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세계적 울림 [일상스케치㊸]
스크롤 이동 상태바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세계적 울림 [일상스케치㊸]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7.03 16: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8세 최연소 우승, 새 역사 쓰다
신들린 연주로 청중 심금 울려
청중상·신작 최고연주상까지 3관왕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최근 대한민국 문화 예술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연일 상한가를 갱신하며 맹활약 중이다. 여기에 괴물 신예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60년 전통 '반 클라이번' 콩쿠르 사상 최연소 우승해, 국내 팬들에게 시원한 낭보를 선사했다. 이 쾌거에 전 세계가 임윤찬 신드롬으로 연일 화제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서 연주하는 임윤찬. ⓒ연합뉴스(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캡처)
반 클라이번 콩쿠르서 연주하는 임윤찬. ⓒ연합뉴스(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캡처)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친구들은 모두 태권도 학원에 다녔는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서.... 저도 뭔가 하고 싶어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가게 됐어요.” 지금의 임윤찬을 있게 한 출발점이었다.

특별히 음악 가정에서 부모의 계보를 이어 혹은 거창한 미래를 꿈꾸며 시작한 것이 아닌, 그의 동기는 지극히 소박했다. 대개 그렇듯, '악기 하나쯤 다루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의 권유로 7살때 상가 학원에서 음악 인생을 시작했던 임윤찬은, 11년 만에 최정상에 오르는 독보적인 성과를 이뤄냈다.

간단한 동기에서 시작하더라도 그것을 받아 들여 이뤄 나가는 개개인에 따라 열매가 엄청나게 차이 나는 것은 교육의 진리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게다가 임윤찬은 해외 유학 경험이 전무한 순수 국내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예술의 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광고를 본 임윤찬은 부모님께 간청했고, 오디션에 합격했다. 기초가 부족하단 평을 받았지만 임윤찬은 실망하지 않고 차분하게 실력을 쌓으며 성장해 갔다.

그 후 중학교 과정인 예원학교에 진학했고 201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손민수 교수 사사를 시작하여  2021년 한예종 음악원에 진학해 수학중이다.

성인 되기 전 성숙도 보기 위해 출전

실제 임윤찬이란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는 2019년 윤이상 국제 콩쿠르 우승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임윤찬은 꾸준히 재능을 인정받았다. 11살이던 2015년 금호영재 콘서트로 데뷔했고, 14살이던 2018년엔 미국 클리블랜드 청소년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르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연합뉴스
제16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임윤찬'. ⓒ연합뉴스(사진 : 반 클라이번 재단/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WFIMC) 제공)

그는 시상식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인이 되기 전,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콩쿠르에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 꿈은 사실 모든 것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피아노와 사는 것", 즉 그저 음악 만을 위해서 살고 싶다며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다”라고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자신의 '최연소 우승'에 대해 "너무 심란하고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그렇게 큰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혀 들뜸 없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일관했고 무덤덤해 보였다. 도리어 “실제 무대에서는 연습했던 것의 30%도 나오지 않아 굉장히 아쉽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음악 앞에선 학생이기 때문에 더 배우고 싶다”라고 겸손한 자세를 견지했다.
 

수줍은 미소년, 피아노 건반에선 날아다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 끝난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알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 끝난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심사위원장인 마린 알솝이 이끄는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연합뉴스(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 캡처)

시종일관  앳된 소년다운 천진하면서도 진중한 언변이 임윤찬의 무대밖 모습이었다. 반면 임윤찬의 반전 매력, 이 미소년은 평소 내성적 태도와 달리 피아노 앞에선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함으로 청중들을 자신의 음악 세계로 이끌었다. 콩코르 내내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특히 준결선에서 65분에 달하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2곡 전곡을 쉼 없이 연주한 무대는 청중을 압도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악마적 기교’를 요구한다는 난곡 중의 난곡이다. 작곡가 슈만이 “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리스트 그 자신뿐일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리스트가 평생에 걸쳐 작곡한 곡인데, 한 번에 연주하는 게 작곡가의 인생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지난해 10월 독주회에서 이 곡을 인터미션 없이 연주한 임윤찬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어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통한 휘몰아치는 피날레로 무대와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어린 나이를 잊게 하는 피아노와 혼연일체된 모습과 엄청난 파워에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긴 기립 박수가 터져 나올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휘자인 마린 올솝의 감격한 듯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전파를 탔다. 연주가 끝난 후 포옹하는 모습에서도 임윤찬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졌다.

