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산업 삼부자의 沃土, 삼표 부자에겐 어떤 땅 될까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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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산업 삼부자의 沃土, 삼표 부자에겐 어떤 땅 될까 [옛날신문 보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6.23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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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강원산업그룹, 현재의 삼표그룹 있게 한 성수동1가 683번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옛 골재공장(위)과 현 레미콘공장 ⓒ 삼표그룹 홈페이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옛 골재공장(위)과 현 레미콘공장 ⓒ 삼표그룹 홈페이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에 위치한 삼표산업 공장 철거 작업이 이달 말 마무리될 예정이다. 해당 공장은 건립 4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서울시는 공장 철거가 완료된 후 즉각 이 부지를 서울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전략적 부지로 활용해 산업·문화·관광명소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인근 서울숲과의 연계 개발, 대규모 복합개발 등이 거론된다. 6·1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는 이곳에 오페라하우스 등 문화복합시설을 건립해 문화관광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공약이 제기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발 계획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존재해온, 어느 삼부자의 숙원사업이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故 정인욱 강원산업그룹 명예회장과 그의 장차남인 정문원·정도원 회장 삼부자에게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는 애증의 땅이리라. 강원 철암계곡에서 강원탄광을 설립한 이후 석탄 채굴·연탄 생산업을 영위하던 강원산업그룹을 골재·레미콘사업으로 뻗어나가게 해 국내 30대 재벌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옥토(沃土)였고, 오늘날 삼표그룹이 있게 만든 모태의 땅이었다. 또한 강원산업그룹과 삼표그룹이 시민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데 일조한 오염의 땅이란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삼부자에겐 눈물을 머금고 사돈집안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땅이었다. 이 땅의 역사는 어쩜 이리도 굴곡질까. 도대체 이 땅은 강원산업그룹 삼부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시사오늘>은 과거의 인물, 그리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당대 신문 기사들을 재조명해 현재를 짚고 미래를 살피는 '옛날신문 보기'를 연재하고 있다. 이번 옛날신문 보기에서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의 역사를 살피고, 그 땅에서 못다 핀 강원산업그룹 삼부자의 꿈을 슬쩍 들여다본다. '어떤 평가가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면 배제한다. 판단은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과잉 이념'의 시대에 지쳤을 독자들에게 맡긴다.

 

창업주 정인욱, 간척지를 옥토로 개간하다


고 정인욱 강원산업그룹 명예회장이 세운 강원탄광 전경 ⓒ 국가기록원
고 정인욱 강원산업그룹 명예회장이 세운 강원탄광 전경 ⓒ 국가기록원

故 정인욱 명예회장은 일본 조도전대학(와세다대) 광산학과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일제 조선총독부 촉탁 신분으로 지역 광산계에서 일하던 중 해방을 맞았고, 이승만 정권 수립 후 대한석탄공사 생산이사를 역임하다가 사표를 낸 뒤 1952년 강원 철암계곡에서 강원탄광을 세웠다. 당시 딱딱한 관료사회 분위기에서는 석탄산업 부흥을 이끌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그의 지휘 아래 강원탄광은 급속도로 성장했고, 이를 높이 산 이승만 정권은 1957년 그를 대한석탄공사 총재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때 정 명예회장은 후에 군부정권 핵심 세력이 되는 군인들과 스킨십을 갖게 됐다. 당시는 군용차량으로 석탄을 운반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대한석탄공사에 군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중에 5·16 쿠데타에 동조한 장교들이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1961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정 명예회장을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 국가기획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 정 명예회장이 경제개발계획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박정희 정권은 한강변 곳곳을 매립·간척해 택지지구를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른바 한강 공유수면매립공사 사업이다.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된 해당 사업은 매립 인허가만 받으면 일부 기부채납용 부지를 제외한 나머지 땅을 모두 사업자에게 주는 방식으로 실시됐고, 친군부정권 성향 인사들에게 대부분 사업권이 넘어갔다. 그야말로 알짜배기 사업이다. 이는 기업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계략이었다. 정경유착이 상식이었고, 이에 반하는 경영가들은 몰락의 길을 걷는 시대였다. 서류상에서 강원산업그룹과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토지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건 1972년 3월 17일로 나타난다.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이 땅의 소유권은 그해 1월 29일 강원산업그룹이 수행한 한강 공유수면매립공사가 준공되면서 강원산업주식회사에게 이전됐다. 강원산업그룹은 매립공사가 진행된 1971년께 해당 부지에 골재채취 기지를 지어 사업을 확대했고, 1977년에는 이곳에서 레미콘공장을 본격 가동(공장이 설립된 건 1974년이나 사업자 등록 기준으로는 1977년)했다. 현재 철거 중인 삼표산업 성수동 공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핵심 사업인 탄광업이 퇴보의 길에 접어든 가운데 강원산업그룹은 성수동 공장을 풍납동 공장과 함께 신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원가절감 강원산업편

