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인터뷰] 신지호 “YS처럼 정치하면 국민통합 된다”
[풀인터뷰] 신지호 “YS처럼 정치하면 국민통합 된다”
  • 윤진석·조서영 기자
  • 승인 2019.10.2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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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호 전 국회의원
“뉴라이트 본래의 가치는 자유주의 계승 발전”
“국정교과서 추진 사망선고받아…사실상 소멸”
“유랑 보수와 유랑 진보 간의 공동의 장 필요해”
“분권과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 시스템 돼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조서영 기자)

뉴라이트는 386의 분화로 시작됐다.  386은 1960년대 태어나 전두환 정권 당시인 80년대 대학을 다녔다. 거리 곳곳 최루탄 시위에 익숙한 그들은 현재 50대가 됐다. 또 다른 말로 586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변해왔다. 현재 좌우 진영 모두에 포진돼 있다.

다시 우파 쪽에 선 뉴라이트를 보자. ‘올드라이트 vs. 뉴라이트.’ 구우파인 올드라이트가 반공이라면, 신우파인 뉴라이트는 자유주의다. 자유한국당을 기준으로 치면 반공 중심의 올드라이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자유주의 중심의 뉴라이트는 이명박(MB)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처음엔 이처럼 대조를 이뤘다. 그러나 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문재인 정부로 넘어오면서 뉴라이트 계열은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박정희가 연상되고 마는 반공이라는 그림자가 짙게 가미된 느낌이다. 거기다 혹자의 진단대로 친일프레임에 발목이 잡혀 더욱 혼재된 모습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한국당의 이념적 가치가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치 한국당 당사에 걸린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양새에 비교될 수 있겠다.

이런 관점에서 올드라이트와 보수우파에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이는 뉴라이트의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사의 보수란 무엇인지, 그 뿌리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뉴라이트 대표주자이자 포스트 뉴라이트를 모색하는 정치평론가 신지호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광화문 모처에서 가졌다.
 

신지호 전 의원은 뉴라이트가 주축이 돼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지만 그 순간 뉴라이트의 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뉴라이트가 주축이 돼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지만 그 순간 뉴라이트의 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뉴라이트의 태동>
“올드라이트 vs 뉴라이트
반공 아닌 자유주의 가치”

- 뉴라이트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존 보수우파와는 뭐가 다른가.

‘자유주의를 철학으로 하는 새로운 보수.’ 서구에서 얘기하는 자유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보수여야 한다는 거였다 기존 보수가 반공주의 또는 국가주의에 기반 한 보수였다면 뉴라이트는 새로운 보수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초점을 뒀다.

- 뉴라이트의 태동은 어디서부터로 볼 수 있나.

“시작은 2004년 말 자유주의연대라고 하는 단체가 출범하면서부터다. 크게 1‧2‧3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노무현 정부, 2기는 이명박(MB) 정부, 3기는 박근혜 정부 때다. 뉴라이트 경우 자유주의가 우파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유한국당(당시 한나라당)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 전 의원이 대표로 있던 자유주의연대는 뉴라이트의 태동을 알린 단체로 2004년 창립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한 386세대 중 사상적 사고의 전환을 이룬 이들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자유주의 이론 연구, 시장 경제시스템, 북한 바로 알기 등을 진행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홍진표 (사)시대정신 상임이사 등이 속한 바 있다.
 

신지호 정치평론가 겸 전 국회의원은 뉴라이트의 태동을 알린 자유주의 연대 대표를 역임했다. 반공 중심의 올드라이트가 아닌 뉴라이트는 자유주의에 기초한다고 신 전 의원은 설명했다.ⓒ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정치평론가 겸 전 국회의원은 뉴라이트의 태동을 알린 자유주의 연대 대표를 역임했다. 반공 중심의 올드라이트가 아닌 뉴라이트는 자유주의에 기초한다고 신 전 의원은 설명했다.ⓒ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소멸의 이유>
“국정교과서, 뉴라이트로서
사망선고받은 거나 다름없어”

- 뉴라이트에 몸담았던 자가 그러더라. '요즘 뉴라이트가 어디 있느냐.' 맞는 말인가.

"뉴라이트는 사실상 소멸됐다."

- 왜 소멸됐나?