한편, 임윤찬이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1934~2013)을 기념하기 위해 창설됐다. 그의 고향인 포트워스에서 1962년부터 4년마다 열리며 세계 3대 콩쿠르인 쇼팽, 퀸 엘리자베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버금가는 권위를 자랑한다.

그는 1등 상금 10만 달러(한화 약 1억 3000만 원)와 특별상 상금 7500달러(한화 약 920만 원)를 부상으로 받았다. 세계 각지의 공연, 음반 발매 기회와 함께 3년간 세계 전역에서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관리도 받게 된다. 북미에서 가장 큰 대회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입상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력형 천재이자 어린 철학자

임윤찬은 콩쿠르 기간 내내 하루 12시간씩 연습을 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최소 6시간, 평균 8시간은 건반 앞에 앉는다고 덧붙였다. 경이로운 그의 연주가 이런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로 이뤄낸 것이기에 더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밝히며 "마음에 나쁜 것을 품으면 음악이 정말 나쁘게 되고, 마음으로부터 정말 진심으로 연주를 하면 정말 진심이 느껴지게 되는 게 음악의 정말 무서운 점"이라며 "베토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검토와 또 검토를 하는 그런 습관을 제 인생에서도 더 기르게 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객과의 소통에 대해 "제가 피아노를 잘 치려고 시작한 건데 뭐하러 관객과 소통을 하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근본적으로 더 들어가 보니 해답을 찾았다"며 "결국은 음악을 하는 이유는 슬픔과 기쁨, 그다음 (관객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혔다.

또한 임윤찬은 이번 콩쿠르 2라운드에서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리체르카레 연주를 마치고 스크랴빈 소나타 2번을 연주하기 전까지 90초간 침묵한 이유에 대해 “바흐에게 영혼을 바치는 느낌으로 연주했기에 그런 고귀한 음악을 연주하고 바로 넘어가기 힘들었다”라고 배경을 전했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임윤찬이 즐겨 읽는 책은 단테의 ‘신곡’. 리스트의 작품 ‘단테 소나타’를 이해하기 위해 전체를 외우다시피 읽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음악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히 배어 나온다. 그리고 무대에선 지휘자 및 오케스트라, 청중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려 그리고 여유가 넘친다. 특히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여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추듯 신들린 연주를 해 탄복케 한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이 지난 30일 한예종 서초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 교수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임윤찬(왼쪽)이 지난 30일 한예종 서초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 교수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윤찬의 내일은

“새로운 곡을 찾아 계속 공부하면서 세상의 모든 레퍼토리를 정복하고 싶다”는 게 임윤찬의 꿈이다.

그는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한국예술 종합학교 교수) 교수를 언급하며 “내년에는 손민수 선생님의 뼈와 살이 담긴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연주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바로크부터 현대곡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음악가가 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손민수 교수는 “임윤찬이 음악에 몰입해 사는 모습이 마치 18~19세기에 사는 듯하다”며 제자에게 ‘시간여행자’란 별명을 붙여줬다. 스승은 제자를 ‘연주하려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평한다.

임윤찬 역시 자신의 종교라고 할 정도로 존경하며 의지하는 진정한 스승이다. 임윤찬은 스승에 대해 “내 인생의 모든 것에 영향을 주셨다”고 말했다.

그리고 임윤찬은 지난 30일 서울 한예종 서초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제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달라질 것은 없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이러한 음악에의 진지한 접근이 더욱 내일의 그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한예종 서초 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30일 한예종 서초 캠퍼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흐르는 강물처럼

손민수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윤찬이가 행복해졌으면…. 요란하기보다는, 본인의 인생을 본인의 템포대로 물 흐르듯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원할 때 강물로도 나가고 바다로도 나가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작은 연못에 머물러 있다가 본인의 템포를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으면….”

“사실 윤찬이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음악을 해 나가는 과정을 조금은 여유 있게 차분하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담아낼 수 도 없고 다 보일 수도 없고 하는 것을 조금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유찬이가 더 편하게 음악을 해 나갈 수 있었으면….”

그리고 “윤찬이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기가 좋아하는 순간에 하고 싶은 것뿐인 것 같다. 그래서 조금만 물 흐르듯이 갈 수 있게, 많은 분들의 관심이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2017년부터 임윤찬을 지도하는 손민수 한예종 교수의 제자에 대한 사랑은 이렇듯 각별하다. 무엇보다 임윤찬의 순수한 음악을 향한 열정이 오롯이 꽃피길 소망한다.

임윤찬은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며, 앞으로 보여줄 것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연주자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러니 그 긴 여정을 응원하며 기다려 주는 게 우리 청중들의 몫이 아닐까.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