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연 지하철 기습시위로 보는 ‘사회적 약자의 딜레마’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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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지하철 기습시위로 보는 ‘사회적 약자의 딜레마’ [주간필담]
  • 박지훈 기자
  • 승인 2022.05.21 09: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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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잘 듣고 있을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박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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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이 직접 총대를 메고 거리로 나옴으로써,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시사오늘 김유종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닿기는 쉽지 않다. 소통할 창구가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어떻게든 전달하기 위해 더러는 과격한(?) 방법을 강구해 목소리 낼 때도 있는 듯하다. 금번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지하철 점거 사태 또한 그러하다.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단체는 꾸준히 장애인의 편의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전장연이 직접 총대를 메고 거리로 나옴으로써, 이들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비단 장애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초 영국에서 발생한 ‘여성참정권운동(서프러제트, Suffragette)’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에선 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었으나, 오직 자산가 계층의 남성들만이 참정권을 가졌다. 시간을 거쳐 참정권의 범위가 늘어났지만, 여성들은 늘 등한시됐었다. 자신들의 권리가 무시되는 것에 격분했던 여성들은 에밀리 팽크허스트를 필두로 서프러제트를 일으켰다. 서프러제트 초기에는 평화로운 시위로 시작됐다. 하지만 점차 시위는 과격해졌다. 여성참정권운동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서프러제트’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창문을 깨고 불을 지르죠. 폭력만이 남자들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서프러제트가 과격해지면서 영국 정부도 여성들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1918년 2월 정부는 인민대표법을 통과시켜 30세 이상 여성의 참정권을 수용했다. 10년 뒤인 1928년에는 양성 모두 21세부터 선거권을 부여하도록 개정됐다. 서프러제트는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의 권리 회복 운동으로 꼽힌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말, 농민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이를 개선해달라 관아에 찾아갔으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참한 곤장이었다. 분노한 농민들이 하나둘 들고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피지배층이었던 양민들이 지배계층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불같이 번진 동학 농민 혁명에 놀란 조정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전주화약’을 맺었다. 농민들을 안정시키려는 조치로 조정에는 교정청을, 지방에는 전라도 53개 군에 농민 자치 행정 기구 집강소를 설치했다. 

목숨을 내놓고 싸운 끝에서야 원하는 조치가 그나마 일부 이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숙연한 일이다. 역사를 거슬러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가 그런 방법을 통해 도달돼왔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행히 민주주의 발전 아래 저항의 변천사도 과격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전환돼왔다. 

20세기, 미국에서의 흑인차별 철폐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를 종국적으로 이끌어낸 것은 말콤X가 이끄는 폭력 시위가 아닌 마틴 루터킹 목사가 이끄는 평화시위였다. 대중의 지지를 얻어 제도를 변화시킨 결과였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3자에게 피해를 주는 과격한 방법보다 평화적 시위가 대중적 지지를 얻는데 명분상 더 수월해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조금이라도 강경해 보이는 시위가 벌어졌을 경우 대중적 공감대를 얻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전장연만 보더라도 기습적 지하철 시위를 두고 일각에선 '충분히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지어져 있다', '서민의 발인 지하철 운행을 막는 것은 도리어 서민들의 반감만 일으킬 것이다' 등 부정적인 반응들을 쏟아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을 볼모로 잡고 있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다.

문제는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사회적 관심조차 받기 어려운 경우들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전장연이 여론의 중심에 서자 정치권에서 앞다퉈 장애인 교통 시설 마련에 집중하겠다는 약속을 내놓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약자들의 딜레마가 생긴다. 과격한 행동으로 비판받더라도 이목을 집중시켜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혹은 아무도 피해 입히지 않는 대신 눈길을 덜 받는 조용한 시위를 해야 하는지 말이다. 결국,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씁쓸하다. 전장연 지하철 기습시위를 통해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어주는지 혹은 들어주고자 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담당업무 : 정경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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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장군 2022-05-24 09:21:52
이준석 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