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쪽 산줄기의 중심, 속리산 천왕봉에서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럼] 남쪽 산줄기의 중심, 속리산 천왕봉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9.28 15:0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기영의 山戰酒戰〉산속 깊은 곳에 세상 시름을 내려놓고…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속리산 천왕봉. 속 시원하게 뻗어 있는 산줄기와 골짜기들을 가장 큰 어른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천왕봉의 모습은 진정 경외롭다 ⓒ 최기영
속리산 천왕봉. 속 시원하게 뻗어 있는 산줄기와 골짜기들을 가장 큰 어른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천왕봉의 모습은 진정 경외롭다 ⓒ 최기영

백두산에서 시작해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며 남으로 뻗어 내리는 백두대간은 휴전선을 지나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을 거쳐 소백산, 월악산에 이른다. 그리고 청화산 아래 늘재에서 숨을 고른 뒤,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에서 솟아올랐다가 이후에 추풍령을 거쳐 덕유산과 지리산으로 이어진다. 

충북 보은군, 괴산군, 경북 상주의 경계에 있는 속리산은 남쪽 백두대간 한복판에 있으면서 민족의 젖줄인 한강과 낙동강, 금강이 분기하는 곳이다. 그래서 청화산에서 늘재로 내려가는 길, 속리산이 환히 보이는 곳에는 '삼파수의 산'이라 쓰인 비석이 있다. 그리고 속리산 문장대와 천왕봉을 잇는 능선은 백두대간 산줄기에 포함된다.

관악구에 사는 산(山)친구에게 안부를 묻자 그는 요즘은 관악산만 다닌다고 했다. 그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꽤 열심히 실천하고 있었다. 나 역시 북한산만 다닌다고 했더니, 좋은 산에 한번 가보자며 의기투합을 했다. 그렇게 둘은 오랜만에 속리산 백두대간 길을 걷기 위해 경북 상주 화북면에 있는 화북분소로 향했다. 

문장대로 오르는 길. 흙길과 돌계단, 나무계단이 번갈아 이어지며 가볍게 땀을 내며 걷기에 좋다 ⓒ 최기영
문장대로 오르는 길. 흙길과 돌계단, 나무계단이 번갈아 이어지며 가볍게 땀을 내며 걷기에 좋다 ⓒ 최기영

화북에서 문장대로 오르는 길은 흙길과 돌계단, 나무계단이 번갈아 이어진다.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가볍게 땀을 내며 걷기 좋다. 그리고 초입부터 산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도 시원하다. 계곡 물소리가 멀어지고 오르막이 심해지나 싶을 때 수풀 너머 바위기둥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난다. 그 유명한 문장대(1054m)다. 

문장대는 바위가 구름을 뚫을 듯 솟아올라 있다고 해서 운장대라고도 불렸다는데, 밑에서 보면 마치 하늘을 향해 비상을 준비하는 로켓처럼 보인다. 문장대 안내판에는 이곳을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고 했다. 원래 그곳은 사람이 오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철제 계단이 놓여 있다. 그런데 하도 가팔라서 오를 때는 약간의 담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문장대에 서면 사방으로 속리산 자락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장관이다. 천왕봉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며 속리산 서북능선의 모습도 시원하다. 

계곡 물소리가 멀어지고 오르막이 심해지나 싶을 때 수풀 너머 바위기둥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난다. 그 유명한 문장대다 ⓒ 최기영
계곡 물소리가 멀어지고 오르막이 심해지나 싶을 때 수풀 너머 바위기둥 하나가 떡 하니 나타난다. 그 유명한 문장대다 ⓒ 최기영
문장대에 올라 속리산 관음봉과 묘봉 방면으로 바라 본 모습 ⓒ 최기영
문장대에 올라 속리산 관음봉과 묘봉 방면으로 바라 본 모습 ⓒ 최기영

문장대를 내려오면 천왕봉까지 3.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온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유순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능선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다. 배가 출출해지자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태양이 부담스럽지 않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속리산의 가을도 어느새 깊어 있었다. 