"박근혜 정권 때였다. 뉴라이트가 주축이 돼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그 순간 뉴라이트의 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당시는 검인정 체제였다. 그런데 뉴라이트에서 박근혜 정부의 힘을 빌려 국정교과서로 전환하려 한 것이다. 뉴라이트 사멸의 결정적 작용이 됐다. 국정교과서를 통해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국정교과서와 검인정 교과서로 나뉘어 왔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정교과서는 1종 교과서다. 저작권도 정부에 있다. 다양한 교재가 가능한 검인정은 민간 출판사가 교육부에 검정 또는 인가를 받아 펴내는 것으로 2종 교과서에 해당한다. 이 두 개가 혼용돼 쓰여 왔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 경우 박정희 유신 시대를 거치면서 검인정 체제 대신 정부 주도의 국정교과서로 통일됐다. 학생들에게 국가관을 인식시켜 준다는 명목이었지만, 독재 미화 등 사상 주입을 하려는 측면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국정 체제는 2003년 8월 7차 교육과정 전까지 유지됐다. 이후 원래의 혼용 체제로 유지되다, 2011년 역사 교과서가 한국사 과목으로 통합되면서 검인정 체제로 안착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다시금 국정화가 시도됐고 격한 반발을 야기했다.
 

신 전 의원은 뉴라이트 학자들이 기존의 역사 교과서사 좌편향됐다는 문제 인식 아래 대안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오탈자 등 부실 제작 논란 등으로 학교 채택률이 저조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 전 의원은 뉴라이트 학자들이 기존의 역사 교과서사 좌편향됐다는 문제 인식 아래 대안 교과서를 만들었지만 오탈자 등 부실 제작 논란 등으로 학교 채택률이 저조했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국정교과서 논란>
“뉴라이트 안에서도 논쟁 격화
처음부터 반대, 본래 가치 역행”

신 전 의원은 국정교과서는 과거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원래는 (뉴라이트) 1‧2‧3기를 거치면서 고교 근현대 역사 교과서에 편향적 역사 서술이 많다는 점에 문제 인식을 두고 개선될 필요성이 대두돼왔다. 비판만 할 게 아니라 뉴라이트 학자들이 중심이 돼 대안 교과서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한국현대사학회 등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은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는 역사 교과서들이 좌편향 됐다며 직접 집필에 뛰어들었다. 처음 내놓은 것이 2008년 펴낸 ‘한국 근·현대사’라는 대안 교과서였다. 그러나 교육부 검정심의에 통과되지 못한 탓에 학교 교과목 채택도 불발됐다. 이후 다시 추진됐고, 두 번의 도전 끝에 2013년 교육부 검정에 합격했다. 그것이 교학사를 통해 만든 고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몇 가지 이유로 학교에서의 채택률이 저조했다. 초라한 한 자리 수에 머물렀다. 전교조 측의 반대가 심해 자유로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됐다. 내용상 부정확하고, 부실했던 탓도 있었다. 오탈자부터 사진 설명도 잘못된 것이 있었다. 인간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오류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채택률을 높여나가는 게 교과서의 질도 높이고 자유주의 철학에 부합되는 거라고 본다. 아쉬운 일이다. 결국 그 같은 한계가 경쟁 체제로 진입하는 데는 어려움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다.

"패착이었다. 국정교과서 추진은 과거 박정희‧이승만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뉴라이트를 시작한 게 국가주의‧반공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거 아니었나. 자유주의 가치를 새로운 보수로 해보자고 한 게 뉴라이트였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를 뉴라이트의 이름으로 한다? 본래의 취지를 거스르는 거였다."

- 당시에도 반대했나.

"나는 거기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마음속으로 이미 뉴라이트는 끝났다고 봤다. 뉴라이트의 깃발을 들고 시작한 사람으로서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뉴라이트의 국정교과서 추진은 새누리당 행보와 맞물려 돌아갔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황우여 교육부 장관 등은 국내 역사 교과서 8종 중 7종이 진보 집필진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고 비판했다. 또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을 밀어붙였다. 일련의 강행은 유신 미화 등 우편향 논란에 불을 지폈다. 거센 반발 끝에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는 국정교과서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또 그 과정에서 정부 입맛에 맞게 초등역사 교과서가 수정되는 등 이번엔 좌편향 논란이 야기됐다.

