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태영건설, ‘안전사고 멈춰!’"
[시사텔링] “태영건설, ‘안전사고 멈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5.20 16: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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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행사 따로, 하청 행사 따로…토목·건축·기계·전기 하청 나눠 수차례 결의대회 진행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학교폭력 멈춰!'라는 표현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화제가 된 적이 있죠.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가 운영했던 '학교폭력 멈춰! 폭력 없는 공감학교 만들기' 캠페인에서 유래된 말인데요. 해당 캠페인의 주요 골자는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폭력이나 말다툼 장면을 보면 누구나 멈춰라고 큰소리로 외친다. 멈추지 않을 때는 선생님, 주변 어른들에게 알리거나 학교폭력 신고센터로 신고한다'였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이 캠페인을 통해 학교폭력이 상당히 줄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우리나라 교육 실태에 맞지 않는 허무맹랑한 정책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뤘습니다. 학폭과 괴롭힘, 따돌림이라는 게 '멈춰!'라고 외치면 멈춰지는 거냐는 지적이 많았죠. 해당 캠페인은 결국 여론 악화로 인해 시행된지 불과 2년 만인 2014년 중단됐습니다.

7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말이 갑자기 다시 뜨게 된 이유는 '학교폭력 멈춰!'라는 표현 자체가 '드립'(온라인상 은어, 농담, 애드립)화됐기 때문입니다. 수년 전 촬영된 캠페인 홍보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최근 확산되면서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었고, 급기야 일종의 '인터넷 밈'이 된 거죠. 드립, 밈은 보통 긍정적으로 활용되기 보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는 경우가 많죠. '학교폭력 멈춰!'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웃음과 조롱의 감정을 드러낼 때 주로 많이 쓰이고, 나아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현실과 괴리가 너무나 큰 비상식적인 정책을 내놓을 경우 '또 탁상행정이구나', '또 현실성 없는 공약이구나' 등 비판적 사고를 풍자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 

2012년 도입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2014년 사라진 '학교폭력 멈춰!' 캠페인 ⓒ KBS 유튜브 채널 캡처
2012년 도입돼 여론의 뭇매를 맞고 2014년 사라진 '학교폭력 멈춰!' 캠페인 ⓒ KBS뉴스 유튜브 채널 캡처

건설업계에서도 최근 '학교폭력 멈춰!'라는 드립을 사용하기 충분해 보이는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1분기에만 사망사고 3건이 발생한 태영건설에 대해 약 2주에 걸쳐 특별감독을 진행한 결과 다수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며 지난달 과태료 2억450만 원을 부과하고, 적발된 사항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거쳐 사법조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고용부는 태영건설은 이재규 대표이사의 활동, 경영전략 등에서 안전보건에 관한 관심과 전략·활동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안전보다 비용·품질을 우선시하는 기업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인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점검하고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했습니다.

태영건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태영건설 정도 규모 업체라면 과태료가 중요한 게 아니죠. 오는 2022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후 건설업계에서 처음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대한 감독을 받았다는 게 너무나 뼈아픕니다. 법 시행 전부터 꼬리표를 달게 됐으니까요. 거기에 '대표이사 안전관리 소홀'이라는 오명까지 붙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여러 개선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겁니다.

출발은 좋았습니다. 태영건설은 지난달 30일 '안전 최우선 선포식'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전국 모든 현장에서 임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겠다는 선포식을 개최했습니다. 직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합니다. 앞서 삼성물산 건설부문, 포스코건설 등 대형 건설사들이 보인 행보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누구나 위험을 인지했을 때 지체없이 작업 중지를 요청함 수 있게 함으로써 '중대재해 제로 달성'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하는 행사였다는 게 태영건설의 설명입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태영건설과 협력사들의 '안전파트너십 결의대회' ⓒ 태영건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태영건설과 협력사들의 '안전파트너십 결의대회' ⓒ 태영건설

그런데 말입니다. 사공이 많은 건지, 입김이 많은 건지, 갑자기 배가 산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태영건설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본사에서 토목 관련 협력사들과 함께 '안전파트너십 결의대회'를 실시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태영건설 임직원과 협력사 대표, 기술담당임원들은 안전사고 제로화를 위한 안전관리 개선방침과 안전결의를 위한 구호를 제창했다고 합니다. 이어 20일과 오는 25일에는 건축 관련 협력사들과, 오는 27일에는 기계·전기 관련 협력사들과 똑같은 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전해집니다.

의아합니다. 지난달 이미 '안전 최우선 선포식'을 열었는데, 굳이 협력사들과 또 비슷한 행사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까요. 뭐, 본청 행사에 하청을 초대하는 게 여의치 않아 따로 행사를 개최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또 굳이 토목 하청, 건축 하청, 기계·전기 하청을 나눠서 행사를 진행할 이유가 있을까요. '안전사고 멈춰!'라는 구호를 외치는 건 한두 번이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원청 안전사고 멈춰!', '토목 하청 안전사고 멈춰!', '건축 하청 안전사고 멈춰!', '기계·전기 하청 안전사고 멈춰!' 이렇게 꼭 수차례 구호를 외쳐야 안전사고가 멈춰지는 건지,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더 생산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비용과 시간이 낭비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코로나19 사태가 심화되고 있고, 백신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지난 18일 열린 행사 기념 촬영 사진을 보니, 이재규 대표이사를 맨 앞줄 가운데에 두고 40명 안팎에 이르는 태영건설·협력사 관계자들이 어깨를 다닥다닥 붙인 채 포즈를 취하고 있네요. 무려 '안전 파트너십 결의대회'라는 현수막을 걸친 채 말입니다. 이 같은 행사를 앞으로 몇번 더 한다는데,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진행했다'라는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해도 그리 안전해 보이지 않는 건 저뿐일까요. 안전사고 관련 개선 노력 '횟수'를 채우기 위해 추진된 불필요하고 위험한 일정이 아닌지 의심스럽고 우려됩니다.

그래도 의구심보다는 걱정되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에, 태영건설의 '중대재해 제로 달성'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외치면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태영건설, 안전사고 멈춰!"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유통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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