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희대의 사기꾼 심유경과 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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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희대의 사기꾼 심유경과 북미 정상회담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7.12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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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발발 불씨된 심유경 사기외교, 되새겨 대북협상 나서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정유재란 발발의 불씨가 된 심유경의 사기외교를 되새겨 미북정상회담과 대북협상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뉴시스
정유재란 발발의 불씨가 된 심유경의 사기외교를 되새겨 미북정상회담과 대북협상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사진제공=뉴시스

심유경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 일본을 농락한 국제적인 사기꾼이다. 겉으로는 조일전쟁을 종전시키기 위한 협상가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영달을 추구했다. 특히 자신의 사기 행각이 들통나자 일본으로의 망명을 꾀하다 붙잡혀 처형됐다. 

심유경은 원래 상인 출신이었다. 조일전쟁도 심유경에겐 흥정의 대상일 뿐이었다. 다행히 일본 측 상대는 조일전쟁을 반대했고, 조기 종전을 원하던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우리에게는 소서행장(小西行長)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장군이다.

심유경은 초반에는 운이 좋았다.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해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시작되자 일본군은 보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한반도의 강추위는 일본군의 당초 계산에는 없었다.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4월 봄이었고, 평양을 점령한 것이 6월이었으니 한반도 정복은 겨울 이전에 끝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명나라의 참전과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 의병의 활약 등으로 보급로가 막혀 대혼란에 빠졌다. 스스로 남부지방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심유경은 이 상황을 십분 활용해 일본을 압박했지만 명과 일본, 양 측의 조건이 첨예하게 맞섰다. 명나라는 △조선에서의 완전 철수 △조선의 두 왕자 송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공식 사죄 등을 요구했다.

일본 측의 요구사항은 황당했다.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억지로 △명나라 황녀의 일본 천황 후궁행 △무역 증서제 부활 △일본과 명나라 양국 대신의 각서 교환 △조선 8도 중 4도 일본 할양  △조선의 왕자와 신하 인질 일본행 △조선권신의 일본 배반 금지 서약 등을 요구했다. 

이 순간 심유경은 자멸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양국의 상반된 협상조건을 철저히 무시하고 명 황제를 속였다. 심유경은 명 황제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의 국왕으로 책봉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된다면 신하로서 조공을 바치겠다”는 허위 사실을 보고했다. 명 황제로서는 별로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원래 중국의 외교 원칙은 ‘책봉과 조공’이었다. 기껏 종이조각 한장으로 '똘마니'를 더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생각했다. 

반면 조선은 희대의 사기꾼 심유경의 세 치 혀에 국가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었다. 무능한 선조는 군대를 파병한 명 황제의 은덕에 감읍할 따름이었고, 오로지 자신의 안위만 걱정했다. 

조선을 배제한 심유경은 명 황제가 히데요시에게 보내는 일본 국왕 책봉 국서를 갖고 현해탄을 건넜다. 드디어 일본의 최고 권력자인 히데요시와 나고야성에서 만났다. 조일 전쟁의 실제 해결 당사자인 명과 일본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실질적인 피해자인 조선은 배제된 상황이 나고야에서 펼쳐진 셈이다.

명 황제의 국서를 받은 히데요시의 반응은 분노였다. 격분한 히데요시는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명과 일본의 불신을 자초한 심유경의 사기 행각이 낳은 불행의 몫은 조선 백성이었다. 조선은 다시 화염에 불탔고, 조선 백성의 피로 물들여진 조선의 산천은 죽음의 지옥으로 전락했다.

일본의 전쟁 목표도 바뀌었다. 당초 목표였던 정명가도(征明假道) 대신 조선 남부 정복으로 변경했다. 결국 심유경은 명 황제를 농락한 매국노가 됐고, 일본으로 망명을 꾀하다 명군 장수 양원에게 붙잡혀 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했다. 7년 조일전쟁이 낳은 국제적인 사기꾼의 최후는 비참했다.

최근 정부의 안보라인이 대거 교체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인영, 임종석, 정의용, 박지원 등 대북 유화론자들을 중용했다. 또한 미국 대선 前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도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했지만 김여정은 매몰차게 거절했다. 조일전쟁 당시 명과 일본의 협상이 첨예하게 대립했던 상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도 열려 한반도 비핵화에 한 발 다가선 것처럼 보였지만 하노이 담판 결렬 후 북미 관계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정유재란 발발의 불씨가 된 심유경의 사기 외교를 되새겨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협상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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