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과 탁현민, 그리고 김현철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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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과 탁현민, 그리고 김현철 사태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2.02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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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인지 감수성´과 ´청(靑)인지 잣대´에 대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횡설수설일 수 있다. ‘안희정·탁현민’을 둘러싼 ‘성(性)인지 감수성’ 논란으로 시작해, ‘김현철 사태’로 보는 ‘청(靑)인지 잣대’에 의문을 가하는 기자수첩이 될 듯하다.

성폭행 혐의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은 무죄였다. 그러나 1일 선고된 2심에선 유죄로 뒤집혔다. 안 전 지사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자신의 수행 비서를 10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해 성폭행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중 2심에서 9개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3년 6개월 형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1심과 2심이 무죄에서 유죄로 달라진 데에는 ‘성인지 감수성’이 결정적 작용을 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남녀 누구든 성별을 이유로 상대방을 비하하거나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최근 법원 심리 과정에서도 성범죄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자는 데 있어 중요한 잣대로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안 전 지사의 비서는 2017년 7월 러시아 출장 중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했지만 1심 판결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피해를 입은 뒤 안 전 지사와 와인 바에 간 것 등을 볼 때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2심에서는 ‘성인지 감수성’ 적용 기준이 높아지면서 판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신의 위력을 앞세워 성폭행한 상사의 범행을 덮고 가겠다고 결심한 이상 와인 바 역시 수행비서 업무의 연장선으로 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안 전 지사의 평소 인식 여부도 새삼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미투’에 의해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을 때 항간에서 유행처럼 번진 말이 있었다.

“괘념치 말거라.” 이는 안 전 지사가 텔레그램을 통해 비서와 나눈 메시지 중 한 대목이었다. 당시 그는 차기 유력 대권주자였다. 때문에 평소 하는 말로 봐서 스스로를 왕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냐는 눈초리도 있어왔다. ‘성인지 감수성’ 및 부하를 대하는 인식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엿보일 수 있는 이유에서다.

왜곡된 여성관, 그리고 ‘성인지 감수성’하면 떠오르는 또 한 사람이 있다. <나는 꼼수다>의 공동기획자였던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이다. 탁 전 행정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16년 히말라야 산행을 할 때도 함께한 복심으로 유명하다. 재작년 장미 대선 후 문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행정관으로 발탁된 것도 대선 기여도가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제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였다.  ‘성인지적 감수성’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그가 2007년 공동 발간한 <말할수록 자유로워진다>에 따르면 자신이 첫 경험한 중3 여학생은 친구들과 공유해도 되는 여자였다며, 섹스 대상일 뿐이어서 아무렇게 대해도 상관없었다는 취지로 술회했다.

이외에도 임신한 여선생을 섹스 대상으로 보거나 같은 해 집필한 <남자사용설명서>의 여성비하와 혐오 조장 발언들 역시 공직자 자격 논란에 휩싸이기 충분했다. 특히 “성인지적 인권감수성을 높이겠다”는 문재인 대선후보 시절 공약과도 상충됐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탁 전 행정관을 감싸기 바빴다. 야당이 사퇴를 촉구하면, 여당은 “홍준표 돼지 발정제 발언”으로 맞받아치며 엄호했다. 청와대는 한 발 나아가 스스로 떠나려는 탁 전 행정관을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는 말로 붙잡았다. 겨울은 왔고 첫눈도 왔다. 그때도 탁 전 행정관의 사표는 한동안 수리되지 않았다.  

그런 탁 전 행정관의 사표가 수리됐다고 알려진 날은 지난달 29일. 공교롭게도 혼자만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전날(28일) ‘탈조선’ 국민 비하의 망발로 물의를 빚은 김현철 경제보좌관 등과 함께였다. 김 전 보좌관은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20대에게 “헬조선 탓하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고 했다. 50~60대를 향해서는 “은퇴 후 산에만 가거나 SNS에 험한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고 말했다.

정부를 탓할 바에 한국을 대단히 여기는 동남아로 떠나라는 발언은 '국민 무시'로 읽혀 후폭풍은 컸다. 개중에는 “평소에 청와대 분위기가 얼마나 국민을 탓하고 비하하는 분위기였으면 김현철 경제보좌관 스스로 자연스럽게 그런 막말이 나왔겠는가”라는 분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애초에 국민에 대한 왜곡된 문제인식이 만연화 된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였다.

한편으로, 장고 끝에 사표를 수리한 탁 전 행정관에 비춰보면 김 전 보좌관의 사표 수리는 참으로 속사포였다는 점에서 씁쓸한 것은 또 왜일까. 어쩌면 제 식구 실책에 대한 사표 수리도 입맛에 따라 대처하는 ‘靑인지 잣대’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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