석탄생산업에서 출발했던 강원산업은 종합에너지산업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원탄에서 연탄제조업은 물론 석유와 가스까지, 게다가 최근에는 골재산업과 주물·제강공업까지 착수한 진짜 전천후복합기업으로 완숙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렀다. 
(중략) 삼표로 통하는 강원산업의 사세가 확장된 만큼, 경영상의 짐이 과중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선, 주력사업인 석탄생산과 연탄제조업은 본원적 불황 상황 아래 놓였다. 다행히 자체 탄광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경쟁업체와의 경쟁에 유리한 유치에 있다. (중략) 뚝섬에서 건축용 모래와 자갈을 수집하는 삼표골재와 포항에 건설 중인 제강·주물공장에 이르기까지 삼표는 계속 성장하는 기업이다.

-1972년 4월 19일 〈매일경제〉

강원, 골재시설 늘려

강원산업(대표 정인욱)은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골재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산하 골재사업소 시설을 대폭 확장, 내년부터는 골재 공급량을 두 배로 늘리기로 했다.
올해 삼표골재는 뚝섬공장에서 151만 ㎥, 풍납공장에서 52만4000㎥ 등 모두 200여 만 ㎥를 생산 공급했는데 내년부터는 시설을 느려 뚝섬공장에서 250만 ㎥, 풍납공장에서 200만 ㎥ 등 모두 450만 ㎥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또한 지난 8월부터 시험생산하고 있는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과 레미콘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증산 공급한다는 것.
삼표골재는 이 같은 시설확장계획에 따라 내년 2월에는 일본 미쓰비시로부터 대형레미콘차 105대를 도입, 봄철 성수기부터 현 보유 차량 23대와 합쳐 모두 128대를 굴릴 계획이다.

-1977년 12월 10일 〈동아일보〉

정인욱 명예회장, 1970년 그가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경영자상을 수상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왼쪽)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정인욱학술재단
정인욱 명예회장, 1970년 그가 한국능률협회로부터 한국경영자상을 수상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왼쪽)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정인욱학술재단

강원산업그룹과 정 명예회장의 이 같은 전략은 주효했다. 박정희 정권의 한강 공유수면매립공사 사업, 전두환 정권의 올림픽 유치를 위한 도시미관정비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서울 일대에서 택지조성 공사와 대규모 SOC·재개발 공사가 활발하게 이뤄졌고, 강원산업그룹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골재와 레미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이는 동종업계 다른 회사들 보다 발 빠른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었고, 1980년대 강원산업그룹 황금기를 이끄는 계단이 됐다.

강원산업, 가동률 늘어 순익 급증

강원산업에 의하면 전기 말까지는 막대한 시설투자 등으로 손익면에서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으나 당기부터 대부분 시설이 운전기에 들어서게 돼 외형이나 손익면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룩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략) 특히 골재부문에서 18.9%에 불과했던 레미콘의 가동률이 67.5%로 높아졌고, 연탁도 86.4%의 가동률을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1978년 9월 12일 〈매일경제〉