- 김영삼(YS) 정부 때 뉴라이트가 태동됐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사실 그렇게 본다. YS 자체가 개혁보수의 원조다. YS가 초창기에는 국민적 공감을 사는 여러 일들을 추진했다. 자유시장주의 체제 구축한 금융실명제를 비롯해 전두환 군사정권 잔재인 하나회 척결이라든가, 공직자 재산등록 등 의미 있는 개혁 조치를 이끌었다. 그러나 끝이 외환위기로 안 좋게 끝나면서 개혁보수의 힘이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이회창 총재의 2번에 걸친 대선 실패와 차떼기 등 (보수가) 부패의 대명사로 몰리면서 철학적 기반을 갖고 해보자고 나타난 게 뉴라이트니까…. YS로 시작해, 뉴라이트 모두 개혁보수의 흐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신지호 전 의원은 뉴라이트가 주축이 돼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지만 그 순간 뉴라이트의 생명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전향하지 않은 386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전향한 뉴라이트를 비판한 것에 대해 역공을 당하자 그 이후부터 뉴라이트와의 논쟁 등을 피해다녔다고 전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뉴라이트와 친일 프레임>
“YS야말로 개혁보수 원조
MB 정부 때 뉴라이트 활발”

- 뉴라이트 출신을 보면 박정희 반독재에 힘쓴 좌파, 주사파 출신들이 상당수다.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뉴라이트의 주축으로 386 운동권 출신의 주사파도 있었다. 내 경우는 PD(민중민주) 계열이었다. 사회주의 운동하다가 회의를 느끼고 좌절하면서 방향 전환을 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소련의 몰락도 있었고, 한국 사회의 변화도 작용을 했다. 우리가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된 거였구나. 학창시절부터 30대 때까지 지켜왔던 신념이 잘못돼 있었구나. 새로운 걸 해보자. 당시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가 필요한 때였고, 관련해 연구했다. 여기서의 전향은 어떤 고문 등에 의한 타의적 전향이 아니다. 자기 사상의 성찰을 계기로 삼는 전향이다."

연세대 경제학과 81학번인 신 전 의원은 '송영길·주대환' 등과 함께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에서  활동했다. 또 제도권 정당인 민중당에서 '장기표·이재오 ·김문수' 등과 함께 했다. 동구권 공산주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 등을 목도하면서 1992년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글을 통해 사상적 전향을 선언했다. 이후 일본 유학, 삼성경제연구소, 서강대 교수 등을 거쳐 2007년 정계에 입문했다. 많은 뉴라이트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MB 당선을 도왔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서울 도봉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민주당의 당시 김근태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 전향을 놓고 공격도 많이 받았다.

"반대편에서는 나나, 김영환(주사파의 대부라 불리는 강철서신) 씨 등이 전향한 걸 갖고 배신자, 변절자 프레임으로 공격을 했다. 그래서 우리가 물었다. ‘그래 좋다. 마르크스 레닌주의하고, 주체사상 한 거 맞다. 우리는 그거 버리고 자유주의 한다. 이게 배신이고 변절이면 너네는 대한민국에서 뭐냐.’ 우리의 역공에 전향하지 않은 이들은 피해 다니기 바빴다. 우리와 함께하는 언론사와의 대담도 피해 다닐 정도였다."

- 지금도 뉴라이트 사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요즘 이영훈 전 서울대 명예교수가 ‘반일 종족주의’하는데, 나는 이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 그처럼 뉴라이트를 같이 했던 사람들 중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여기서 다 얘기할 순 없지만 아주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뉴라이트라는 게 어떤 하나의 사령탑이 있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자발적 운동이다 보니까 억지로 통제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엔 좌파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성장해 갔다. 그러나 친일 프레임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뉴라이트의 역사관하면 친일, 식민지근대화론이 따라붙을 정도였다. 좌파 쪽에서는 뉴라이트 전체가 그런 것인 양 친일 프레임을 씌워 지속적 공격을 했다. 그것의 끝판 왕이 국정교과서로 끝나버렸다. 나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성찰하고 정리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부분은 별도의 다른 차원에서 계속 계승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

서울대 뉴라이트 계보를 잇는 안병직·이영훈 전 교수 등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연구하는 운동권에서 탈 민족주의 경향의 대표 뉴라이트 학자로 전향한 경우다. 국정교과서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 격론에 휩싸이는 등 역사해석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로 인해 지금의 한국당이 ‘토착 왜구’친일프레임 공격에 악용되는 근거가 됐다는 견해도 나온다.

