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환의 최후진술(29)>항소이유서(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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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환의 최후진술(29)>항소이유서(下)
  • 유성환 자유기고가
  • 승인 2014.08.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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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유성환 자유기고가)

▲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27차 유네스코 총회 본회의에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 (93.10.25~30)

수탈 체제 운운 문제

피고의 원고 ‘인천 사태는 독점 재벌 위주의 경제 정책과 민중 수탈에 대한 민중들의 처절한 생존권 투쟁이다’를 법원은 우리의 체제를 민중 수탈 체제로 왜곡했다고 규정,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파괴되고 불타는 인천에서 수만의 10대 근로 청년들이 생존권을 부르짖는 모습을 목도하고, 한 야당 정치인으로서 열악한 근로 조건과 기아 임금(월급 10만원 이하)에 허덕이는 수백만의 근로자(5백 50만 명, 1982년도 노동부 집계)들의 참상을 표현코자 ‘민중 수탈’이란 용어를 썼으나, 이 용어는 사회주의자들이 애용하는 민중 착취와 대조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참고로 <대국어사전>(1986년도 판, 현문사 발간, 이숭령 외 5인 공저)을 보면, 수탈(Piunder) : 긁어 빼앗음, 강제로 빼앗음 (1208면), 착취(extortion) : 자본가나 지주가 노동자나 농민에 대하여 그 노동 가치에 해당하는 보수를 주지 않고 잉여가치를 독점하는 것 (1953면)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수탈이란 문화적 표현이며, 착취는 이데올로기적 표현인 것입니다. 법원은 피고의 민중 수탈이란 표현을 수탈 체제란 표현까지, 다시 현 체제(제도)로까지 비약, 확대시켜 해석하고 있습니다. 형사 처벌에 있어서 유추 해석이나 확대 해석은 피고에 유리한 경우에 한할 것입니다. 피고는 검찰 신문에서도 분명히 하였습니다마는, 민중 수탈 ‘체제’란 표현은 한번도 한 일이 없으며 결코 자본주의 제도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신문 조서 599, 610, 619, 643)

인천 사태 평가 문제

법원은 피고의 원고 ‘한반도의 분단과 강대국의 현상 고착 정책에 대한 민중들의 자발적·자주적 통일 투쟁이다’라고 한 것을 북괴의 주장인 ‘미제는 두 개의 한국 조작 책동으로 민족의 영구 분열을 획책하고…’와 결부하여 북괴 주장에 부합하는 내용을 원고에 기재했다는 뜻으로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1심 때 검찰의 신문 내용이 주로 남북 UN 동시가입 문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피고의 원고문이 갖는 본래의 뜻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였으므로 차제에 정확히 밝히고자 합니다(1심 때 최후진술과 같음).

피고의 원고 속에 강대국이란 것은

가) 미·소·중·일 4개국을 지적하고 있는 데 반해(국시 문제를 언급할 때도 4개국을 말했음, 신문 조서 617) 북괴의 주장은 미국 1개국을 말하는 것이므로 전연 상이하며

나) 피고가 말하는 형상 고착 정책이란 것은 해방 후 40년간 계속된 남북의 분단 상태(status quo)를 의미하는데 반해, 북괴의 두 개의 한국 조작 운운의 뜻은 박대통령이 제안한 (미국의 협조 아래) 소위 6·23선언(1973. 6. 23.)을 말하는 것입니다. 6·23선언이란 남북한 UN 동시 가입, 상호 국가 승인, 두 개의 국가 공존,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북괴는 이것을 소위 미제의 음모로 악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괴 주장의 허구, 남북한 UN 동시 가입안은 소련의 그로미코 외상이 제안한 것임. 김학준 교주 저 <한국 민족주의의 통일 논리>193면 참조)

이와 같이 피고의 원고 내용과 북괴의 선전 내용과는 그 문장과 문맥상 뜻하는 내용이 전연 다르므로, 북괴 주장과 부합 운운은 어불성설이며, 이 부분 1심에서의 유죄 인정은 재심되어야 함을 주장합니다.

