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와 보폭 맞추는 재벌들, 속내는?
문재인 정부와 보폭 맞추는 재벌들, 속내는?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8.14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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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엘지그룹 대표이사,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 시사오늘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구광모 엘지그룹 대표이사,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 시사오늘

한일 경제전쟁 등으로 대내외 불투명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재벌 대기업 오너 경영인들이 최근 문재인 정부와 보폭을 맞추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위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해 국민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정치권발(發) 리스크를 사전에 대비하는 포석을 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오는 19~22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경기 이천 SKMS(SK경영관리체계)연구소 등에서 '디지털전환과 AI의 미래', '사회적 가치와 행복 추구 극대화'라는 주제로 제3회 이천 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주제는 최 회장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판도 키웠다. SK그룹 측은 "이번 포럼의 규모가 1·2회에 비해 더 커져 국내외 주요 인사 5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라며 "최 회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연례 심포지엄인 만큼 한국판 다보스포럼처럼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최 회장과 SK그룹의 이 같은 행보는 문재인 정부가 최근 인공지능(AI) 분야를 국가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점찍은 것과 무관치 않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인공지능에 대한 조언을 들은 뒤 이뤄진 8·9 개각에서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최기영 서울대 교수를 발탁했다. 최 교수는 지능형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인사다. 이천 포럼 주제가 개각 후 공표됐다는 점은 최 회장이 현 정권의 정책기조와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 조치 이후 문 대통령이 줄곧 강조하고 있는 극일(克日) 정신에 부합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재벌 경영인들도 여럿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일본산 소재를 제외하는 '탈일본 생산 원칙'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다. 이번 조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지난달 5박 6일 간 일본 출장 당시 소재 확보의 어려움과 현지의 강경한 분위기를 몸소 체감했던 이 부회장이 탈일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소재 교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상당한 손실이 예상됨에도 삼성전자가 탈일본을 천명한 건 최근 정부여당과 이 부회장의 스킨십이 부쩍 늘어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7월 문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면담을 함께했으며, 지난 1월과 4월에는 삼성전자 화성 사업장에서 각각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문 대통령을 직접 안내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 회의에서 일본 혼다를 지목하고 일본차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해당 회의에서 오는 2020년 출시 예정인 '카니발 신차'로 글로벌 미니밴 시장에서 혼다의 '오디세이'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가 특정 업체의 특정 차량을 신차 경쟁 상대로 지목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지난달 10일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만나 소재 국산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아울러, 구 회장은 인공지능 등 미래사업을 중심으로 사업재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역시 일본의 추가 수출 규제 품목으로 거론되고 있는 탄소섬유 관련 기술 개발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2019 국회 시정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 국회사진취재단
2019 국회 시정연설 중인 문재인 대통령 ⓒ 국회사진취재단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 경영인들이 현 정권의 보폭에 맞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여론과 국면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어차피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정부 정책기조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문 분야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함으로써, 무기력한 정부보다 행동하는 기업이 더 낫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넷 여론만 봐도 부정부패, 갑질로 얼룩졌던 재벌 이미지가 한일 경제전쟁 발발 이후에는 위기 속 해결사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그리고 새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조성옥 서울대 교수를 지명한 점 등을 미뤄봤을 때, 차기 총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은 경제위기에 대한 비판 희석과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재벌개혁 구호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높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여러 정치공학적인 리스크가 발현될 공산이 큰 시기이기 때문에 오너들이 미리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재벌 오너 경영인들의 각자 처지가 이 같은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말 또는 오는 9월 국정농단 사건 대법원 최종 선고, 오는 10월 사내이사 임기만료 등이 예정돼 있어 자신에 대한 우호적 여론 형성이 필요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세간의 화제가 된 사생활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엘리엇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당분간 국민연금의 도움이 필수적이며, LG그룹은 화웨이 이슈 관리를 위해 긴밀한 소통이 지속돼야 한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다음달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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