수출 가물고 내수는 부분홍수

불길은 건축경기 쪽이다. 공사장용 레미콘장비를 생산하는 서울·경인지구 업체들은 풀가동에 들어갔다. 이들을 적재하는 믹서트럭 등 건축용차량은 사기가 힘들다. 건자재상가에선 붉은 벽돌이 품귀다.
철근은 올 들어 넉 달 동안 내수물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9% 늘었다. 건축허가 면적이 50% 이상 늘어났기 때문에 이것이 시간을 두고 수요에 반영되고 있고, 특히 토목공사보다 건축공사 비중이 크게 늘어나 철근 수요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시멘트는 4월 가동률이 90%로 올라섰다. 78년 호황 때 95~96%선에는 못 미치지만 전체 업계의 경영수지가 크게 개선되고 그동안의 비명이 쑥 들어갔다.

-1983년 5월 27일 〈동아일보〉

탄광재벌, 탈연탄에 사활 건다

연탄재벌들이 소리 없이 변신하고 있다. 탄광과 연탄 제조에서 철강, 도시가스, 제지, 시멘트 등으로 주력 업종을 바꾸거나 석탄에 주력하면서 호텔, 정밀화학, 컴퓨터 등 타 업종에 진출, 경영 다각화를 서두르고 있다.
강원산업 등은 주력 업종을 성공적으로 바꾼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일찍부터 다른 업종에 손을 대 이제는 모태가 된 석탄업의 비중이 전체 매출의 10~30%에 불과하다.
강원산업 계열 기업으로는 무역업체인 삼표상사, 강남도시가스, 광산기자재를 만드는 삼표제작소, 석유·가스판매업체인 삼표종합가스, 고철로 철강원료를 만드는 한국슈레다, 운수업체인 동남산업 등이 있다. 강원산업은 석탄업 이외에 중공업과 골재·레미콘에도 손을 대고 있다.

-1987년 2월 21일 〈경향신문〉

 

오염과 공해의 땅, 갈등을 유발하다


1980년 7월 8일자 〈조선일보〉 보도. 강원산업 삼표골재 성수공장을 향한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80년 7월 8일자 〈조선일보〉 보도. 강원산업 삼표골재 성수공장을 향한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강원산업그룹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을 바탕으로 써 내린 성공신화의 이면에는 시민사회의 원성이라는 짙은 그림자가 깔려있었다. 1970~80년대 고속성장을 전후로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삶의 질 제고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주택가 인근에 위치한 강원산업그룹의 성수동 공장은 풍납동 공장과 함께 서울시민 주거환경 훼손과 한강 수질 오염의 원흉으로 지목됐다.

매연 뿜어 대기오염 4곳 고발·9곳 경고

서울시는 매연을 뿜어 대기를 오염시킨 4개 업소를 공해방지법 위반 혐의로 관계당국에 고발하고, 18개 업소에 시설개선 명령을 했으며, 골재채취업자인 강원산업(성수1가) 등 9개 업소를 경고처분했다.

-1978년 1월 23일 〈경향신문〉

자동차-철공소-공장기계소리 등 여름철 주택가 소음공해

소음공해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자동차의 시끄러움도 그렇지만 주택가 한복판이나 인근에 자리잡은 각종 공장들에서 나는 소음은 더욱 심해가고 있다.
(중략) 성동구 성수1·2동도 마찬가지. 화학공장과 철공소 등이 몰려있는 이곳의 주민들은 이런 소음공해에 이제 무감각해져 있을 정도.
성수1가 강원산업 삼표골재에서 하루 종일 요란한 소음이 계속되고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먼지가 주변을 뒤덮고 있다.

1980년 7월 8일 〈조선일보〉

때문에 성수동 공장 등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와 강원산업그룹 간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떠나라는 서울시의 요구에도 강원산업그룹은 영업을 이어갔다. 양측의 이 같은 공방은 수십년간 지속됐고,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철거 작업이 개시된 것이다.