달콤한 휴식 뒤에 다시 산길을 조금 걸었더니 신선대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막걸리와 함께 안주까지 먹을 수 있는 휴게소가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 그것도 국립공원의 능선 길에 대피소가 아니라 술과 안주를 파는 휴게소라니…. 반가운 마음에 허기를 달랜지 얼마나 됐다고 다시 자리를 잡고 감자전과 함께 시원한 막걸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한 통을 다 비웠다. 세속과 이별을 한다고 해서 이곳을 속리산이라고 했다는데 깊고 깊은 산골에서 시원한 막걸리 한잔에 세상의 시름이 몽땅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속리산은 정말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대한 바위를 누군가 일부러 겹쳐 쌓아 놓은 듯 기암괴석들의 풍모가 남다르다 ⓒ 최기영
속리산은 정말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대한 바위를 누군가 일부러 겹쳐 쌓아 놓은 듯 기암괴석들의 풍모가 남다르다 ⓒ 최기영

다시 산행을 이어갔다. 속리산은 정말 바위가 많은 산이다. 거대한 바위를 누군가 일부러 겹쳐 쌓아 놓은 듯 기암괴석들의 풍모가 남다르다. 친구는 속리산이 도봉산을 닮은 것 같다고 했다. 말을 듣고 보니 산길은 덜 험하지만 정말 북한산이나 도봉산에 온 것처럼 산세가 친숙하다. 그 두 개의 산처럼 속리산도 화강암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란도란 속리산 비경을 감상하며 산길을 걷자 드디어 천왕봉(1058m)에 도착했다. 속리산 하면 문장대나 법주사를 많이들 떠올리는데 속리산의 주봉은 바로 천왕봉이다. 한강과 금강을 가르는 한남, 금북정맥이 갈라지는 곳도 바로 이곳 천왕봉이다. 남쪽 땅의 모든 산이 이곳을 출발해 뻗어 나가고 또 이곳으로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산정도 좁고 정상 표지석도 문장대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한 듯 보이지만, 속 시원하게 뻗어 있는 산줄기와 골짜기들을 가장 큰 어른처럼 내려다보고 있는 천왕봉의 모습은 진정 경외롭다. 

천왕봉에서 다시 오던 길을 조금 내려와 우리는 장각동 방향으로 하산을 했고 장각폭포에서 산행을 마무리했다. 

천왕봉에서 상주 방면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거대한 산세에 패인 깊은 골에는 이곳 천왕봉에서 비롯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 최기영
천왕봉에서 상주 방면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거대한 산세에 패인 깊은 골에는 이곳 천왕봉에서 비롯된 물줄기가 흐르고 있다 ⓒ 최기영

사족을 달면서 글을 갈음할까 한다. 산행 정보를 찾던 중 속리산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한국 8경 중 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일곱 곳은 어디라든가, 그것을 누가 어느 문헌에서 이야기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없다. 궁금한 건 해결하고 넘어가야겠기에 정보를 찾던 중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의 인터뷰 기사 하나를 찾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가요 '황성옛터'를 작사한 왕평 선생이 1936년도에 예로부터 조선8경이라 여겨오던 것을 묶어서 '조선팔경가'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 노래에 의하면 조선 팔경은 금강산, 한라산, 경주석굴암, 부산해운대, 부전고원, 평양, 백두산, 압록강 등이다. 그런데 분단 후 남과 북의 '8경가' 노래 내용이 달라졌다. 남한에서는 '대한팔경가'로 고쳐 불렀다. 

천왕봉에서 문장대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백두대간 산줄기이기도 하다 ⓒ 최기영
천왕봉에서 문장대쪽으로 바라본 모습이다. 백두대간 산줄기이기도 하다 ⓒ 최기영

남쪽의 '대한8경'은 원래의 '조선8경'에서 부전고원과 압록강을 빼고 지리산과 묘향산을 넣었다. 북한도 지리산과 묘향산을 넣었는데 대신 한라산과 압록강을 뺐다. 그러면서 북한은 조선8경 다음가는 경치로 '조선8승'을 소개하며 경성, 몽금포, 한려수도, 변산반도, 부여, 해인사 계곡, 한라산과 함께 속리산을 꼽은 것이다. 그러니 속리산은 '대한8경'이나 '조선8경'에는 없고 '조선8승' 중 하나인 것이다. 

아무튼 8경을 매긴다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어서 시대나 정서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속리산은 8경이든 8승이든 어디에 내놓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우리 남쪽 산야의 종갓집이라는 점이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창남 2020-09-28 16:16:00
마콜리는 궁민주....
어~디에서도 머글수 있어야~~~ㅎ
최본부장 빨간모자 조교의 모습으로 리딩부탁허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