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 프레임] “나는 왜 변절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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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 프레임] “나는 왜 변절자가 됐나”
  • 윤진석·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3.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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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이인제로 본 변절자 이야기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한설희 기자]

변절한 철새인가, 기득권을 버린 소신일까. 따스한 둥지나 양지를 쫓으면 기회주의고, 한(寒)데로 가면 소신일까? 야(野)에서 여(與)로 가면 변절이고, 여(與)에서 야(野)로 가면 소신일까.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당적도, 험지도 마다하지 않으면 소신이고, 살려고 가면 이합집산의 모리밴가. 시류를 타고 변신하면 기회주의이고, 지조를 바꿨으니 변절일까?  믿음을 저버리면 배신인가. 전향이라 하지 않고 변절이라 하는 멍에는 누가 씌운 걸까. 시대는 바뀌는데 내 이념과 가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면 지조있는 정치인일까? 의리를 지켰다면 절개인가.

※가치 판단은 각자가 함을 전제로 묻는 얘기들이다.
 

왼쪽부터 이인제 ·금태섭 ·김병준 ·김태호 홍준표ⓒ그래픽=시사오늘
변절자, 혹은 철새라는 프레임은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굴레일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이인제 ·금태섭 ·김병준 ·김태호 홍준표ⓒ그래픽=시사오늘

 

여기 얼굴들이 있다.

‘금태섭, 김병준, 김태호, 홍준표 등….’
 
4·15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했거나 혹은 출마했지만 배신자 공격을 받는 이들, 무소속으로 출마를 결심한 정치인들이다.

 

1. 변절의 기록



상기하며 이런 생각을 던진다.

누군가 당신에게 변절자 프레임을 씌운다면, 그것은 당신이 거물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이기 때문이다. 위협적인 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유로워져라. 그리고 이겨라. 지면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어떻게 곤란해지나.

‘안철수 vs 이인제’

평행이론을 통해 조명해본다.

그 전에,

변절이라는 도마 위에서 얽매여왔던 이들이 있다. 올가미에 걸려 허우적댔던, 거미줄에 걸려 진이 빠졌던 경우다. 진짜 변절인지, 프레임에 걸린 피해자인지 논쟁의 중심에 서 왔다. 변절을 둘러싼 논란의 이름들, 두서없지만 몇몇 나열하면 이렇다.

조선시대, 변절 논란의 대명사는 계유정난의 신숙주를 들 수 있다. 현대사는 또 어떨까. 보통은 진영과 진영 사이에서 변절자 논란은 쟁점이 돼왔다. 이승만 남한 단독정부에 합류한 조봉암 선생도 공산 진영의 변절자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민주화·노동 운동가 대부급에서 사상을 전향한 ‘이재오·김문수’를 비롯해 ‘심재철·하태경’, ‘강철서신 김영환’ 등도 기존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공세를 받았다.

같은 진영 내부에서 쓴소리를 해 변절자 공방에 선 이들도 부지기수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부의 조국 정국을 맞아 작심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십자포화를 퍼붓는 쪽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알아야 변화도 가능한 거라는 반박도 전해진다.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얼마 전 본지와의 대화에서 “사상적 전향이 뚜렷하지 않으면 전향도 없다”고 했다.  이현종 <문화일보>논설위원도 “실체를 알기에 노선도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들려줬다. 사상 전향 소신파들에게 변절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지적이었다.

 

2. 선거 프레임?



선거철일수록 변절자 공방이 쟁점이 될 때가 많다. 92년 대선 당시 DJ(김대중)는 삼당합당 한 YS(김영삼)를 향해 변절자라며 심판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도 같은 진영 내에서는 변절자 지적을 받았다. 시장경제 옹호의 ‘뉴 DJ플랜’이 우클릭 도마에 오른 까닭이었다. 마치 故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 협정이나 대연정 제안 등으로 진보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성토를 받았던 것과 비교될 수 있겠다. 15대 대선에서의 DJP(김대중+김종필) 연대 또한 양 진영 일각에서 보면 변절자 논란의 대상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정몽준 전 의원은 우파 진영으로부터 변절자 공격을 받았다. 민주당에서는 김민석 의원이 “이기는 선거를 위해 간다. 단일화에 노력하겠다”고 정몽준 캠프로 간 것이 지금까지 철새 논란의 족쇄로 이어지고 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노선 차이의 이유로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대표, 개혁 노선의 명분으로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한 독수리 5형제(이우재·이부영·김부겸·안영근·김영춘) 등에도 남은 자들로부터의 따가운 시선 등이 보내졌다.