"레미콘·골재공장 시계 밖으로" 업자 배짱…무색한 이전령

지난달 말까지 시계 밖으로 이전키로 한 레미콘·골재공장 4개소가 이전 시한을 넘긴 채 옮겨갈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소음과 먼지 등 공해를 발생시켜 민원 대상이 돼 온 성동구 성수동1가 강원산업 골재공장을 비롯, 공영사(용산구 서빙고동), 삼표산업(성동구 풍납동), 쌍용양회(용산구 용산동) 등 4개 공장에 대해 지난 8월 말까지 서울시계 밖으로 이전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 시한이 지났는데도 옮기긴커녕 그대로 가동하는 데다, 이들 공장에 출입하는 대형트럭들은 교통법규를 무시, 마구 시내를 달려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이들 공장을 곧 환경보전법에 따라 고발, 폐쇄 조치 등을 할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1982년 9월 3일 〈동아일보〉

이전보다 벌금이 유리

행정당국으로부터 레미콘공장 이전 명령을 받은 쌍용양회와 강원산업, 삼표산업 등 3사가 계속 벌금만 물면서 이전을 지연하고 있어 주목.
이들 3사는 1982년 환경공해 문제로 이전명령을 받았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추진실적이 없는 상태다.
(중략) 강원산업의 성수동 공장은 800만 원, 삼표산업의 풍납동 공장은 550만 원의 벌금을 각각 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레미콘업계 관계자들은 "이전하는 것보다 벌금을 물면서 가동하는 게 회사영업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일침.
한편, 3사 관계자들은 "정부부처간 의견이 엇갈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손해만 보면서 공연스레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87년 2월 10일 〈매일경제〉

성수동 공장 앞에 개점휴업한 레미콘 차량들. 1990년 6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성수동 공장 앞에 개점휴업한 레미콘 차량들. 1990년 6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처럼 강원산업그룹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과 공장들 때문에 시민사회로부터 원성을 사게 됐다. 하지만 그 원성의 크기만큼 그 땅이 강원산업그룹에게 주는 수익도 컸다. 그리고 서울 일대에서 진행된 범정부 차원의 개발사업들은 성수동 공장 생존에 힘을 실어줬다. 노태우 정권의 주택 200만 호 건설사업이 대표적이다. 시멘트·레미콘이 없어서 팔 수 없을 정도로 대호황을 누렸다.

중소 래미콘업체 매출 급증

레미콘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일부 중소기업체 매출이 2~3배씩 크게 늘어나고 있다.
대형건설공사가 늘어나고 레미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소비가 매년 증가, 지난해 총 1700만 ㎥가 판매돼 83년의 1569만 ㎥에 비해 15% 상당 신장됐다.
(중략) 삼표산업 등도 판매량이 20~40% 상당 증가됐다.

-1985년 2월 13일 〈매일경제〉

시멘트 부족 심각…레미콘 휴업 상태

건설경기 대호황으로 시멘트 물량이 크게 부족, 레미콘공장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지자 일거리가 없어진 레미콘 차량들이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서울 삼표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들이 서 있다.

-1990년 6월 13일 〈동아일보〉

레미콘업체 때아닌 호황 서울

(중략) 업계에 따르면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불구, 지난달 중순부터 서울 지역에서 레미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삼표레미콘 등 서울 지역 레미콘업체들이 예상치 못했던 호황을 맞고 있다.
이들 래미콘업체는 공장을 완전가동하고도 몰리는 주문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부 납기지연 사태까지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3년 3월 5일 〈매일경제〉

 

옥토 위에 우뚝 선 삼부자, 현대와 가족이 되다


1989년 7월 25일 〈매일경제〉기사. 정인욱 명예회장과 그의 두 아들 정문원·정도원 회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89년 7월 25일 〈매일경제〉기사. 정인욱 명예회장과 그의 두 아들 정문원·정도원 회장에 대해 다루고 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 같은 강원산업그룹 황금기에 정인욱 명예회장은 정문원·정도원 두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했다. 새로운 회장으로 등극한 장남 정문원 회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철강·중공업 위주로 재편했다. 정인욱 명예회장은 회사를 아들들에게 맡겼다고 해서 현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고령의 나이에도 회사 안에선 사업을 진두지휘했고, 밖에선 외연 확장에 집중했다.

