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대통령실 공사, 그리고 법과 원칙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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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대통령실 공사, 그리고 법과 원칙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6.1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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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소통하고, 국민 눈높이 살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최대한의 도덕이다, 이런 얘기들이 있어요. 수많은 도덕·윤리 규범 중에 우리가 최소한 이것만큼은 지키자고 합의해서 만든 게 법이니까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거고, 도덕은 이행할 책임이 없는 것인데 법은 거기에 강제성을 부여하니까 성질적으로는 도덕의 최대한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시민사회가 점차 성숙하고, 기득권층이 자리를 잡으면서 최소한, 최대한의 도덕에 대한 논의는 이제 의미가 없게 됐다고 봅니다. 개인의 양심과 상식에 따라 도덕 규범과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진 동시에, 소수 특권 계급이 도덕 규범과 법을 자신의 편의에 따라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으니까요. 이제는 '법대로'를 외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할 시대가 됐습니다."

필자가 법과대학에 다닐 때 어느 젊은 교수가 한 말이다. 그때는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인가 싶었다. 군 전역 후 언론인이 되겠노라며 전공 공부를 게을리하기도 했고, 생각도 어렸다. 동방(동아리방)에 가서 기타나 치고 노래나 부르던 시절이었다. 그냥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교수의 말이 다시 떠오른 건 2019년 조국 사태 때다. 당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은 청와대 분수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도덕과 양심, 정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국가적 강제력이 바로 법이다. 그런데 도덕적이지 않고 양심적이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자들이 법의 이름으로 법을 기만하고 능멸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권은 불법과 위선, 탈법과 불의가 난무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통찰하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다 함께 소통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교수의 말이 최근 또다시 떠올랐다. '법'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일에 법을 운운하면서, 정작 누가 봐도 수상쩍은 일에는 '원칙'을 지켰으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대통령이 있어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면서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 사용자 부당노동행위든, 노동자의 불법행위든 선거운동 때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 그렇게 대응하겠다고 천명해 왔다"고 말했다. 불법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10일 출근길 질의응답에서도 '노동계를 향한 적대적 정책 때문에 화물연대 파업 문제가 더 불거진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정부가 법과 원칙, 그다음에 중립성을 가져야만 노사가 자율적으로 자기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역량이 축적된다"라고 답했다. 

최근 대통령비서실에서 윤 대통령 집무실 리모델링 공사 중 간유리 작업을 회사가 설립된지 이제 막 반년이 지난 다누림건설이라는 신생업체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맡기는 일이 있었다. 조달청 등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지난 7일 다누림건설과 약 7억 원 규모 '청사내 사무공간 환경개선' 계약을 맺었다. 해당 업체는 경기 포천공구상가에서 조그마한 상가를 임차해 운영되고 있었고, 시공능력평가액은 지난해 기준 3억7314만 원에 그쳤다. 기술자격을 보유한 인력도 초급 기술자 2명에 불과했다. 규모도, 경력도, 기술력도 모두 검증되지 않았다.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측은 복수의 언론을 통해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일을 하는 과정이었다", "굉장히 급하게 수소문해서 급하게 일해 줄 업체를 찾았다", "보안과 시급성이 필요할 때는 수의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 등 입장을 밝혔다.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이슈를 관통하는 건 '법과 원칙'이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윤 대통령은 '법대로'를 주문했고, 집무실 리모델링 공사 수의계약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은 '원칙대로 했다'고 항변했다. 윤 대통령의 말이 옳고, 대통령실의 설명이 맞다. 아무리 자신의 생계가 걸렸다고 해도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행위를 저질러선 안 된다. 그걸 묵인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가 붕괴된다. 또한 대통령실의 말처럼 국가계약법 등 현행법에선 대통령 행사 등은 특수성이나 시급성 따위를 감안해 수의계약 방식으로 발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수반된 공사는 규모로 보나, 중요성으로 보나, 보안과 시급성으로 보나 수의계약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위화감이 든다. 정부가 말하는 '법과 원칙'이 이들 사안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아서다.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노사 문제에 깊이 개입하진 않겠다고 했다. 오해를 단단히 하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 노사 문제가 아니다. 현재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요구하고, 이것은 제도에 관한 문제다. 노동계와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정부가 국회와 긴밀하게 소통해 풀어야 하는 사안이다. 이 같은 일이 불거질 것을 대비해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국회의원들과 폭넓게 스킨십을 할 수 있는 원희룡을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이 아닌가. '법대로'를 외치며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것도 좋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법이 아닌 대화와 소통을 강조해야 했다.

대통령실의 '원칙대로 했다'는 해명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은 과연 그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는 게 적정했느냐는 것이다. 공사 규모가 해당 업체의 시공능력평가액의 2배 가량이다. 대통령 집무실이 동네 판자건물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어느 업계 관계자를 만나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합법적인 행위라지만 그 행위 자체도, 대통령실의 해명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니까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민들 사이에서 '해당 업체가 윤 대통령의 장모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해당 업체 대표가 윤 대통령의 집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아파트 인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등 각종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현 정권의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보는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법치주의에는 최소, 최대가 없다. 그것은 시민사회 안정과 민주주의 발전의 밑그림이어야 한다. 본그림이 되면 통치자의 편의와 국민 겁박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 때문에 정치는 '법과 원칙'을 운운하기 앞서 소통하고, 국민 눈높이를 살펴야 한다.

오늘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근길 질의응답에서 "노동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검사의 길에서 정치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제 법의 길에서도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국민과 더 가까이 하길 바란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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