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진짜 젊음’이 안 보인다
재계, ‘진짜 젊음’이 안 보인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05.17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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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국회, 재벌개혁 속도 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5일 '2019년 자산 5조 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를 발표하고 총 59개 대기업집단의 총수(동일인)를 지정했다. 이 중 총수가 변경된 대기업집단은 LG그룹, 두산그룹, 한진그룹 등으로, 각각 구광모 회장, 박정원 회장, 조원태 회장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재벌 3·4세 경영이 본격화됐음을 정부가 공인한 것이다. 특히 구 회장과 박 회장은 공정위가 최초로 지정한 4세대 총수다. 이를 두고 주요 언론에서는 재계에 젊음의 바람이 일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 중이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젊음은 어디까지나 사전적 의미의 '젊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사상이 만드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듯, 아무리 총수가 젊어져도 그 기업의 경영철학이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그것은 '진짜 젊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재벌 오너가의 경영 세습에 따른 세대교체는 기존 경영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리돼 있다. 자녀들이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받는 사례는 굉장히 드물고, 오로지 개인의 능력 여하에 따라 총수가 결정된다. 설사 경영 세습이 있더라도 이사회와 감사의 독립적인 감시가 이에 대한 부작용을 방지한다. 반면, 이번에 총수가 변경된 LG그룹, 두산그룹, 한진그룹 등은 모두 총수가 지주사 이사회 의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제대로 된 견제는 물론이고, 본질적인 변화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다. 변화가 싫다면 젊음과 멀어진다. '젊음의 바람이 일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구태의 바람이 계속 불고 있다'는 표현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국내 재계에 진정한 의미의 젊음이 보이지 않는 데에는 정치권의 책임이 상당하다. 대선 당시 재벌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문재인 정권은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현 정부가 은산분리 원칙을 허무는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제정하고, 차등의결권 도입을 적극 검토하는 등 친재벌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재벌 오너일가가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외면하고 차기 총선을 위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는 재벌 경영 세습의 또 다른 폐단이기도 하다. 군부독재 시절을 시작으로 3~4세대에 걸쳐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재벌과 거대양당 간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부당이득을 챙긴 수많은 경제인과 정치인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빛나는 공로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의 결탁이라는 중대한 과오로 빛바랬다. 이들이 자신의 곳간을 채워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스스로 가를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정부와 국회가 재벌개혁에 속도를 내주길, 재벌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자정 노력에 힘써주길 간곡히 희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 낮아졌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이야말로 사람중심 경제의 필요성을 더욱 강하게 말해주고 있다"며 "경제정책의 변화는 분명 두려운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마치 늙음이 죽음을 두렵게 하듯, 우리는 지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국내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글로벌 경제침체에 대한 불안감마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대는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급변하고 있다. 보다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변화해야 하고, 진짜 젊음과 가까워져야 한다. 그 변화의 시작은 국가경제를 좀먹고 있는 온상인 재벌체제 경제구조 타파를 위한 중장기 대책 수립이 돼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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