2012년 동교동계의 한광옥·한화갑·김경재 전 의원, 김지하 시인 등이 박근혜 대선후보를 지지할 때도 변절자 돌팔매는 날라 왔다. 민주당에서는 송호창 의원이 안철수 대선캠프로 갔을 때가 그랬다. 2015년에는 정동영 의원이 4·29 재보선에서 당적 변경 등의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6년 총선에는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이 친박(박근혜)으로부터 배신자로 몰렸다. 진영 의원의 경우 야당(민주당)으로 넘어가 비난을 들었다. 김종인 전 대표도 철새 비판을 들었다. 2017년 장미 대선에서는 안희정 당시 충남지사가 보수당과의 대화와 타협, 대연정을 띄우자 친문(문재인)으로부터 변절자 포화를 받았다.

일부만 나열했을 뿐인데도 적잖은 이들이 언급됐음을 알 수 있다. 이중 태반은, 억울한 입장일 것이다. 모두 ‘변절이냐 vs 소신이냐’로 나눌 때 소신을 택했다고 할 것이다.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를 해왔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철새는 아니라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나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있는 거물일수록 상대 진영이나 내부 정적으로부터 맹렬한 공세에 직면했다.
 

이인제 전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변절자 프레임의 피해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두 정치인이 공격받은 궤적을 보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안기고 있다.ⓒ뉴시스
이인제 전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변절자 프레임의 피해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두 정치인이 공격받은 궤적을 보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안기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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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행이론



대표 거물급 중 아직 언급되지 않은 이들이 있다.

‘이인제 vs 안철수’

한 명은 철새 논란의 아이콘으로 불려 왔다. 13개의 당적 변화 등을 통해 정치적 부활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는 항간에 퍼진 사쿠라 논란으로 정계 입문 뒤 내내 곤욕을 치렀다. 평행이론이 있다면, 두 정치인의 궤적을 비교할 수 있다는 견해다. 프레임 논란의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이유에서다.

‘이인제의 그때.’

철새 논란의 시발점인, 이인제 전 의원(이하 이인제)의 그때(97년 대선)를 확대해본다.

“(97년)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전당대회 직후 이회창 지지는 40%대에서 최고 50%대였다. 야당인 김대중 총재보다 20% 앞섰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했다. 두 아들 병역 논란 문제 이후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전당대회 끝난 지 한 달여 만에 지지도는 10%대로 급감했다.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는 30%대를 유지했다. 97대선 구도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운 혼미한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이는 YS 회고록이다.

이인제는 이회창 후보(이하 이회창)로부터 당내 경선에서 지고 깨끗이 승복해 경기도정에 복귀한 상태였다. 하지만 왜 당을 나가 독자출마할 수밖에 없었을까.

윤재걸 정치평론가에 따르면 이회창 지지율은 전당대회 경선 후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50%대에서 급락해 10%대를 4개월 동안이나 유지한 것이다. 원래 후보 경선 등을 하는 이유는 체급이 높은 주자를 가려 정권 창출을 하는 데 목표가 있다. 신한국당은 이 바람이 무망해지고 있는 터였다. 전략상 후보 사퇴나 후보 교체 등이 현실화 방안으로 논의돼야 했을 것이다. 이인제 역시 지도체제를 개편하고 당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개혁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인제로서는 도저히 당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어 부득이 탈당, 직접 국민에게 호소해 선택을 받고자 했다. 이 후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 여론과 자질 시비가 도를 넘어 절망적인 상태로 갔기 때문에 하나의 대안으로써 나섰던 것이다. 집권당을 지지하고 정권 재창출을 갈망하는 많은 지지자들의 후보 선택권에 부응하고자 함이었다.”
- 윤재걸, <엽기공화국> 발췌-


이인제 스스로도 본지와의 전화통화(26일)에서 구국의 결단이었음을 피력한 바 있다. “경천동지 할 변화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때 나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독자출마 후 이인제의 파급력은 어땠을까. 윤 평론가의 자료 조사에 의하면 그해 10월 <조선일보> MBC <한국갤럽>공동조사에서 DJ에 이어 2위로 뛰어올랐다. 중도보수 성향의 표밭에서는 이미 이회창을 앞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위력은 얼마 가지 못했다. 윤 평론가는 “이회창 지지자들은 ‘국민신당(이인제 당) = YS 신당’ , ‘청와대 200억 지원설’ 등을 뿌렸다”며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로 지지율은 급락했다”고 말했다.

이인제가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회창이 됐을 거라는 얘기들은 지금까지 나온다. 강경파에서는 보수를 패하게 한 변절 사(史)의 한 기록으로 술회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도 도출될 수 있겠다. 

‘만약 신한국당 후보가 교체돼 이인제가 나갔다면 누가 이겼을까? 또 기득권을 버리며 탈당 후 자신의 가치를 지킨 자에게 변절 여부 등 철새 논란의 꼬리표는 부당한 것이 아닐까.’