신경영인맥 강원산업그룹편

(중략) 신임 정문원 회장은 82년 강원산업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권 인수 작업을 착실히 다졌다.
정 회장은 경복고와 연세대 물리학과를 거쳐 미국 마케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로 28세 나이로 강원산업에 첫 발을 들였다. 그는 부친인 정인욱 명예회장의 비서 업무를 맡으며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고, 입사한지 7년 만인 74년에 상무, 75년에 전무, 80년에 부사장을 거쳐 82년 사장에 올랐다.
(중략) 67년 정문원 회장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강원산업에 들어오면서 강원산업그룹은 서서히 중공업 분야에 진출, 오늘에 이르렀다.
(중략) 현재 강원산업그룹의 최고경영자 인맥은 정문원 회장의 동기 등 경복고 출신과 중공업을 시작하면서 스카우트한 인천제철
(현 현대제철이다) 출신, 서울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989년 7월 25일 〈매일경제〉

배고픔 아는 창업주 절약 몸에 배, 80 나이에도 매일 출근·공장 시찰

(중략) 정인욱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일에 대한 애착은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회사에 출근, 두 아들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으며, 이따금 포항공장에 내려가 공장을 둘러보기도 한다.
(중략) 절약에 대한 그의 고집도 정평이 나있다. 한번은 정 회장이 임원들과 술집에 갔다가 나오면서 여종업원들에게 팁을 줬다. 그런데 그때 4명 몫으로 준 팁의 액수가 실은 한 사람 몫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가씨들이 '이런 팁은 받을 수 없다'며 돌려줬다. 사회 물정을 잘 몰랐던 때문인지, 아니면 구두쇠 정신의 발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한동안 업계에 화제가 됐다.

-1990년 9월 10일 〈조선일보〉

재벌 명예회장

명예회장 자리는 재계의 지는 별인가, 아니면 실권은 그대로 갖는 창업주가 권위를 보다 높이기 위해 으레 동원하는 관행인가.
(중략)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은 포항 중공업공장의 H빔 증설작업을 직접 독려할 정도로 아직도 의욕이 넘친다. 아들인 정문원 회장보다 오히려 활동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건강비법은 많이 걷는 것.

-1992년 5월 10일 〈경향신문〉

한일 양국 우호협력증진 다짐

야마시타 신타로 주한일본대사 상견례를 겸한 오찬 간담회가 롯데호텔 아테네가든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용학 한일경제협회회장을 비롯해 김상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박상규 중소기협중앙회장,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 등이 참석했다.

-1994년 10월 6일 〈조선일보〉

정의선·정지선씨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정의선·정지선씨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똘똘 뭉친 삼부자의 활발한 경영활동으로 강원산업그룹은 고속성장을 지속했다. 철강·중공업에 집중한 게 주효했다. 경사도 맞았다. 정인욱 명예회장의 차남 정도원의 장녀인 정지선과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구 당시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회장의 장남 정의선이 결혼한 것이다. 양사는 정문원·정도원 형제와 정몽구 회장이 경복고 선후배라는 점, 정지선의 사촌오빠와 정의선이 절친한 중고교 동창이라는 점을 들어 두 사람의 혼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선 정인욱 명예회장과 정주영 명예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야사가 있다. 두 명예회장은 모두 이북 출신(정인욱 황해도 재령, 정주영 강원도 통천) 경제인이다. 정인욱 명예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지낼 당시 회장단에 몸담기도 했으며, 정주영 명예회장이 정계에 진출할 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당신이 통천에서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을 때 나는 통천에 있는 별장에서 책을 읽었다"는 정인욱 명예회장이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건넨 농담은 두 사람의 각별함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현대가 사람들이 정의선-정지선의 결혼에 대해 '같은 정씨'라는 점을 명분으로 반대하자 "본이 다르다"며 혼인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정공-강원산업 사돈 맺어

현대정공 정몽구 회장의 장남 의선씨와 강원산업 정도원 부회장의 장녀 지선씨의 결혼식이 29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손자·손녀의 결혼으로 사돈이 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인욱 강원산업 명예회장은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을 맞았다.

