄다는 학생, 강남 아파트 전셋값으로 일생 모아둔 돈을 쏟아붓는 지방민들, 과밀한 환경이기 때문에 마약 등의 유혹에 더욱 빠지기 쉬운 청소년들, 터무니없는 강남 아파트값 등… 부작용이 이쯤 됐으면 이제 비정상적인 교육열은 조금 가라앉힐 때도 됐다. 복잡해진 21세기 한국에서 모든 어머니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따라 하겠다니 부작용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또 있다. ‘머슴과 가난한 소작농’의 똑똑한 아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받을 찬스를 되도록 많이 열어주는 게 좋은 나라다. 그게 빌 게이츠 등이 주장하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방법 중의 하나기도 하다.

개천에서도 용이 나오는 시대를 다시 열어보자고 하면 철 지난 소리 한다며 비웃을 가짜 진보 정치인들. 그들에게 정책 당국자들이 휘둘리며 또다시 교육 개혁이 흐지부지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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