- 자유한국당의 일본에 대한 태도, 시장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철학 등이 뉴라이트와 맞닿아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하나.

"사실상 이명박(MB) 정부 때의 국정철학은 뉴라이트 자유주의 연대 시절에 구상했던 것이 대부분 반영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오면서부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다. 국정교과서 문제를 비롯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문화예술계를  통제하려 한 것 등이 모두 과거 회귀를 불러왔다. 뉴라이트는 법치를 기반으로 하기에 좌든 우든,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어떠하든 간에 차별을 주면 안 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전교조나 민노총 등을 대할 때도 법치적 잣대로 다뤄야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벌을 주는 게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과거로 퇴행을 했다. 뉴라이트의 일부 인사들마저 거기에 일조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신지호 전 의원은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김영삼의 문민 개혁. 이것은 그 당시에 옳은 일을 한 거다. 과에 비해 공이 더 큰 ‘공칠과삼’이 되는 지도자들이라고 평가했다.ⓒ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김영삼의 문민 개혁. 이것은 그 당시에 옳은 일을 한 거다. 과에 비해 공이 더 큰 ‘공칠과삼’이 되는 지도자들이라고 평가했다.ⓒ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자유와 독재의 모순>
“박정희, 현 기준에서 평가 말아야
모든 정책이 국가주의는 아니었다”

- 한국당 당사에 이승만·박정희·김영삼 전 대통령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수의 가치 면에서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간판을 내려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지금 기준에서 평가하면 안 된다. 당시의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것, 그 잣대로 봐야 한다. 이승만의 건국, 박정희의 산업화, 김영삼의 문민 개혁. 이것은 그 당시에 옳은 일을 한 거다. 과에 비해 공이 더 큰 ‘공칠과삼’이 되는 분들이다. 오늘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때 경제발전이 잘 됐다 해서, 박정희 때 방식 그대로를 갖고 지금 한다? 이건 시대적 착오다. 보수라는 것은 끊임없는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즉 날마다 새롭게 업그레이드, 업데이트해야 한다. 상황에 맞게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박정희의 문제 인식이나 정신 중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실천해 나가는 게 진정한 보수가 아닐까."

- 그렇지만 독재를 위해 반공을 악용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 때의 반공주의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 박정희를 평가할 수 없다. 그 시대 때 이뤄온 경제 성장, 한강의 기적 등 그 부분만큼은 인정하자는 거다. 그래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다. 이렇게 평가한다."

- 정책 면에서도 국가주의였다. 전통적 보수의 가치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박정희의 모든 게 다 국가주의는 아니었다. 박정희 안에도 여러 요소가 있다. 새마을 운동의 정신 중 하나가 자립·자조이다. 스스로 돕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는 게 국가주의는 아니었다. 그런 건 여전히 유효한 철학이다. 자유주의 시장 경제에도 맞게끔 돼 있다. 오히려 퍼주기식 복지를 하는 때에는 과거 새마을운동 때 박정희가 강조했던 자립·자조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신지호 전 의원은 5‧18 문제 관련해 한국당은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정상화시키고 바로잡은 게 YS다. 노태우, 전두환을 감옥에 보낸 YS처럼 하면 된다고 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5‧18 문제 관련해 한국당은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정상화시키고 바로잡은 게 YS다. 노태우, 전두환을 감옥에 보낸 YS처럼 하면 된다고 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보수통합의 조건>
“5‧18 문제 등 YS처럼만 하면 돼
보수통합하려면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 한국당에 아직도 박정희 전 대통령 영향력이 상당하다. 황교안 대표도 그 중 한 명인 듯 보인다. 얼마 전 박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북 구미를 방문한 황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한 바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국강병하게 만든 애민애국 지도자였다며, 그를 부정하는 건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교안 대표가 어떤 문제의식과 어떤 철학을 갖고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뭐라고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뚜렷하게 콘텐츠를 내놓은 게 없다. 그래도 확실한 건 자유민주주의 헌법 가치에 대한 소신은 뚜렷하다고 보인다. 다만 이분이 공안검사를 너무 오래하다 보니, 반공주의 성향에 쉽게 빠진 게 아닌가 싶다."

