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와언과 괘서의 나라 조선과 시무 7조
[역사로 보는 정치] 와언과 괘서의 나라 조선과 시무 7조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8.30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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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의 조선은 망하는데도 실패했다는 경고 잊지 말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후일 육당 최남선이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뼈아픈 자책을 한 대로 조선은 백성의 피맺힌 경고인 ‘와언’과 ‘괘서’를 무시하면서 망하는 데도 실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일제 강점기다. 사진제공=뉴시스
후일 육당 최남선이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뼈아픈 자책을 한 대로 조선은 백성의 피맺힌 경고인 ‘와언’과 ‘괘서’를 무시하면서 망하는 데도 실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일제 강점기다. 사진제공=뉴시스

“근래 부세가 무겁고 관리가 탐학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없어서 모두가 난리 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요망스러운 말들이 동쪽에서 부르짖고 서쪽에서 화답하니 이들을 법률에 따라 죽인다면, 백성으로서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조선 후기 석학 정약용이 <목민심서>에서 밝힌 ‘와언(訛言)’에 대한 실태다.

‘와언’은 거짓으로 떠도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위정자들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다. 조선 후기 백성들은 수백 년의 당파싸움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위정자들을 비판하는 말을 퍼뜨리는 와언을 통해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했다. 와언의 주된 내용은 권력을 독점한 지배세력의 탐학에 대한 비판과 현 통치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이다. 특히 권력 남용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탐관오리는 비판의 주요 대상이었다.

글로 백성들의 한(恨)을 풀어주던 괘서(掛書)도 여론 조성에 큰 몫을 했다. 괘서는 문서로 작성하다 보니 주로 한자로 표현했다. 양심 있는 선비들이 주로 작성했다고 추측할 수 있지만 백성들의 분노와 한을 직설적인 표현으로 담아내고 있어 여론 조성에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순조실록> 순조 1년 10월 30일 기사는 8월에 정국을 강타한 하동 괘서 사건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경상 감사 김이영의 밀계가 있었는데, 말하기를, ‘하동부(河東府)에서 읍과의 거리가 5리(里)쯤 되는 시장가에 괘서(掛書)의 변(變)이 있었는데, 흰 명주(明紬)를 한 자(尺) 남짓하게 대나무 장대에 종이끈으로 꿰뚫어서 매달았습니다. 명주 가운데에 쓰기를, 문무의 재예가 있어도 권세가 없어 실업(失業)한 자는 나의 고취(鼓吹)에 응하고 나의 창의(倡義)에 따르라. 정승이 될 만한 자는 정승을 시킬 것이고 장수가 될 만한 자는 장수를 시킬 것이며, 가난한 자는 풍족하게 해주고 두려워하는 자는 숨겨 준다라고 하였으며, 그 나머지는 진서(眞書)와 언문(諺文)을 서로 뒤섞어 난잡하게 쓰다가 지워 버렸습니다’ 했다.”

괘서가 장시에서 내걸린 이유는 백성들이 자주 왕래한 곳이기에 괘서를 직접 보일 수 있고, 여론 조성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또한 서민문화의 발달로 백성의 지적 수준이 향상돼 국정 문란에 대한 비판 의식도 발달했고, 괘서의 내용을 여기저기 전파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하지만 지배세력은 순조실록의 내용처럼 백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강경책만 구사했다. 백성의 한은 피고름이 됐고, 직접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조정의 강경책이 초래한 비극이 1862년 삼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임술농민봉기다. 

당시 세도 정치가들의 탐학 수단은 환곡이었다. 빈민구제책인 환곡이 지배세력의 가렴주구를 채우는 칼이 됐다. 삼정의 문란과 각종 잡세의 부과 등도 백성이 봉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하지만 지배세력은 반성할 줄 몰랐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말로는 조세개혁을 내세우며 회유에 나섰지만 법보다 칼이 앞섰다. 실제 조세개혁은 강경파의 반대로 거의 구호로만 존재했다. 

후일 육당 최남선이 “조선은 망하는 데도 실패했다”고 뼈아픈 자책을 한 대로 조선은 백성의 피맺힌 경고인 ‘와언’과 ‘괘서’를 무시하면서 망하는 데도 실패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일제 강점기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30대 평범한 직장인의 ‘시무 7조’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옛 상소문 형식을 통해 부동산 정책 실패를 비롯한 현 정부의 정책을 도마에 올려놓고 논리 정연한 비판과 현 시국을 정확히 꿰뚫는 현실 인식, 국정 문란 의혹에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한 풍자 등이 돋보이는 명문이라는 평가다. 최근 청와대가 ‘시무 7조’를 노출시키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초미의 대상이 됐다.

정약용 선생이 꼬집은 대로 “요망스러운 말들이 동쪽에서 부르짖고 서쪽에서 화답하니 이들을 법률에 따라 죽인다면, 백성으로서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는 경고를 文정부가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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