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여론전을 잘 펼치던 야권이 중대한 우를 범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개석상에서 문제성 있는 발언을 한 것입니다.
"결국은 그 두 분의 선대가 친일, 독재에 책임 있는 분들이다 보니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 이번 교과서 사태의 발단이라고 생각한다."
(2015년 10월 18일, 서울 강남구 학부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여기서 '두 분'이란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김용주를 말합니다. 정부여당이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배경에 박정희·김용주의 친일·독재 행적을 미화하려는 심산이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날 발언은 문 대표의 명백한 실착입니다. '헛발질'이라고 규정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요. 이유들을 한번 꼽아볼까요?
우선 야권을 자승자박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역사 교육 문제는 객관성이 반드시 담보돼야 하는 사안입니다. 학생들이 편협한 사고에 빠지지 않게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의견들을 바탕으로 지도해야 합니다. 이는 야당이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주요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논리에 따르면,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위해 친일·독재는 불가피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친일·독재로 인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이 퇴보됐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후예들이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이라는 문 대표의 말에서는 이 같은 다양성을 무시하는 편향적인 사고방식이 느껴집니다. 자신들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린 셈입니다.
또 다른 문 대표의 실착은 대한민국 보수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박정희, 국정 파트너인 여당 대표의 선친을 거론하면서 이념 공방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 대 진보의 이념 대립으로 군불을 지폈으면, 그 다음부터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인정교과서로 가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면 됐습니다. 괜히 박정희·김용주 등을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김용주는 독재정권에 항거해 1960년 민주당 원내총무직을 수행했던 인사입니다. 그는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기도 했습니다.
야당의 당대표가 김용주를 박정희와 묶어 '친일, 독재에 책임 있는 분'으로 규정한 것은 곧, 스스로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이럴 거였다면 왜 새정치연합이 '야당 창당 60주년 기념식'을 주최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문 대표의 실착은 국정교과서 찬성 세력에 먹잇감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여론은 분명 야권에 유리한 국면으로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일단 학계의 반발이 극심합니다. 전국 방방곡곡의 역사학자들이 국정교과서 집필을 하지 않겠다며 성명을 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당장 검·인교과서 체제가 폐기되면 경제적 타격을 입는 당자자들인 만큼 목소리는 점점 높아질 겁니다.
교육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데요. 전국 초·중·고교 역사교사 6000여 명 중 1/3(3분의 1)이 가입한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9일 "박근혜 정부가 제작하는 국정교과서의 집필과 심의, 그리고 현장 적합성 검토에 일절 협조하지 않겠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복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 입장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합니다. 그러나 찬성 응답자들 대부분이 PK(부산경남)·TK(대구경북) 거주자, 60대 이상 고령자 등임을 감안하면,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하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의 영향이라는 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국정교과서 반대 여론은 앞선 문 대표의 발언으로 인해 한풀 꺾일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하는 것은 정치금도를 벗어난 무례의 극치"라고 강력 반발했습니다.
같은 당 원유철 원내대표도 같은 자리에서 "문 대표가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독재와 친일의 후예로 규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하려 한다는 인격살인적 거짓 선동 발언을 했다.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막말을 쏟아내는 문 대표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성토했습니다.
정부여당에게 여론몰이를 할 빌미를 준 셈입니다.
역사 교육 문제는 애초에 정부·국회 등 정치권에서 다룰 사안이 아닙니다. 정치권이 이 문제를 계속 쥐고 있을수록 이념 공방은 확산되기 마련입니다. 역사 교육 후퇴가 불 보듯 뻔합니다.
정부여당을 자극하는 야당 대표의 발언은 이념 공방을 거세지게 합니다.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국민들을 피로하게 만들뿐입니다.
문재인 대표가 진정 국정교과서를 저지하고 싶다면, 이제 '헛발질' 그만하고 볼 좀 제대로 차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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