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 먼저 잡아줬던 문재인 대표는 어디로 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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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 먼저 잡아줬던 문재인 대표는 어디로 갔나요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5.11.09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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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文, 자존심·체면·당대표 권위 모두 던지고 손 내밀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늘 기자회견 내용에 대한 질문만 해 주세요. 다른 사안 관련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민생 관련 기자회견'이 열린 지난 8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 분위기는 갑작스레 추워진 바깥 날씨만큼 적막하고 쓸쓸했습니다. 홀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는 문 대표는 무척 외롭고 힘겨워 보였습니다. 문 대표의 곁에는 김성수 대변인만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당직자들은 취재진들에게 질문을 잘 고려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제1야당 대표가 직접 주재하는 기자회견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기자는 회의실에서 만난 한 친한 당직자에게 '다른 의원님들은 참석 안 하시나 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말이니까 다들 지역구 행사로 바빠서…"라고 답했습니다. '국정교과서 저지-민생 살리기 투트랙으로 가겠다고 당대표가 공식 선언하는 자리인데 너무 허전하다'고 재차 묻자, 그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하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사실 이날 기자회견은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민생 경제 살리기 투트랙' 천명뿐만 아니라, 문 대표에게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국정교과서 정국으로 잠시 주춤했던 비주류는 최근 들어 전열을 가다듬고 문 대표를 향한 공세를 다시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당 최고위원회의 모든 권한을 이양 받은 통합선거대책위원회를 조기에 발족시켜야만 차기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문재인 체제'로는 당의 미래가 어둡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문 대표의 기자회견은 마치 이에 맞불을 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를 흔들려는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며 '마이웨이'를 선언하는 것 같았습니다.

비주류는 당연히 발끈했습니다.

비노(비노무현)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의 보좌진은 지난 8일 문 대표의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기자회견문을 읽어봤는데 '어떻게'가 없잖아요. 이렇게 애매한 구호로 '어떻게' 총선 승리를 이끌 수 있겠어요"라며 문 대표를 비판했습니다.

당내 비주류 모임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민집모)' 소속 문병호 의원은 9일 MBC<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문재인 대표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비전과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 대표 자리를 맡기시라"며 날선 발언을 했습니다.

비주류의 본격적인 십자포화가 조만간 문 대표에게 쏟아질 것 같네요.

문 대표는 이날 국회 근처에 있는 한 중식당에서 같은 당 4선 이상 의원들과 오찬 회동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는 문희상, 박병석, 이미경, 김성곤 등 '범친노'라 불리는 중진 의원들이 참석했는데요. 이들은 문 대표에게 '당의 단합을 위해서 좀 더 확실하게 노력해 달라'는 취지의 말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한데, 문 대표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는 후문입니다. 문 대표는 지난 8일 '민생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통합선대위는) 때가 되면 얘기해야 하지 않겠느냐. 선거는 내년 4월이다"라며 말을 아꼈는데요. 아마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다소 아쉽습니다. 문 대표는 지금 '독불장군' 행보를 이어갈 때가 아닙니다. 홀로 기자회견문을 낭독할 게 아니라, 다른 의원들과 함께 번갈아가며 읽을 때입니다. 말을 아낄 게 아니라 진심을 담은 호소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맞불을 놓을 게 아니라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

▲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하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 시사오늘

문 대표는 리더십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지언정 훌륭한 인품만큼은 정치권에서 소문난 사람입니다. 저 역시 문 대표의 인품을 직접 느껴본 적이 있었는데요. 2014년 여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일입니다.

기자는 세월호 참사 관련 취재를 위해 광화문 광장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햇병아리에 불과한 저는 어디서,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한편에서 '유민 아빠' 김영오씨와 문 대표가 동반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지만 천성이 낯가림이 심한 데다,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그곳에는 가까이 다가갈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큰 언론사에서 일하는 수습기자들 한무리가 문 대표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선배기자가 수습기자들에게 문 대표를 소개시켜주려고 광화문을 찾은 것이었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움직이더군요.

타 언론사 수습기자들을 향해 반갑게 웃음을 보이던 문 대표가 갑자기 뒤쪽에 서성거리고 있던 저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뭘 그렇게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어요"라며 기자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습니다. 문 대표는 "열심히 하시라"며 제 어깨를 두드리고서야 타 언론사 수습기자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문 대표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저로서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기자는 문 대표의 이 같은 모습을 국회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근거 없이 자신을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더라도 먼저 손을 건네고, 악수를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을 살릴 수 있습니다. 설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세울 명분이 있습니다.

'당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는 2·8 전당대회 슬로건이 허언이 되지 않으려면 자존심이나 체면, 당대표의 권위 따위는 모두 던지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기자의 손을 먼저 잡아줬던 문재인 대표를 찾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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