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육아의 딜레마 [일상스케치(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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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육아의 딜레마 [일상스케치(67)]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1.08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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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조부모의 역할과 건강 관련성
황혼 육아, 과연 삶의 활력소일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손주는 올 때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단다….' 예전 애들 어릴 때 지방인 시댁을 방문하면 시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이다. 그 당시 내색은 않았지만 살짝 섭섭했었다.

그런데 이젠 내가 그 심경이 됐다. 신정 연휴와 겨울 방학이 겹치면서 9살 6살 두 손주들 단기 육아를 맡았다. 더 어릴 때도 수시로 호출되어 봐줬고 이제 먹거리만 챙겨주면 되는 나이라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일정이 길어지면 육체적 심리적 부담으로 다가온다.

황혼 육아…기쁨과 부담, 양가감정 조부모의 현실. ⓒ연합뉴스
황혼 육아…기쁨과 부담, 양가감정 조부모의 현실. ⓒ연합뉴스

손주 사랑과 육아 부담 사이

가정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건 큰 선물이고 축복이다. 게다가 요즘처럼 출산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손자녀의 탄생과 함께 조부모의 역할도 덩달아 많아진다는 점이다.

곧 출산 예정인 딸을 둔 친구는 기대와 함께 어떻게 옆에서 봐줘야 할지 걱정도 앞서는 모양이다. 이미 손자녀를 둔 친구들 역시 수시로 혹은 함께 데리고 사는 경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황혼육아에 동참하고 있다.

오늘날 맞벌이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일반화된 세상, 육아는 가정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7080시대까지 여성은 결혼하면 특수한 전문 직종을 제외하곤 직장을 거의 그만두는 게 일반적인 추세였다. 따라서 출산 산후조리할 때 시댁과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정도였지 주부이자 엄마가 주로 독박 육아를 했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은 출산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재취업을 한다. 경제적 이유와 경력 단절을 않기 위해 일반적 수순이다. 이때부터 육아를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이에 주거지는 주로 여성의 직장 근처거나 친정 가까이에 낙점된다. 온전히 육아를 위한 선택이다.

서구 조부모도 황혼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맞벌이 가정(또는 한 부모 가정)에 조부모의 육아 도움은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어떤 조부모는 육아를 위해 심지어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연구에서 손주의 탄생은 할머니의 조기 은퇴를 촉진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서구 선진국들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큰 숙제이기 때문에 할머니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여성이 돌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아직까지 동서양의 공통된 현상인 듯하다.

또 다른 미국의 연구는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가 근처에 살 때(출퇴근 가능 거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4~10% 포인트 늘어남을 보였다. 가령 미국 가임기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평균 70% 라면, 조부모가 근처에 사는 경우 74~80%가 되는 것이다.

나의 경우 대학원에 입학한 후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겨우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계속 코스를 이어가기엔 육아가 거대한 장벽이 됐다. 시댁과 친정 모두 지방이라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우미의 역할도 한계가 있어 결국 학업이나 사회 활동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육아와 조부모의 건강 상관관계

이렇게 육아에서 조부모의 역할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핵심은 자녀가 모두 독립을 하고 핵가족화된 시점에서 손주를 돌보는 게 즐겁더라도 조부모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장단점이 존재한다. 긍정적인 부분은 육아가 자존감, 가족 결속력을 향상시켜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육아는 조부모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육아 부담을 조부모가 오롯이 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같은 육아라도 조부모가 손주들과 함께 살면서 육아의 주된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고, 가끔 필요할 때만 봐주는 경우도 있다. 전자는 스트레스를 받고 건강을 해칠 위험이 커지고, 후자는 반대로 자존감과 건강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육아를 전담한다면 (아이를 안아주면서 생기는) 손목 건초염, 관절염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우울증의 위험이 커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모의 80%는 조부모에 육아를 맡긴 경험이 있다. 특히 맞벌이 부부라면 누군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육아를 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여성에게도 육아는 고된 육체노동이다. 하물며 황혼 육아를 하는 할머니들은 어떨까. 아무리 튼튼한 노인이라도 아이를 키우면 건강이 무너지기 쉽다.