-1995년 5월 30일 〈경향신문〉

 

삼부자 전성시대, 뚝섬의 꿈에 부풀다


다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 얘기로 돌아간다. 강원산업그룹 삼부자는 회사의 성장동력으로 완벽히 자리매김한 철강·중공업에 대한 투자를 계속 확대했다. 반면, 사양산업이 된 탄광사업 등 구조적으로 한계가 명확한 사업부문을 정리키로 했다.

강원산업 연내 탄광사업 정리 중공업 중심 대변신

탄광을 기틀로 성장해온 강원산업그룹이 연내 탄광사업을 정리키로 하고 철광, 기계, 레미콘 등 중공업사업 중심으로 경영을 쇄신, 새로운 도약에 나서고 있다.
(중략) 경영계획에 따라 설비 확장을 위해 철강과 기계 분야에 올해 2156억 원을 투자하고, 연구개발 분야에도 105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특히 철강 분야에 2000억 원을 투자, 포항에 연산 120만 톤 규모 H형강공장을 건설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략) 새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동남아 등 해외시장 진출도 강화해 올해 중 베트남에 전기로공장을 건설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중국 진출을 위해 홍콩에 지사도 건설했다.

-1993년 4월 6일 〈매일경제〉

대기업 유통업 진출 러시

대기업의 유통업 진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럭키금성이 슈퍼마켓 형태로 운영해온 엘지마키의 이름을 엘지백화점으로 바꿔 백화점 진출을 선언했고, 삼성물산도 백화점 참여를 공식화했다. 특히 올초 주력업종신청 결과 30대 그룹 중 대우, 한화, 롯데, 코오롱 등 16개 그룹이 유통업을 주력업종으로 포함시키면서 유통업 진출 경쟁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업구조의 축이 제조에서 유통으로 바뀌고, 유통업을 주력업종에 포함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각종 혜택을 받게 돼 기존 보유 부동산을 적극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중략)강원산업은 서울·수도권 지역에 소재한 연탄공장 부지에 유통시설 건립을 모색 중이다.

-1994년 7월 7일 〈경향신문〉

1997년 6월 26일 〈매일경제〉 기사. 수년째 제기된 뚝섬 인근 개발사업으로 강원산업그룹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쳤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7년 6월 26일 〈매일경제〉 기사. 수년째 제기된 뚝섬 인근 개발사업으로 강원산업그룹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쳤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강원산업그룹의 정리 대상에는 비록 사세 확장에 크게 기여했으나 서울시와의 갈등을 야기하고 시민사회의 원성을 사게 만든 성수동 공장 일대 부지도 '잠시'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강원산업그룹에서 근무했던 한 원로 경제 인사는 최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형인 정문원씨는 철강·중공업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유통·호텔업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쪽 CEO들이랑 친했다. 동생 정도원씨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친의 제조업 고집 아래에서 경영을 배웠지만 진짜 하고 싶었던 사업은 따로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실제로 관련 업계에선 강원산업그룹이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를 비롯한 뚝섬 일대 땅을 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강원산업그룹에서 '뚝섬 부지에 유통센터 건립설과 성수동 공장 부지 매각설은 사실무근'이라고 공시까지 할 정도였다. 이 소문은 1994년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이 수립했던 5개 지역 전략개발계획이 발표되면서 단순 소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산업그룹은 막대한 개발이익에 대한 꿈에 부풀었다. 

대기업 높은 관심…각축 예고

이달 초 서울시가 확정한 여의도 등 5대 전략지구개발이 실현 가능성과 재원 조달 문제 등을 놓고 부처간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삼성, 현대, 럭키금성 등 국내 대기업들의 높은 관심으로 사업 참여에 심한 각축전이 예상되고 있다.
(중략) 뚝섬지구는 강원산업의 삼표레미콘 부지가 3만 평이나 돼 앞으로 강원산업 등이 개발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며, 상암지구는 삼성건설이 이미 난지도 주변 개발 마스터플랜을 마련, 개발 참여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1994년 9월 27일 〈매일경제〉

뚝섬지구 개발방식 확정

뚝섬지구 국제컨벤션센터·다목적 돔구장 개발 방법이 각각 땅 소유주 자력개발과 시유지 매각 후 민간기업 자체 건립 방법으로 결정됐다.
서울시는 뚝섬지구에 들어설 국제컨벤션센터는 땅 소유주인 강원산업이 자력개발하고, 다목적 돔구장 부지는 공개매각해 민간기업이 자체 건설·운영토록 개발방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중략) 다만 상업지역 변경 등에 따른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강원산업 소유 토지 중 50% 이상을 기부채납받아 공공시설 부지로 활용할 방침이다.