- 올해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한일 갈등이 불거진 해다. 이 모두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첫 단추를 박정희 정권에서 잘 못 꿰어서 그런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적 과오란 측면에서 한국당에 속한 의원들이 지난날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공과가 있다. 65년 한일협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의 강력한 중재와 요청 등 당시의 여러 국제정치 상황들을 놓고 보면, 그래도 한 게 잘했다는 평가다. 훗날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긴 했지만, 한일청구권 협정 없는 한국 경제 발전은 설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초고속 고도성장의 종잣돈을 제공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다만, 그 과정의 문제점들은 성찰하고 짚어볼 필요는 있겠다. 그렇다고 한일협정 자체가 잘못됐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당 인사들이) 사과해야 한다? 그건 아니라는 거다."

- 5‧18 망언 등 그간을 보면 한국당은 스스로 비난을 자초한 측면이 있는 듯한데.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YS(김영삼)처럼만 하면 된다. 5‧18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상화시키고 바로잡은 게 YS다. 노태우, 전두환을 감옥에 보내고, 5‧18을 국가기념일로 공식 지정한 게 YS다. 한국당은 YS의 유산을 이어받으면 된다. 그러나 자신의 조상, 유산마저도 걷어차고 있는 게 지금의 한국당 이다. 보수 진보로 나눠 얘기할 필요도 없다. YS 정치가 국민통합이다.”

- 하지만 최근 한국당 모습이 중도를 아우르는 바른정당계 개혁보수와의 통합 등에서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보수통합은 어떻게 보나. 우리공화당 태극기 부대와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보나.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선거 승리를 위해 통합이 필요하긴 하다. 우리나라가 선거제도가 대통령제다 보니 그렇다. 만약 의원내각제 등이면 굳이 통합할 필요는 없다. 각자 하면서 해도 된다. 하지만 선거 승리 관점으로 보면 통합은 필요하다. 그러나 미래지향적 관점에서의 통합이 필요하지, 단순한 합치기는 별 감흥을 안겨주지 못할 것이다."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국정 농단에 대해서는 당시 집권 여당으로써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에 기초한 보수통합이 돼야 한다. 안 그러면 새로운 불신이 될 뿐이다."

- 보수통합의 적임자로 보는 이는.

"그건 내가 얘기할 게 아니다."

 

신지호 전 의원은 우리 정치계에 공화의 가치가 결핍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권과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우리 정치계에 공화의 가치가 결핍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권과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포스트 뉴라이트>
“망국적 진영논리 극복하고
결여된 공화의 가치로 나아가야”

- 뉴라이트 이후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뉴라이트 성과는 자유주의를 안착시켜간 점이다. 자유주의 가치가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고 보편화되고 있다. 그런데 자유주의 이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치가 공화인데, 이 점은 과제로 남았다. 민주공화국 할 때의 공화인데, 사람들은 민주는 알지만 공화는 잘 모른다. 우리가 보통 자유평등 얘기할 때 우파는 자유를 강조하고 좌파는 평등을 강조하지 않나. 이 자유와 평등은 공화에서 만난다. 공화 안에서 두 개의 가치가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도 그랬고, 현 정부의 조국 사태를 보더라도 공화라는 가치가 결핍돼 있다. 오른쪽 정권이고 왼쪽 정권이라는 차이만 있지 나타나는 형태는 비슷한 것이 많다.

진정한 공화주의 가치를 살려서 진정한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6공화국은 시대 변화를 담아내기에 너무 낡은 그릇이 됐다. 앞으로는 7공화국이 도래해야 한다. 분권과 협치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시스템은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한다. 이는 앙시앵 레짐(구체제) 밖에 되지 않는다. 작금의 낡은 틀에 새로운 사람과 콘텐츠를 집어넣더라도 소용없다. 확연한 한계만 보일 뿐이다. 국가의 틀을, 거버넌스를 바꿔야 한다."

- 그간 치열하게 살아왔다. 요즘 고민은 뭔가.

