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온수터널, 동해선, 백신패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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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온수터널, 동해선, 백신패스, 그리고…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12.22 17:2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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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를 위한 少의 희생·大를 위한 小의 무시'…이대로 괜찮은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얼마 전 '우리는 왜 싸우는가'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방문으로 이슈가 됐던 온수터널 공사현장 인근 항동지구 주민이 보낸 편지였다. 해당 현장을 둘러싼 서울 구로구 향동지구에는 현재 1만5000명 가량의 주민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또한 온수터널은 인근 초중교, 일부 아파트, 상가 등을 관통하도록 계획돼 있는데, 이 과정에서 터널 굴착과 폭약 발파 등 위험 작업이 수반된다. 주민들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공사다. 메일 발신인은 "국토교통부의 '안전하다'는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났음에도 힘없는 국민을 국가 정책의 무고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이 공사의 강행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서울 구로구갑, 現 통일부 장관)의 중재로 지난해 이뤄진 온수터널 지반조사 결과, 조사 참여 전문가 중 '안전하다'는 의견을 낸 자는 단 하나도 없었으며, 보고서에는 지하수 유출 등 문제로 붕괴 우려가 있다는 내용까지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토부는 과거에 안전성 검증을 완료했고, 여러 보강 대책을 마련했기에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장문의 메일을 읽은 후 고민에 빠졌다. '국민안전은 정부의 핵심 국정 목표이며, 국민 생명과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하다'고 강조했던 문재인 정권 하에서 어떻게 이렇게 범국가적 차원의 반(反)안전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재난은 항상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오는 건데 말이다. 남북경제교류협력 핵심 도로망이라는 이유만으로 설명이 안 됐다. 이 사안에 대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을 만한 취재원 몇몇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미 안전성이 입증됐다', '주민들이 배상금을 높이려는 거다' 등 답변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가족의 안전을 기어이 담보로 잡겠다면 배상금이라도 많이 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진부했다. 그러던 중 수화기 너머로 귀에 강하게 박히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다. '소수가 희생하는 것'이라는 대답, 광명~서울 고속도로는 수도권 일대 수많은 국민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인데, 온수터널 구간이 변경되면 개통 시기가 미뤄져 사회적 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논리였다. 또한 정관재계 곳곳에 이해당사자가 많은 것도 온수터널 공사 강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하고 전화를 내려놨다.

올 한해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참 많았다. 국토부와 국가철도공단은 오는 28일 울산 태화강역에서 동해선 2단계 개통식을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부산과 울산을 잇는 복선전철인 동해선이 정식 개통하는 것이다. 지역 주민과 산업계는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동해선은 부산에서 강원 삼척까지 잇는 철도다. 부산~울산, 울산~포항을 순차적으로 개통하고, 포항~삼척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중 포항~삼척 구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강원 삼척 오분동 일대 마을 3곳에 살았던 주민 23가구가 2018년 철도 공사를 위해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삼척 내에 집단 이주단지를 조성해 이주민들에게 분양권을 줄 것이며, 이주단지가 조성되는 동안 월세를 지원하겠다는 국가철도공단의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공단은 돌연 약속한 분양가를 일방적으로 인상하더니, 이주민들이 이에 반발하자 월세 지원도 끊었다. 이 사건은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고, 법원은 철도공단에게 일단 주민들에게 월세부터 우선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는데 공단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물론, 공단도 억울한 측면이 있다. 당초 이주단지를 조성하려던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해 이주민들에게 다른 지역을 제시했으나 이를 주민들이 수용하지 않아서 일이 크게 확대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말을 믿고 영남-강원 광역 생활·경제권 구축이라는 대의 아래 삶의 터전을 떠난 국민들만큼 억울할까 싶다. 

백신패스(방역패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 문재인 정부는 사적모임 허용 인원을 수도권 최대 6인·비수도권 최대 8인(미접종자 1명 허용)으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자들만 시설 출입·이용 등을 허용하고 미접종자는 불허하는 백신패스 규제를 식당과 카페 등까지 확대한다고 했다. 이어 지난 16일에는 위드 코로나를 공식 철회한다면서 전국 사적모임 허용인원을 접종완료자로만 최대 4인(식당·카페 등 이용 시)으로 제한하고, 미접종자는 혼자서 이용하거나 포장·배달만 허용키로 했다. '미접종자에게 자유를 누릴 권리는 없다'는 단선 논리를 펼치며 '미접종자가 전염병 확산의 원흉'이라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 같은 정책에 국가의 개인 기본권 억압 등 비판이 제기됐지만, 국민 80% 이상이 접종완료자(2차)인 상황에서 미접종자에 대한 차별은 불가피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일부 식당·카페는 다른 손님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미접종자는 혼자 와도 받지 않겠다고도 했다. '방역'이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앞에 소수인 미접종자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이 같은 희생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희생의 규모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오는 2022년 1월 3일부터 백신패스에 유효기간 6개월을 두는 방안을 시행한다고 했다. 이를 감안하면 백신패스로 인한 미접종자 차별은 이번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끝나는 같은 달 2일 후에도 이어지겠으며, 부스터샷 미접종자에 대한 백신패스 규제 적용도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의 그것과 다소 궤가 다르다. 통상적으로 민주주의는 소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었던 주권을 아무런 권리가 없었던 다수가 폭력·비폭력 수단을 동원해 얻은 결과물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비롯해 입법, 사회적 합의 등이 다수결의 원칙 아래 이뤄지는 게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차이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다수결의 원칙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와 결합되는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유교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공익이 늘 우선되고, 개인은 튀면 안 되며, 남들처럼 보편적인 삶을 사는 게 미덕으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사회다. 이런 전제를 깔면 온수터널, 동해선, 백신패스까지 다 쉽게 이해가 된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군요'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건 아마 이 같은 문화가 이미 내재화됐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과연 이게 옳은 것일까. 제국주의, 독재, 식민지 수탈 등이 모두 '다(多)수를 위한 소(少)수의 희생'의 산물이었음을 감안하면 옳지 않다는 데에 더 무게를 둬야 하지 않을까. 

더욱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차원에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당연시되면서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반하는 '대(大)를 위한 소(小)의 무시'가 허용되는 이상한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일례로 정부는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해 법무부 장관의 비리를 애써 무시했고, 거대양당은 정권재창출·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대선 후보들의 흠을 애써 무시한 채 본선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그 비리와 흠을 지적하는 자들을 소수로 몰아붙였다. '무능력자', '부적응자' 등 낙인까지 찍으면서 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권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다수결의 원칙을 거치지 않고 누군가 정해놓은 '다수'와 '소수', '대'와 '소', 그리고 '희생해야 할 자'와 '무시해야 할 것'에 철저히 따를 수밖에 없는, 따르지 않으면 희생자로 분류되는, 그런 사회 구조가 구축된 게 아닐까 싶다. 多를 위한 少의 희생·大를 위한 小의 무시가 이대로 괜찮을지, 이제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한 숙의가 필요한 시점에 접어든 것 같다. 이 시점을 놓치면 온수터널, 동해선, 백신패스, 그리고… 그 뒤를 이을 또 다른 사례들이 속출하리라.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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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화 2021-12-23 07:05:53
글 잘쓰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