 

4. 사쿠라 논란


‘안철수 그때.’

참고로 보통 당명에 ‘국민’을 달고 나오는 정당들이 있다. 스펙트럼은 넓은데, 조직적 기반은 약한 대선주자들이 주로 창당한 정당들이다. “국민이 뒷배가 돼주세요”라는 호소가 반영돼 있기도 하다. 세력으로 판가름되는 정치권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인제의 국민신당’처럼 안철수 대표(이하 안철수) 정당도 ‘국민의당’이다. ‘정몽준 국민통합 21’ ‘정주영 국민당’등 ‘국민’이 들어간 이유일 듯하다.

안철수 역시 변절자 뜻의 은어인 ‘사쿠라’논란에 휘감긴 바 있다. 2012년 대선 야권 단일화 경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2016년 탈당, 2017년 장미 대선 등…. ‘드루킹 댓글 조작 공격 의혹’등에서나 ‘MB(이명박) 아바타’ 등 사쿠라 논란에 시달려온 것이다. 특히 장미 대선 때는 ‘87년에 노태우가 됐듯 안철수 찍으면 홍준표 된다’ 등의 얘기가 호남을 중심으로 돌기도 했다. 지난 1월 귀국 후에도 ‘철새 정치’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북한의 선전매체까지 “박쥐도 무색케 할 변절과 배신의 행적”이라고 몰아갈 정도였다. 일련의 궤적이 이인제를 향한 공격 프레임이 연상되는 이유다.
 

21대 총선에서 내부 진영으로부터의 비토로 인한 공천 탈락, 당적 변경, 무소속 출마 등이 잇따르면서 다시 변절 프레임이 씌워질지 모른다는 견해도 나온다.ⓒ그래픽=시사오늘
21대 총선에서 내부 진영으로부터의 비토로 인한 공천 탈락, 당적 변경, 무소속 출마 등이 잇따르면서 다시 변절 프레임이 씌워질지 모른다는 견해도 나온다.ⓒ그래픽=시사오늘

 

5. 4·15 논쟁



21대 4·15 총선에서도 무시 못 할 체급을 가진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변절자 프레임이 생기는 분위기다. 反문을 위해 뭉친 미래통합당 김병준 세종을 후보도 그중 한명이다. 민주당 측에서 노무현 정부의 관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변절자 ”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전 대표나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향해서도 변절자 프레임이 가해질 조짐이다. 통합당 내 컷오프 후 반발하자, “기득권 유지를 위해 탈당하려는 것”이라며 분열 획책의 책임을 물고 있다.

하지만 “그게 왜, 이들의 잘못이냐”, 공천 시스템의 문제라는 일갈도 나온다.

강상호 국민대 교수는 지난 26일 통화에서 “몇 년 간 지역 관리를 잘 해온 주자들에게 경선의 기회도 주지 않고 공관위 단독 결정으로 컷오프 한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뒤이어 “배신자로 모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타 논란을 떠나 정무적 관점에서, 패착이라는 관점도 있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홍준표나, 김태호 등은 차기 대권주자 급의 자기 세력을 가진 중진들”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과거 16대 총선에서 이회창이 김윤환 등 중원의 수장들을 배척해 대선에서 패했던 것을 황교안 대표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상징적 정치인들에게는 공천을 줘야 세력이 모아지는 것”이라며 “단일화 제안 등 통합 메시지를 띄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련의 상황을 볼 때, 그러면 정치 거물들에게 유독 변절자 논란이 많은 이유는 뭘까.  “정치적 패배자에 씌워지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즉 “주도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정적을 없애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나오는 프레임 아니겠느냐.” 정 평론가의 분석이다.

한편, 이번 총선에서도 분당, 합당, 재창당, 당적 변경 등의 숱한 행보들이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통합당으로 간 안철수계 등을 향해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듯하다.

떠난 자들은 어떤 입장일까. 이동섭 의원은 근래 서면답변에서 “여전히 나는 안철수맨이 맞다 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실정을 호도하는 문 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뭉친 대승적 결단이 이합집산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수민 의원도 발끈했다. “전후 맥락을 고려치 않은 반대 세력의 정치 공세일 뿐이다”, “안철수 대표 뜻인 중도개혁 실용 노선의 확장을 위해 결합한 것이다” 는 일축이었다.

떠나보낸 측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 대한) 변절자 공격은 말도 안 된다”는 얘기였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은 최근 이와 관련, “안 대표께서 이미 격려한 바 있듯 훗날 더 큰 길목에서 만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변절자는 존재할까.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정 평론가는 “변절자는 권력을 좇는 해바라기 같은 정치인들을 두고 쓰여 왔다”고 했다. 다만 “박정희 독재 정권 등에서는 있을 수 있겠지만,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는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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