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은정 茶-say 아카데미 대표)
여의도를 지나는 길.
무심히 차 창문을 열었다.
마지막 매달려 있던 벚꽃이 흩날리며 떨어진다.
상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후 첫 봄을 맞이했던 몇 년 전.
얼마나 기다리던 봄이었던가!
매년 상해에서의 매마르고 삭막한 봄을 맞이하면서 어찌나 한국의 봄을 그리워했던지.
그 해 벚꽃이 만개한 어느 봄 날.
짧게 지나가 버리는 한국의 봄을 만끽하려고 향이 좋은 운남홍차를 우려 보온병에 담아 부랴부랴 여의도로 갔었다.
옛 문인들이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차를 마시며 사색적 삶을 즐겼듯, 필자 역시 윤중로 벚꽃나무 아래 어느 벤치에 앉아 한가하게 차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었다.
이후 필자가 내 나라 한국에서 느꼈던 사계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무심히 지나쳐버린 시간들과는 사뭇 달랐다.
매 계절마다 필자는 맨발로 미리 나가 다음 계절을 마중하는 기분으로 사계를 맞이했고, 계절의 어느 한 가운데에서 향이 좋은 차 한 잔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그 옛날 문인들의 사교모임이나 취미생활 문화에는 시와 그림, 악기 등과 함께 차가 있었다.
차는 단순히 마시는 음료로서의 기능을 넘어, 정신을 맑게 하는 성분으로 인해 사찰 승려들의 정신수양에서 시작돼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이 한적하게 즐기며 심신을 단련하는 매개체로 음용됐다.
이후 차는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며 문인들의 정서생활에 깊숙이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인들의 차 생활은 시와 글로, 또한 다양한 풍경의 그림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자연 또는 서재나 그들만의 공간에서 차를 즐기는 문인들의 생활을 상세히 엿볼 수 있다. 전해져 내려오는 그림들로 인해 차 문화의 환경, 도구,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술적 가치와 정신세계를 차 그림을 통해 연구하기도 한다.
그림 속 허름한 집, 시든 것 같은 나무에 생동감 있는 어느 굵은 한 가지의 소나무, 검소한 차 주전자와 잔 등.
그림 안 풍경은 그 시대 문인들의 정신이 담겨있다. 또한 자연에서 은일(隱逸)하고 담박(淡泊)한 삶을 추구했음을 볼 수 있으며, 그 수단의 하나가 차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쁜 현대 생활에 차는 커피와 같은 음료의 기능과 함께 영양학적으로 육체에 이로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옛 문인들과 같이 복잡한 정신에 안정과 휴식을 주는 수단으로 잠시 시간의 여유를 차와 함께해 보는 건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