-1996년 8월 4일 〈경향신문〉

뚝섬 관광레저단지 탈바꿈

뚝섬 일대 개발 청사진이 달라진다. 서울시는 성동구 뚝섬 지역 35만 평에 호텔, 골프장, 스포츠센터, 외국인전용아파트 등을 지어 이 일대를 대단위 관광레저단지로 재개발할 계획이다.
(중략) 강원산업이 보유한 삼표레미콘 공장터에는 컨벤션센터와 야외공연장 건립 계획이 취소되고, 대형 호텔과 외국인을 위한 장기임대아파트가 건립된다.
(중략) 토지 소유자인 강원산업 측은 도로용지 20%를 시에 기부채납하는 한편, 4000여 평에는 객실 500개와 수영장, 사우나, 테니스장 등을 갖춘 특2급 비즈니스 호텔을 2001년 10월까지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997년 6월 26일 〈매일경제〉

 

옥토는 순식간에 황무지로, 땅은 홀라당 사돈에게로


그러나 IMF 외환위기가 모든 상황을 뒤바꿨다. 당시 강원산업그룹은 철강·중공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유동성이 메마른 실정이었고, 투입 대비 수익을 아직 창출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여기에 회사 밖에서 폭풍까지 들이닥쳤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98년 우리나라 30대 그룹(재계 서열 29위)에 진입한 건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강원산업의 매출(매년 6월 기준)은 1995년 6904억 원에서 1998년 1조2511억 원으로 81.19% 증가한 반면, 경상손익은 1995년 167억 원에서 1998년 -798억 원으로 적자전환했다. 경상손실은 이듬해 1207억 원까지 불었다. 강원산업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삼부자가 애지중지하던 계열사들이 무너지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인욱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강원산업 워크아웃 적용

조흥은행은 채권금융기관회의를 열어 강원산업, 삼표상사, 삼표산업, 삼표강원중공업 등 강원산업 4개 계열사에 대해 오는 10월 17일가지 구조조정협약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1998년 7월 29일 〈한겨레〉

삼표제작소·강남도시가스 매각, 강원산업 자구책 일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철강업체 강원산업이 자구책 차원에서 계열 상장사인 삼표제작소를 매각한다.
강원산업 자금팀 관계자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상장사인 삼표제작소, 비상장업체인 강남도시가스 2개사를 매각한다는 것이 회사의 기본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표제작소를 적절한 주당 가격에 인수하려는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삼표제작소를 강원산업에 흡수합병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1998년 11월 28일 〈매일경제〉

강원산업 명예회장 정인욱씨 별세

정인국 강원산업 명예회장이 25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60년대 연탄사업에 진출, 이른바 삼표연탄 신화를 일궈낸 주인공으로 재계에서 몇명 안 남은 창업 1세대 중 한 명이었고, 서울대 공대 교수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전문 지식인이기도 했다.

1999년 3월 26일 〈동아일보〉

강원산업 포항공장 파업 맞서 직장폐쇄

강원산업 포항공장 노조가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회사 측이 직장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중략) 노조는 임금 인상과 지난해 반납한 상여금 지급, 근로자 334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한 반면, 사측은 임금동결과 상여금 삭감, 조합원 일부 정리해고 등을 제시했다.

