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펼쳐지는 ‘왕좌의 게임’ [시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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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서 펼쳐지는 ‘왕좌의 게임’ [시사텔링]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9.20 17: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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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vs. 현대건설, 울산 B04구역에서 만난 건설업계 양대산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이 울산 중구 B04구역 재개발사업 시공권을 놓고 한판승부를 벌일 전망입니다. 국내 건설업계 양대산맥인 이들이 정비사업 수주전을 펼치는 건 2007년 이후 15년 만이라고 합니다. 사업비만 약 2조 원으로 평가되는 매머드급 프로젝트에 시공능력평가 1, 2위간 경쟁구도까지 형성됐으니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이 상당한데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지만 이번 잔치는 논외로 보입니다. 삼성물산은 한남2구역에서 사실상 철수하고, 현대건설은 방배신동아 입찰 포기를 선언하는 등 양사 모두 울산 중구 B04구역에 전사적 역량을 총 집결시키는 분위기이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출혈경쟁과 난타전을 피하던 두 업체가 갑자기 왜 울산에서 뜨거운 맞대결을 예고하고 있는 걸까요. 장기 침체에 대비한 수익 확보 등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오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양사의 한판승부는 지난해 초 부산에서 성사될 뻔했습니다. 당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해운대 우동1구역 재건축사업 현장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모든 관계자들이 두 업체의 수주전 참전을 확신했었죠. 하지만 이들은 현장설명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돌연 입찰을 포기했습니다. 불참 배경을 두고 호사가들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가장 설득력이 있는 분석은 오너 리스크 최소화였습니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공판 문제가 걸려있었고, 현대건설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 직후여서 양사 모두 구설수에 휘말리는 걸 꺼렸다는 겁니다(관련기사: ‘우동1’ 거른 삼성물산·현대건설, 새해 정비사업 수주전략 엿보기 [시사텔링]).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올해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고, 정의선 회장은 자신만의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양사의 적극적 영업활동을 가로막던 장애 요소가 적잖이 해소된 셈입니다. 모그룹 눈치를 보느라 경쟁이 없는 곳, 수의계약이 가능한 곳만 찾던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어깨를 좀 펼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 건설업계를 대표하는 굴지의 건설사들이 라이벌과의 경쟁을 피하겠다고, 패배가 두렵다고 물러선다면 속된 말로 그게 무슨 쪽팔림입니까.

삼성물산, 현대건설 CI ⓒ 각 사(社)제공
삼성물산, 현대건설 CI ⓒ 각 사(社)제공

무엇보다도 울산 중구 B04구역 재개발사업 수주전은 국내 건설업계 1위를 서로 자신하고 있는 양사가 '왕좌에 앉을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종의 '왕좌의 게임'이라는 생각입니다.

삼성물산은 2014년 이후 올해까지 9년 연속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에서 1위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업적은 항상 평가절하됩니다. 시공능력평가 항목 중 경영상태를 평가하는 경영평가액을 제외하고, 건설업체로서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공사실적평가액과 기술평가액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이 앞선다는 이유에서죠. 그래서 관련 업계에선 "삼성물산에서 '삼성' 떼면 2위", "진짜 1위는 현대건설'이라는 식의 말들이 종종 들립니다. 더욱이 현대건설이 '왕자의 난' 여파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 정비사업 시장에 복귀한 2001년 이후, 삼성물산은 현대건설과의 수주전에서 단 한 차례도 승리를 거둔 적이 없습니다. '래미안의 귀환'이 이뤄진 2020년 이후에도 현대건설은 물론,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을 최소화하는 데에 치중했습니다. 때문에 '래미안의 반쪽짜리 귀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번에 시공권을 거머쥔다면 삼성물산은 일거에 시평 1위의 당위성을 갖출 수 있게 될 전망입니다. 경쟁사의 심장부인 울산에 래미안 깃발이 걸린 창을 꽂는 것이니까요. 마치 2002년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그룹 사옥 바로 앞에 운니동 삼성래미안 주택문화관을 설치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야성이 넘치는 '래미안의 진정한 귀환'이 아닐까요.

이는 현대건설이 확보해야만 하는 당위성이기도 합니다. 현대차그룹의 텃밭인 울산에 경쟁사의 깃발이 나부낀다면 '진짜 1위'라는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날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복수의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정의선 회장이 현대건설 경영진에 직접 '울산 수주전에서 승리하라'는 내용의 지시를 내렸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는 현대건설이 방배신동아에서 철수한 이유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왕좌에 앉을 당위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최근 수년 동안 현대건설은 도시정비사업 최대 실적을 연이어 경신하며 박수받을 만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삼성물산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오너 리스크 문제로 두문불출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성과라는 혹평이 존재합니다. 이는 래미안이 수주전에 지속적으로 나섰다면 힐스테이트는 물론, 하이엔드 브랜드인 디에이치도 경쟁에서 밀렸을 거라는 사후가정사고 하에 이뤄진 비합리적 평가임이 분명합니다만, 정비사업 조합원들을 비롯한 고객들이 사후가정사고를 통해 서비스와 제품을 선택하는 건 다반사입니다. 결국 현대건설이 극복해야 할 지점 중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현대건설도 이 지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건설은 올해 시공능력평가 항목 중 공사실적평가액에서 삼성물산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아파트 등 국내 건축사업 비중을 늘린 결과입니다. 돈이 되는 주택사업에 집중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루나, 이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가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합니다.

울산에서 만난 건설업계 양대산맥,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간 국내 건설업계 1위로서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한 왕좌의 게임, 과연 왕좌를 차지하는 건 어느 건설사일까요. 양사가 화끈하면서도 공정하고 깨끗한 경쟁을 벌이길 바랍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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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자 2022-09-21 23:22:50
박기자 기사를 늘 챙겨보는 독자입니다. 자의가 아니라 일때문에 보는데도 종종 재미있습니다. 계속 재미있는 기사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