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현의 사람과 법>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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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현의 사람과 법>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 안철현 변호사
  • 승인 2014.12.02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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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철현 변호사)

검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위의 무게만큼 부담도 큰 직업이다. 고소인의 억울함도 들어줘야 하고, 고소당한 사람의 주장도 들어줘야 한다. 그 중간에서 무게중심을 잡아 판단해서 기소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누군가를 처벌한다는 것은 한 사람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함으로써 한 사람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니 그 부담은 배가 된다. 어찌 보면 일정기간 만큼일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니 단순히 권력이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러니 고뇌의 밤들을 수도 없이 세워야 하는 등 심리적인 압박 또한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안을 들여다보면 아쉽고, 답답한 점이 곳곳에 숨어 있어 이 또한 그대로 외면하기 어렵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검찰이 코걸이나 귀걸이를 만들어 파는 잡화상도 아닌데, 자주 듣는 볼멘소리다. 한 번쯤 겪어 본 사람도 있을 테고, 최소한 들어는 봤음직한 소리다. 수많은 사건 중에서 재산범죄, 특히 이놈의 사기죄라는 놈 때문에 이 잡화상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해 요구하고 있는 “갚을 의사나 능력도 없이”가 문제의 발단이다.  법률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데서 오는 한계도 있거니와 사람의 내심을 밝히는 문제라 더더욱 어렵다. 결국 결정적인 물적 증거보다는 정황적인 증거나 사정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주로 돈이 오가는 곳에 사기죄가 등장할 가능성이 많은데, 특히 여러 사람과 사이에 돈이 오가다 돈을 받고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고소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 사건은 여러 개의 사건으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다. 깊숙이 들어가 보면 유사해 보이는 경우에도 각각의 사건은 사정은 똑같을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의 시각은 대부분 하나로 본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 여러 사람이 고소하는 케이스에서 먼저 조사해서 기소된 것이 있으면 나머지 사건도 앞선 기소를 근거로 큰 고민 없이 동일한 처분을 한다. 다시 말해 그 별개의 사건을 따로 떼어 면밀히 조사하기 보다는 선례를 가지고 거기에 끼워 맞춰 조사하고 그 선례는 다른 사건의 증거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된다. 어찌 보면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리라.

이를 판단하는 법원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피고소인이 부당하다고 따지면 검찰은 “들어보니 사정은 잘 알겠지만 선례가 있으니 기소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니 법원에 가서 억울한 점에 대해 재판 잘 받아 보라”고 친절히(?) 알려준다. 많은 검사들이 공공연히 그렇게 말한다. 

자신이 독립적이고 소신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편하게 끼워 맞춰 조사해서 기소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한다. 좀 어처구니없어 보이긴 하지만 자신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먼저 기소한 검사의 눈치? 아니면 상사의 눈치?  고소인의 눈치?  왜 이 부분을 문제 삼느냐 하면 실제 그렇게 해서 기소한 사건이 무죄선고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검사의 머리 한가운데에는 “나는 일단 선례가 있으니 기소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이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재판을 잘 받아 해방되어 보라“는 무책임한 심리가 짖게 깔려 있다.  마치 한편으로는 ”난 잘 모르겠고, 법원에서 알아서 판단하겠지“라는 생각이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고통을 받는 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대한민국의 검사들이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상명하복의 구조, 권력의 힘, 불합리한 인사시스템과 턱없이 부족한, 아니 아애 존재하지 않는 법철학 등의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 인력부족 등이 굳건히 버티고 있으니 왜곡된 현실은 금방 바뀌지 않는 것이리라. 

그래서 정의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고, 정의가 존재하더라도 너무 멀리 있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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