-1999년 5월 11일 〈경향신문〉

1999년 11월 3일자 〈조선일보〉 기사. 강원산업이 인천제철에 인수됐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99년 11월 3일자 〈조선일보〉 기사. 강원산업이 인천제철에 인수됐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남은 두 형제는 애증의 땅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부동산을 내려놔야 했다. 강원산업이 인천제철(현 현대제철)과 합병되면서 땅 소유권을 사돈집안인 현대가에 내준 것이다. 강원산업과 인천제철은 1999년 말 합병을 결의했다. 2000년 5월 2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토지 소유권은 인천제철로 이전됐다. 그해 인천제철은 강원산업에 이어 삼미특수강까지 인수하며 몸집을 키웠고, 2001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로 새롭게 출범했다. 성수동 공장은 임차 운영됐다.

인천제철-강원산업 합병 결의

인천제철과 강원산업은 두 회사의 합병을 결의했다고 증권거래소에 공시했다. 합병일은 내년 1월 31일.
(중략) 이에 앞서 강원산업에 대해 기업개선작원을 진행 중인 채권은행단은 강원산업 부채 1조3000억 원 중 2500억 원을 출자전환키로 결정했다.
국내 최대 전기로 업체인 인천제철과 강원산업이 합병하면 세계 제2대 전기로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1999년 11월 3일 〈조선일보〉

현대차 분가로 그룹해체 시동

현대자동차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분리 승인을 받아 결국 현대그룹과 딴살림을 차렸다. 자동차 계열분리로 정주영씨 일가의 경영권 분쟁 불씨가 사라지면서 현대사태는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중략) 이번 분리에 인천제철도 포함되면서 현대차의 철강업 진출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대차는 겉으로 인천제철을 직접 경영할 의사는 없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공정위 판단은 받아들이지만 지금은 자동차사업에 전념할 때"라고 밝혔다. 그러나 MK가 철강업에 미련을 갖고 있는 데다 인천제철 내부에서도 현대차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해 '동거생활'은 꽤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8월 31일 〈경향신문〉

 

삼표 다시 살린 애증의 땅, 정도원·정대현 부자에게 옥토 될까


부친 정인욱 명예회장이 별세했고, 장남인 정문원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차남인 정도원 회장은 레미콘·골재업체인 삼표산업을 중심으로 강원산업그룹 재도약을 꾀했다. 그리고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부동산 시장을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의정부는 수도권 아파트 공급 확대, 세제 혜택 강화, 규제 완화 등 정책을 펼치며 집값 끌어올리기를 시도했고, 끌어올린 집값을 경제 버팀목으로 삼는 경기 부양책을 펼쳤다. 성수동 공장에서 레미콘·골재를 생산하던 삼표산업에게 일감이 쏠렸다. 삼표산업은 당초 업계 예상보다 빠른 2002년 워크아웃에서 벗어났고, 정도원 회장은 2004년 삼표그룹을 공식 출범시켰다. 강원산업그룹이 오늘날 삼표그룹으로 완전히 변태하는 순간이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은 과거의 강원산업그룹, 현재의 삼표그룹이 있게 한 옥토였다.

이 같은 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왜 땅 주인인 현대제철이 삼표그룹에게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부지를 매각해 삼표그룹이 개발 주체가 돼 사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성수동 공장 철거가 이뤄지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우리라. 최근 본지와 만난 삼표그룹의 한 관계자는 "성수동 부지는 풍납동 부지와 더불어 창업주의 애정이 깊었던 땅이다. 그런데 두 아들이 경영을 맡은 이후 무리한 철강업 투자와 IMF 외환위기로 강원산업그룹이 그 땅을 잃은 것이다. 아마 부친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고, 그만큼 땅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라고 봤다. 

삼표그룹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일대 땅에서 과거처럼 또다시 달콤한 과실을 맺을 수 있을까. 관련 업계에선 변수가 많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당장 매매가 문제가 걸린다. 부지 매입가와 개발이익 추정치간 격차가 크다면 이와 관련된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업계에선 삼표그룹이 성수동 개발사업을 3세 승계 작업(정도원 회장→정대현 사장)에 적극 활용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만약 개발 과정에서 정대현 사장이 이끄는 에스피네이처 계열에 일감이 몰리는 일이 벌어진다면 후폭풍이 상당할 전망이다. 강원산업그룹 삼부자의 옥토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683번지, 삼표그룹 부자에게는 어떤 의미의 땅이 될까.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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