그렇다보니 자연히 손주 돌보는 재미도 옛말이란 말이 나온다. 황혼에 손자녀를 돌보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우울 지수가 더 높게 나타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손자녀 돌봄 제공자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돌봄을 하지 않는 상대와 비교했을 때 우울감이 더 커진다"라며 "돌봄 시간, 손자녀 동거 여부, 돌봄 대가 수혜 여부와 같은 돌봄 특성은 차치하고 손자녀를 돌본다는 것 자체가 조모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육아로 가족 내 갈등 증폭

이렇듯 육아가 기쁨이 아니라 부담이 되면서 황혼 육아로 가족 내 갈등이 증폭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뛰어들기도, 외면하기도 어려운 현실 앞에서 누군 즐겁고 기뻐서 젊어진다지만 누구는 힘들어서 골병이 드는 것이다. '손주 때문에 살고 손주 때문에 못 살겠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또한 가치관과 양육 방법의 차이, 손목과 허리 무릎에 생기는 질병과 우울증, 개인 시간을 못 갖는 불만, 고마워하지 않는 자식들의 태도, 금전적인 보상을 둘러싼 묘한 신경전으로 벌어지는 문제가 절대 가볍지 않다.

형제자매 간에도 '왜 우리 아이는 안 키워주나?', '부모님 고생 그만 시켜라.'라며 다툼이 생기고 사돈끼리도 나 몰라라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갈등이 커진다. 맡아주겠다고 큰소리쳐 놓고 아내만 고생시키는 남편과, 손주만 챙기면서 남편은 뒷전인 아내 때문에 부부 싸움도 잦다.

효과적인 육아 상생

이와 함께 노부모에게 아이를 맡긴 부모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고 커갈수록 손주와 조부모와의 마찰도 늘어난다.

이에 손주들 앞에서 부모와 조부모가 다투는 모습을 보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 험담을 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조부모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가 손주들을 혼낼 때 손주 편을 들거나 단단히 혼내주라고 훈수를 들기보다 슬쩍 그 자리를 피해 주는 어른다운 태도도 필요하다.

또한 누구 집에서 돌봐줄 건지, 데리고 살면서 주말에만 부모를 만나게 할 것인지 형편에 맞춰 결정하는 것이 좋다. 이 모든 사항을 대화로 합의하고 수시로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조정해 나가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 밖에 부모와 자식 간에 돈 얘기를 꺼내는 것은 서로가 불편한 일이지만 돈 문제 역시 분명히 해 두는 게 좋다. 돈은 감사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매월 얼마를 드릴 것인지 자녀가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다.

예나 지금이나 자녀에게 양육비를 받는 조부모는 많지 않다. 자식을 도우려고 하는 건데 경제적 부담을 주기 미안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부분을 사회적으로 국가가 인정해 주고 지원해 줌으로써 조부모가 당당하게 육아하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의 빅 이슈 저출산과 고령화. 임신과 출산, 양육을 모성애나 부모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개인들에게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일·가정 양립을 추구하는 정책들로 출산을 장려하지만, 여전히 아이 돌봄 문제는 조부모가 해결사다.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기업이나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양한 지원 정책으로 육아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야 저출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고 맘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육아 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동체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통상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은 1년인데, 발달 단계상 만 1세는 여전히 양육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시기다. 길지 않은 이 기간마저 마음 놓고 사용하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나 아동 학대 문제 등으로 어린 자녀를 기관이나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꺼리는 가정이 많다.

때문에 부모 입장에서는 조부모가 가장 믿음직스러운 육아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기관 확충 정책이 황혼육아 부담을 덜어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수당 정책은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볼 수 있다. 즉 손주 양육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조부모의 현실이라면, 조부모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뒷받침돼야 할 때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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