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름밤 청평에서 즐겼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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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름밤 청평에서 즐겼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6.23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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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우리 돼지 한돈과 ‘同居同樂’하는 우리네 인생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청평 캠핑을 주최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한 고기가 그릴 위에서 익어가고 있다 ⓒ  최기영
청평 캠핑을 주최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제공한 고기가 그릴 위에서 익어가고 있다 ⓒ 최기영

오랫동안 산을 타며 알고 지낸 지인들과 캠핑을 하기로 했었다. 평소 캠핑을 즐기는 한 분께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캠핑이 청평에서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참가자들에게는 현장에서 먹을 수 있는 싱싱한 돼지고기와 기념품을 제공하고, 추가로 저렴하게 고기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음식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양반인지라 산을 타면서도 그분의 음식을 늘 맛있게 먹었기에, 잔뜩 기대를 하며 먼지 쌓인 캠핑 장비를 꺼내놓고 날을 기다렸다. 

청평으로 가는 길은 추억이 많다. 대학 시절 단골 MT 장소였기 때문이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와서 친구들과 왁자지껄하게 내렸던 대성리역을 지나자 우리가 가려던 캠핑장이 금방 나타났다. 현장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텐트를 치고 짐을 꺼내 정리하는 동안 나는 고기와 기념품을 받으러 갔다. 무척 싱싱하고 제법 푸짐했다. 그리고 일행은 현장에서 받은 고기를 활용해 저녁에 먹을 요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캠핑장 이곳저곳은 몹시 분주했다. 여기저기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옆에는 아담한 수영장이 있어서 꼬맹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고, 캠핑장 옆으로 호명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어서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이날 캠핑을 주최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준비한 다양한 이벤트가 진행됐다.

청평의 한 캠핑장의 모습. 이날 한돈캠핑에는 100여 팀이 참가해 우리 돼지 한돈과 함께 캠핑을 즐겼다 ⓒ 최기영
청평의 한 캠핑장의 모습. 이날 한돈캠핑에는 100여 팀이 참가해 우리 돼지 한돈과 함께 캠핑을 즐겼다 ⓒ 최기영

음식 만드는 일에 소질이 없는 나는 캠핑이나 야유회를 가면 겉돌기 일쑤다. 이날도 일행들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캠핑 온 사람들이 참가하는 고기 굽기 대회가 있길래 한참 재밌게 구경했다. 참가자들은 가족, 연인 또는 친구들끼리 다양하게 팀을 짰다. 고기를 굽기 위해 각 팀이 준비한 도구도 각양각색이었다.

다들 진지하게 고기를 굽고 드디어 심사가 있은 뒤 수상자들이 결정됐다. 유명 유투버인 젊은 친구가 혼자서 심사를 했다. 그 어려 보이는 친구가 그 많은 음식 맛을 평가하고 즉석에서 바로 순위까지 매기는 모습이 내게는 가장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대회에서는 남자 대학생들이 팀을 짠 젊은 친구들이 노련한 가족 요리사들을 제치고 1등을 먹었다. 

캠핑장에서는 ‘한돈 굽기 대회’가 열렸다. 캠핑 참가자들이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돼지 구웠다 ⓒ 최기영
캠핑장에서는 ‘한돈 굽기 대회’가 열렸다. 캠핑 참가자들이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돼지 구웠다 ⓒ 최기영

요즘 우리나라 한돈 농가는 어렵다고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이슈로 농가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병은 돼지에게는 치명적이지만 소 등 다른 가축에게 전염되지 않고 인체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하지만 ASF 이슈가 확산되면서 삼겹살이 '금(金)겹살'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돌았고, 결국 실제로 소비가 줄어버리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올해 돼지고기 시세는 평년에 비해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고 한다. 지난해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대한 공포, 이로 인한 판매 부진까지 겹치며 농가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낳고 자란 돼지고기를 '한돈'이라고 한다. 이날 캠핑의 주제도 '한돈과 함께 하는 豚GO豚樂(돈고돈락) 캠핑 페스티벌'이다. ASF의 위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우리 돼지 한돈을 통해 모두가 동거동락(同居同樂)했으면 좋겠다.

일행 곁으로 돌아오니 푸짐한 돼지고기 요리가 놓여 있었다. 그릴에서는 바비큐가 익어가고 있었고, 이미 조리된 불고기에서 퍼지는 달달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옆에 놓인 소주와 맥주…. 해가 기울며 산 아래 캠핑장은 쌀쌀했다. 화로에 붙여진 장작불이 우리 곁에서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직은 싸늘했던 청평의 밤이었지만 우리가 피워놓은 장작불에 여름 밤은 따뜻하게 깊어갔다 ⓒ 최기영
아직은 싸늘했던 청평의 밤이었지만 우리가 피워놓은 장작불에 여름 밤은 따뜻하게 깊어갔다 ⓒ 최기영

"나는 저기 모히또 가가지고 몰디브나 한잔 할라니까",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이병헌의 유명한 대사다. 비리 정치인과 재벌들 뒤를 봐주는 정치깡패 상구(이병헌 분)는 그들에게 손이 잘리고 배신을 당한 뒤 은둔 생활을 한다. 대통령 비자금 스캔들을 조사하던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은 상구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시골집에 그를 머물게 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상구는 잘려나간 오른손 대신 왼손 하나로 삼겹살을 불판에 지글지글 구워 먹으며 장훈과 함께 소주를 나눠 마신다. 여기서 둘은 마음을 열고 상구는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를 장훈에게 넘긴다. 삼겹살은 둘 사이에 있었던 벽을 허물고 의기투합을 하게 하는 매개가 됐다. 

대학 시절 어머니는 나를 보기 위해 가끔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 들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는 나의 조그만 자취방에서 삼겹살을 구워주셨다. 어머니는 한창 먹을 나이라며 시골서 손수 만드신 양념장을 바른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한입 가득 넣어 주셨다. 영화에서나 실제 우리 삶 속에서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늘 그렇게 사랑이었고, 위안이었고, 솔직함이었고 편안함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날 우리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여름밤을 보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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