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 뛰어든 2030 청년들…“사회적 손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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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 뛰어든 2030 청년들…“사회적 손실 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2.16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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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1.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근무하던 A씨(20대, 여)는 최근 한 부동산업체에 취직했다. 경기 침체로 일하던 공장이 문을 닫자 요즘 가장 핫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A씨는 '돈을 받고 부동산 투자를 배우면서 일할 수 있다'는 회사의 말을 믿고 입사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해당 업체는 부동산을 배우기 위해 필요하다며 A씨에게 청약통장, 대출을 위한 명의 등을 요구했고, 대신 수익이 나면 일부를 주겠다고 했다. 모두 불법행위다.

#2. 한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B씨(30대, 남)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학원에 등록했다. 월급은 쥐꼬리인데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는 걸 보고 부동산 투자로 크게 벌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유명 부동산 투자 전문 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찾아간 것이다. 밑천은 부모님이 마련해 주기로 했으니 자금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아줌마, 아저씨들만 북적일 것 같았던 학원에는 B씨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동년배들이 수두룩했다. 문득 상투를 잡는 게 아닌 지 우려스러웠다.

#3. 대학생 C씨(20대, 여)의 취미는 견본주택 관람이다. SNS에서 만난 부동산 동호회 사람들과 주말마다 새로 분양하는 견본주택을 찾아 둘러보고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주변 공인중개업소를 방문해 투자처 추천도 받는다. 그 동호회에는 이미 부동산 투자로 수억에서 수십억 원의 차익을 거뒀다는 또래들이 많이 있었다. C씨는 생전 구경도 못한 거액의 빚이 생긴다는 걱정보다는 '로또 아파트'에 대한 꿈이 앞섰고, 주변에서도 일단 괜찮은 집만 구하면 돈은 어떻게든 마련된다고 조언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쉬운 길이 있는데 힘들게 취업 준비를 하는 학교 친구들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부동산시장 '큰손'된 청년 세대

부동산 투자 시장에 나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 pixabay
부동산 투자 시장에 나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 pixabay

집값 폭등 현상이 지속되면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드는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젊은 세대들이 몰리는 현상과 더불어 사회적 손실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국토교통부,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매입자 연령대별 아파트 거래 현황에 따르면 지난 7~9월 전체 아파트 거래에서 20대와 3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7월 28.73%, 8월 29.31%, 9월 29.0% 등으로 같은 기간 40대(27~28%)를 넘어섰다. 서울 지역에서는 20·30대가 40대의 거래 비중을 앞서는 일이 종종 발생하지만 전국 단위에서 이 같은 역전 현상이 목격된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20·30대의 존재감은 서울 주택시장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앞선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들어 40대 거래 비중이 20·30대를 웃돈 시기는 성수기인 4~6월 단 3달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 9월과 10월에는 20·30대의 거래 비중이 각각 34.50%, 34.32%를 기록하며 40대(28~29%)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서울 지역에서의 이 같은 현상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4년 간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20·30대 비율은 2015년 29.98%, 2016년 30.12%, 2017년 30.87%, 2018년 9월 기준 32.48% 등으로 매년 증가했다. 반면, 전통적으로 큰손으로 분류되는 40대 비중은 2015년 32.08%, 2016년 31.25%, 2017년 29.93%, 2018년 9월 기준 29.22% 등으로 매년 감소했다.

이런 추세는 청약시장 등에도 이어지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상훈 의원이 지난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2018년~2019년 7월 무순위 청약 당첨자 현황'에 따르면 최근 2년 간 무순위 청약·당첨이 발생한 주요 아파트 20곳의 무순위 당첨자 2142명 중 30대는 916명(42.8%), 20대는 207명(9.7%)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국토교통부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청약통장(주택청약종합저축) 신규 가입자는 105만8322명으로 이중 18.1%가 청년층으로 집계됐고, 같은 기간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19만1810명을 기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머니에 잡히는 소득은 줄고 집값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이대로 지속되면 평생 집을 구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경기 침체와 일자리 감소 영향으로 설 사리를 잃은 데 따른 한탕주의 등이 청년들의 부동산 투자시장 유입을 야기한 것"이라며 "계급 사다리의 절단, 저금리 등으로 부동산 투자에 대한 유혹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20·30대가 이런 유혹에 취약하다. 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로 부의 증여가 늘고 있는 부분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등 영향으로 청약 당첨가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청년들은 청약시장보다 기존 주택 매매시장에 집중할 전망"이라며 "신축 아파트 시장은 자산을 갖고 있는 40·50대가 먹고, 구축 아파트 시장은 20·30대가 먹는 구도"라고 내다봤다.

