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窓] 음식 맛 단상(斷想)
[사색의 窓] 음식 맛 단상(斷想)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02.14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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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소통을 위해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해졌다지만 역설적이게도 ‘먹을 게 없는 세상’이 요즘이기도 하다. 식당에서 차려 내는 음식은 각양각색인데, 혀를 자극하는 음식이 대부분인 것 같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맛없는 것들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식도락가의 높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음식 맛의 비결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손맛에 달려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어린 시절 집에서 밥을 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당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라 밥을 사 먹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외식은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고기는 명절 때를 빼곤 구경하기 힘들었다. 보리밥에 반찬은 주로 김치와 된장, 마늘장아찌 등이었는데, 그것들은 어머니가 밭에서 키운 농작물로 만든 것이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참살이(웰빙) 음식인 셈인데, 당시엔 그것이 왜 그렇게 먹기 싫었던지 모르겠다. 

▲ 논밭의 콩이 된장이 되기까지 수천 번의 손길이 더해졌을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러기에 된장은 기다림과 정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메주와 된장·간장 만들기는 어머니의 변하지 않은 중요한 연중행사 중 하나다. ⓒ 인터넷커뮤니티

바깥에서 사 먹는 음식은 쉬 질린다. 경제적인 잇속을 앞세우다 보니 음식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손님의 입맛을 사로잡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식당 주인이 인공 조미료를 많이 쓰는 것도 음식의 참맛을 잃게 한다. 외식을 하면 할수록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사랑과 정성이 담뿍 들어간 음식은 우리 몸에 보약이 된다. 지금껏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준 음식 덕분이리라. 시간이 갈수록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어머니가 담근 된장과 간장, 참깨를 넣어 무친 나물이며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여낸 된장찌개를 먹어보고 싶다.

수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 영화 ‘슈퍼 사이즈 미’로 참가한 미국 영화감독 모건 스펄록(Morgan Spurlock)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패스트푸드로 죽어가는 미국 사회를 담고 싶었다”는 그는 자신이 감독한 작품에서 한 달 동안 맥도널드 제품만 먹으며 어떻게 몸이 망가지는지를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살이 12kg 쪘고, 콜레스테롤 수치 급상승, 심장 이상 등 온갖 질병이 몰려왔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그는 “편리함을 가장한 완성식품들이 삶을 망치고 있다. 다시 가정의 부엌으로, 식탁으로 돌아가자.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음식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강조해 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귀가가 늦는 가족을 위해 어머니는 된장찌개와 밥을 아랫목 이불 밑에 넣어 두셨다. 음식이 혹 식을까 노심초사하며 딸 아들을 기다린다. 바깥 날씨가 추워질수록 된장찌개와 밥의 온기는 오히려 더 높아 갔다.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다.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를 앞에 둔 딸 아들이 착한 마음으로 정직한 일을 하리라 믿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가 음식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음식의 맛은 만든 이의 정성과 손맛에 좌우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무엇으로’보다는 그것을 요리하는 사람, 즉 ‘누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랑이 넘치는 맑은 마음에서 좋은 음식은 나오게 마련이다.

가족에게 최상의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마음이 최고의 음식을 창조해 낸다고 할 수 있겠다. 만든 이의 정성이 묻어나는 음식이 한둘 아니겠지만 된장찌개만큼 매력적인 음식은 보지 못했다. 노랗게 삭은 황금빛 색깔에 어우러진 달콤 짭조름한 된장의 맛은 신비로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어느 한 순간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만 온전한 맛을 드러내는 게 된장이다. 논밭의 콩이 된장이 되기까지 수천 번의 손길이 더해졌을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러기에 된장은 기다림과 정성이 더해지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그 효능은 엄청나다. 된장은 나쁜 콜레스테롤의 체내 축적을 막고 혈액 흐름을 원활하게 해준다. 그뿐 아니다. 항암 작용을 하고 고혈압 완화에 효험이 있다. 

쫙쫙 갈라지는 몸뚱이에 파랗게 곰팡이가 슨다. 중요한 작용을 할 이로운 곰팡이다. 이듬해 새 봄, 메주는 소금물에 오랜 시간 잠겨 아름다운 변신을 준비하게 된다. 머지않아 된장과 간장으로 태어날 것이다. 메주와 된장·간장 만들기는 어머니의 변하지 않은 중요한 연중행사 중 하나다.

문득 찾아드는 자신감 상실과 도시생활의 무미건조함. 된장찌개 한 그릇은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살아가는 데 위안이 될 수 있다. 올해도 어머니는 변함없이 자식에게 된장과 간장을 내어주신다. 손자 손녀의 건강까지 기원하면서.

간절한 희망을 품어본다. 어머니의 손맛, 가마솥에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던 그날이 박물관 속 유물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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