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맞아?
[주간필담]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맞아?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8.09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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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변화, 보수는 안정 추구한다는 뜻…상황 따라 우파도 진보주의 될 수 있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인 의미기 때문에, 좌파 우파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시사오늘 문민지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인 의미기 때문에, 좌파 우파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시사오늘 문민지

프랑스 혁명이 한창이던 1789년 8월 28일. 국민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했다. 국민의회 결정에 왕이 반대할 수 있는 거부권을 인정할지 여부를 두고 왕당파와 공화파 간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표결에 부치기로 한 순간, 왕당파는 연단의 오른쪽으로, 공화파는 왼쪽으로 모여들었다. 일어서거나 앉는 것으로 표결을 하던 당시 관행상,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는 것이 수를 세기 편하다는 이유였다.

공화파가 왕당파를 타도한 뒤 구성한 1792년의 국민의회에서도 의장석 오른쪽에 온건 개혁세력인 지롱드가, 왼쪽에 급진 개혁세력인 자코뱅이 자리를 잡았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체제 안정을 우선시하면서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오른쪽에, 개혁을 지속하면서 더 큰 변화를 이뤄내려는 세력이 왼쪽에 앉는 관례가 생겼다. 이것이 지금까지도 흔히 사용되는 좌파·우파라는 용어의 기원이다.

용어의 유래만 따지면, 좌파는 변화 우파는 안정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변화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변화 그 자체는 특정 세력의 가치나 철학이 될 수 없다. 또한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큰 변화가 이뤄지면서, 우파 역시 변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현대 학자들은 좌우를 ‘변화의 유무’가 아닌 ‘변화의 크기와 방향’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면 좌파와 우파는 각각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가. 많은 학자들은 이 물음에 대한 단서를 ‘인간’에서 찾는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냐에 따라 그들의 지향점도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등의 문제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나타나는 표피적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들에 따르면, 좌파와 우파 모두 현실이 불평등하고 부조리하다는 데 동의한다. 차이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여부다. 좌파는 인간의 이성을 크게 신뢰하기 때문에, 사회 도처에 깔려 있는 문제들을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사회적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운명’이 아니며 사회가 진보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잘못된 구조를 뒤엎고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면 모두가 지금보다 잘 사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대 사회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주체는 국가다. 그래서 좌파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가능한 국가에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 ‘큰 정부’를 선호하며, 직접 시장에 개입해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좌파의 특성을 큰 정부 선호, 평등 우선시 등으로 설명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우파는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우파가 보기에, 인간에게 본능이 있는 이상 완벽한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때문에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생성된 지금의 시스템과 전통을 존중해야 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뒤바꾸면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파는 어느 정도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공동체 유지를 위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나가는 쪽을 택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파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가의 개인권 침해는 오직 법률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우파가 작은 정부와 자유,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우파도 정부의 역할 확대에 동의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철학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진보주의, 우파와 보수주의를 동일시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 접근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좌파는 변화를 요구하는 진보적인 세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적·공간적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좌파와 진보주의, 우파와 보수주의를 등치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가령 이미 좌파적 가치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우파도 진보주의가 될 수 있다. 또한 좌파는 ‘완벽한 사회’를 꿈꾼다는 점에서, 좌파와 우파가 모두 진보주의로 묶이는 그림도 가능하다. 좌파=진보주의, 우파=보수주의라는 등식이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미래통합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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