부동산 투자 학원·유튜브 채널 점령한 청년 세대

이 같은 현상은 통계로 집계되지 않는 곳에서 더욱 쉽게 목격된다.

이원용 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지난 10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보면 집을 구매하려는 분들 중에 연소득 7000만 원 직장인, 30대 중후반, 그리고 80·90년대 출생한 미혼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집값이 좀 떨어지면 내 집을 마련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서 이제 사는 거다. 주변에서 자꾸 집값이 올랐다는 얘기만 하니까 이제 정부 대책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 투자 강의로 유명한 한 강사는 "3~4년 전만 해도 40대, 50대 수강생들이 많았는데 이제 전체 학생 중 절반은 20대, 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면 취업을 못해서 직업 투자자 세계로 뛰어든 사람도 있고, 목돈을 마련하고 싶은 직장인들도 있고 아주 다양하다"며 "도대체 어떤 돈으로 투자를 하려고 하는 지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대부분 부모님 자산을 이용해서 투자를 계획하고 있더라. 대부분 내 집 마련보다는 어차피 나중에 상속 받을 거 미리 당겨서 크게 벌어보겠다는 심산"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유튜브 등 SNS에서 부동산 투자 관련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도 청년 세대의 급속한 부동산 투자시장 유입을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사례로 소개한 C씨는 "동호회 사람들끼리 스터디룸을 구해서 유튜브로 강의를 듣기도 하고, 강사를 초빙하기도 한다. 사실 유튜브나 강사가 직접 강의하는 거나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유튜브를 더 선호한다"며 "도서관에서 전공 공부나 취업 준비를 하는 것보다 이게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선 유명 강사는 "정직하게 일해선 큰돈을 모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 저금리 기조, 과거 비트코인 광풍, 주식시장의 침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테크나 부동산 투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진 점이 청년들을 주택시장에 모으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물건을 고르는 법, 대출을 받는 법 등을 누구나 간단히 파악할 수 있으니 상대적으로 적은 자산으로도 돈을 불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청년 세대의 부동산 투자, 국가 미래에 악영향”…일각선 집값 거품론도 나와

한 금융업체가 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 KB국민은행
지난달 한 금융업체가 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부동산 관련 세미나를 개최했다 ⓒ KB국민은행

청년들이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국가경제와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이 안전한 곳에만 몰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례로 소개한 B씨는 "스타트업에서 나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부동산 때문이다. 회사 대표가 정부 지원금으로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했더라. 연구개발에 쓴 것도, 직원들 복지를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횡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그 투자금은 또 다른 부동산 투자처로 들어갈 거고, 또 그 돈을 이용해서 누군가는 전세를 놓고 갭투자를 할 거다. 이런 순환 구도를 보니 내가 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사회에서 이용만 당할 거라고 판단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부동산시장에 너 나 가릴 것 없이 유입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시장 분위기는 우려스럽다.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부동산시장은 안전한 투자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다른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하이 리스크 시장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예다. 청년들이 다른 분야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해서 이끌어 줘야 부동산시장도 성장하는 것이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 아니면 부동산 투자, 그도 아니면 유튜브 크리에이터 아닌가. 너무 편중돼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집값 거품이 급격하게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누라까지 물어보는 투자처라면 돈을 빼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 초보 투자자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이 잔뜩 달라붙고 있으니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라며 "특히 청년 세대가 투자에 활용하는 자금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받은 증여·상속 자산이다. 부모들의 자산은 또 집이지 않느냐. 결국 집을 담보잡고 팔아서 새로운 집에 투자를 하는 방식인데, 이게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 지 비관적이다. 결국 다 사회적 손실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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