인천 문제를 국정 질의로 택하게 된 동기와, 통일 문제와의 연관성으로 보는 배경

가) 피고는 인천 사태를 직접 목격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분석한 결과, 이것은 정권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모든 적체가 일시에 폭발한 것이며, 특히 정통성이 문제가 되는 군사 정권의 장기 집권, 부의 편재, 노사간·도농간(都農間)의 불균형의 심화 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다) 40년간이란 기나긴 분단은 오직 강대국들의 강력한 현상 고착 정책(전쟁 억제, 평화 유지)에서 가능하였으며 라) 한반도에서의 현상 고착 정책은 전쟁 억제와 평화 유지 정책이지 한반도의 통일 정책이 아니라 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김학준 교수 저 ≪반외세의 통일 논리≫ 124면, 송건호·강만길 교수 저 ≪한국민족주의 2≫ 349면, 이호재 교수 저 ≪북방외교의 길≫ 18, 21면. 특히 일본의 우도 대사는 1970년대 한반도의 분단이 일본에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음), 마) 그러므로 비유컨대 인천 사태에서의 최루탄, 대재(大災), 비명 등은 우리 민중들의 강대국들의 40년에 이르는 현상 고착 정책(전쟁 억제는 고맙지만)에 대한 선의의 항의로 보았으며, 미·소·중·일 등이 추진하는 남북 UN 동시 가입(신민당은 1973. 7. 외무위에서 동시 가입 반대 질의한 일 있음) 문제만 해도, 동서독과는 달리 6·25 때 한국과 UN에 전쟁을 감행한 북괴(전범)를 이제 와서 신성한 UN에 가입시키려는 강대국 중심의 정책에 대해서 민중들의 자발적 분노의 표시로 보았으며(1986. 10. 18. 24. 자술서 . 신문 조서 605, 612, 617, 644, 압수 No 20, 기초 초고에 UN 가입, 국민 감정 운운 있음), 특히 통일호 기차를 보거나, 지하철을 보거나, 이 나라의 통일 문제를 생각해 본 피고의 눈에는 (신문 조서 579, 580), 인천 사태의 전체적 뜻, 역사 속에서의 뜻은 민중들의 자발적·자주적 통일에의 몸부림(투쟁, 605)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해 본 것입니다.

21세기를 불과 13년 앞두고, 1876년 개항 이래 1백 년이 넘도록 아직도 완전 통일 자주 독립 국가를 형성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국민대표(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 이익(실지 회복과 민주 통일)을 위해 강대국들의 자국 이해 위주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 하나의 소신을 표현한 것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하여 재판까지 한다는 것은 국가보안법이 어느 나라의 법익을 보호하는지 어리둥절케 합니다. 2차 대전이 종식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소 양 초강대국이 오직 한반도의 통일 문제만을 위한 국제회의를 단 한 번도 주도하지 아니한 것은 신과 인류에 대한 거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천 사태에 대한 피고의 뜻은, 이 땅에 태어난 누군가가 강대국들에게 해야 할 말을 해 본 것입니다. 강대국 미·소·중·일에 대해서 한 말이 어떻게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의 대상이 되는지 심각한 회의를 느낍니다. 인천 사태 평가 부분은 민족의 자존과 긍지로서 당연히 공소 기각의 결정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항소심의 재심을 요청합니다.

검사의 항소에 대하여

법원의 법리 운운에 대하여, 검찰이 인용한 1979년 1월 16일의 대법원 재판에서 지적하였듯이, 피고의 원고 내용 중 ‘반공 정책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시켜야 한다’는 문장의 뜻이 상기 판례에서 지적한 ‘문장의 어떤 구절 또는 글귀가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동조한 것이라고 도저히 해석되지 아니한다면 모르거니와……’에 해당된다고 사료되므로 검찰의 항소 이유는 순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신문 조서 579, 581, 586, 638)

피고의 원고 수정 과정은 정치인으로서 연설 원고를 좋은 문장으로 만들겠다는 의욕에서 한 것이지, 결코 외부의 어떤 영향으로 한 것이 아니며, 의원들의 국회 연설 원고는 초안에서 실제 연설문이 되기까지 보통 10여 회의 수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신문 조서 589).

검찰은 피고가 원고 일부 내용이 공산주의에 입각한 통일도 무방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는 표현이라는 점을 시인한 바 있다고 지적하였으나, 피고가 검사 신문시에 피고의 원고 문장이 서술적 표현 형식의 문장이 아니라, 단편적 질문식 문장이기 때문에 행간의 의미가 생략되어 일부 맹목적 반공주의자나 일부 과격한 집권당 의원들(야당 의원 연설 때 의사 방해 담당반)에게 오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말한 일이 있었던 것이지, 결코 피의 사실을 시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피고는 통일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그 가치상으로 상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검사의 신문 조서 작성시에 수차 밝힌 바 있습니다(신문 조서 581, 586, 638).

상기와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나이다.

1987. 5. 30

피고인 유성환

 

▲ 김영삼총무 초산테러피습시 민주전선지가 그 진상을 폭로, 대구 동성로 (1969. 6. 20)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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