"요즘의 내 고민은 하나다. 한때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제는 망국적 진영 논리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얼마 전 JTBC 토론회에서 '진영논리가 뭐가 나쁘냐'고 하더라. 난 충격 받았다. 기본적으로, 진영이라는 건 있을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 좌우. 그렇지만 진영논리라는 건 흑백논리다. 선악 이분법이다. 그에 입각한 패싸움이다.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야’ 이렇게 가르면 어떻게 되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확증편향이 나타난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안 되는 ‘내로남불’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양극화도 심한데, 정치적 양극화마저 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게 다 남 탓하기 바쁜 망국적 진영논리 때문이다. 정치라는 게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조정하고 절충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극과 극의 무한대결이 돼버리면 국력 소진, 사회 분열로 인한 피해는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 망국적 진영논리가 생기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싶은 것은 뭔지 궁금하다.

"어떻게 보면 진영 논리는 좌우할 것 없이 철학적 빈곤에서 나온다. 자기 내용이 튼실하고, 자기 콘텐츠가 풍부한 사람은 진영 논리에 잘 빠지지 않는다. 자기 내부의 성찰과 사색을 통해 축적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콘텐츠와 내용이 부실한 경우면 진영 논리에 잘 빠져든다. 이런 경우는 자기 밖의 적을 찾고 이에 맞서는 것에 급급하다. 어떻게 하면 적대적 공생 관계의 망국적 진영논리를 깰 수 있을까.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바꿔볼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을 해결하는 게 지금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 구체적 해법으로 보는 것은. 

"진보나 보수 중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 박근혜 탄핵을 거치면서 이건 아니다, 하고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유랑 보수라고 한다. 이번 조국 사태를 맞아서도 유랑 진보가 형성될 거다.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사람들이 보수였건 진보였건 떠나서 우리 사회의 공동의 장을 형성할 시점이 왔다. 미국에서는 이를 '커먼 그라운드'라고 한다. 그곳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있지만, 양 당의 정치인들이 만나는 공동의 장이 있더라. 우리 역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한 공통 기반은 무엇인가, 그것을 확인하고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유랑 보수 유랑 진보처럼 문제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커먼 그라운드를 만드는 것.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신지호 전 의원은 젊은 세대인 20,30대가 386세대의 정신적 식민지처럼 됐다며 이들을 독립시키고 성장을 돕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신지호 전 의원은 젊은 세대인 20,30대가 386세대의 정신적 식민지처럼 됐다며 이들을 독립시키고 성장을 돕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사오늘 윤지원 기자

 

<386과 성찰>
“20‧30대는 386의 정치적 식민지
독립된 세대로의 성장 돕는 게 사명”

- 문재인 정부는 386 운동권 출신이 주도하고 있다. 신 전 의원도 그에 속한다. 같은 386출신으로 그 세대가 야기한 문제와 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흔히들 386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가치 집단으로 본다. 그러나 386은 이미 이념적 순결성을 상실했다. 과거의 추억을 공유하는 추억 공동체는 맞겠지만, 현실에서는 이익집단 내지 이권집단으로 변질됐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성찰을 통해 거듭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권집단화에 빠져버린 경우는 되돌리기 힘들 것으로 본다. 새로운 대체 집단이 나와서 무대 뒤로 밀어내는 수밖에 없다."

- 새로운 대체 집단이라 하면?

"나는 그게 젊은 세대라고 본다. 진영논리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다. 앞으로는 이들 세대가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본다. 기존의 386세대는 혜택받을 만큼 혜택받은 세대다. 민주화 훈장도 받았고 산업화의 성과, 단물도 맛봤다. 근데 보면 386세대에 종속된 세대가 30~40대다. 이들은 자기 세대의 담론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386세대의 정치적 식민지가 돼버렸다. 때문에 2030이라도 자기 세대의 담론을 만들어 나가면서 정신적 식민지에서 독립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사회적 진출이 가속화되면 386은 자연스럽게 밀려나갈 것이다."

-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세대를 386세대로부터 독립시키는 것. 그것이 나와 같은 586세대의 과제라고 말하고 싶다.(386이 50대가 되면서 586이라고도 불린다.) 독립된 세대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서포터로서의 역할로 가야 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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