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갈치구이 [일상스케치(93)]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할머니와 갈치구이 [일상스케치(93)]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09.03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 전어 최고지만 내 추억 먹거리는 단연 갈치
소금 뿌려 석쇠로 숯불 화로에 구워낸 그 맛 못 잊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바야흐로 베란다 창문에 가을이 매달렸다. 이제 여름의 폭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점령군이던 매미소리 잦아들고 귀뚜라미 저 멀리서  떼 지어 진군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일본 오염수,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렇듯 자연은 평정심을 찾아가건만 인간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요즘 대표적으로 국내외에선 일본 후쿠시마 오염 방류수 건으로 시끄럽다. 먹거리 비중이 큰 수산물과 연관이 깊다 보니 공방이 치열할 수밖에.

대부분 가정의 밥상엔 바다가 올라온다. 그 바다에 오염수라...  검사상 안전하다는 입장과 국민의 건강과 미래 세대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까지, 뭐가 진실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청정 지역에서 걷어올린 무공해 그 자체의 할머니 밥상은 그리운 추억의 맛이다. ⓒ연합뉴스
청정 지역에서 걷어올린 무공해 그 자체의 할머니 밥상은 그리운 추억의 맛이다. ⓒ연합뉴스

시장 구경은 최고의 즐거움

흘러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중 어린 시절 먹거리가 떠오른다.  그때는 무공해 그 자체였으니 오염 같은 이슈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 고향 하동은 남해와 가까워 시장에 나가면 신선한 수산물이 장사진을 친다. 특히 오일장은 대단한 구경거리로 읍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이에 할머니 엄마 따라 장 구경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집 담장 옆이 바로 중앙시장이어서 장날 소란스러운 풍경이 집 마당에까지 전해졌다. 북적거리는 소음마저도 흥겨웠다.

갈치와 서대, 베다구, 전어 등 생선뿐 아니라 해삼 멍게와 대합, 개불까지 계절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과 해물이 어물전에 푸짐하게 진열됐다.

고소한 그 냄새, 할머니 밥상

그렇다보니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예전 청정 지역에서 걷어올린 재료로 만든 밥상은 무척이나 신선했고 먹음직스러웠다. 게다가 무엇보다 푸짐하고 맛깔났던 할머니 밥상,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엄마 부재 시 할머니께서 수시로 내 끼니를 챙기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할머니와 같이 먹은 가장 기억나는 밥상이 갈치구이 백반이다. 아버지랑 겸상을 할 때는 커다란 대합 등 찬이 더 넉넉했으나 나와 할머니 식단에서 주인공은 단연 갈치였다.

그 시절, 렌지가 아닌 숯불을 피운 화로에 굵은 소금을 뿌린 갈치를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밥상에 올린 갈치구이는 고소함을 넘어 달달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난 잔뼈가 많은 전어구이는 못먹어 대신 할머니는 갈치구이를 종종 밥상에 올렸다. 가운데 굵은 토막은 내가 먼저, 할머니는 나머지 부분을 드셨다. 철없던 그 시절….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맛난데, 그 못지않게 노릇노릇 구운 가을 갈치 역시 밥도둑으로 맛은 가히  일품이다. 지금은 아무리 맛있게 구워보려 해도 옛날 할머니 밥상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갈치, 조림부터 젓갈까지 다양한 변신

생선 이름에는 독특한 게 많다. 갈치는 이름이 칼처럼 생긴 모습 때문에 '갈치'가 됐다는 설이 있다. 검어(劍魚) 또는 도어(刀魚), 허리띠 같아서 대어(帶魚), 칡넝쿨처럼 길어서 갈치(葛侈)라고도 불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모양이 긴 칼과 같다. 입에는 단단한 이가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물리면 독이 있다. 맛이 달다'라고 갈치를 묘사하여 기록되어 있다.

갈치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필수아미노산이 많고 비타민인 레티놀 A 효능이 높은 식품이다. 갈치구이, 갈치 국, 갈치조림, 갈치 젓갈 등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갈치가 예전에는 서민 생선이었을 정도로 흔한 어종이었으나 어획량이 줄면서 이젠 귀한 몸이 됐다. 40년 새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든 갈치 어획량으로 국산 구경하기가 싶지 않다.

자연히 수입품이 많아졌는데 국내로 유입되는 수입 갈치와의 가장 큰 차이는 눈동자다. 눈이 검은자 주변이 흰색을 띠면 국내산 갈치, 노란빛을 띄면 외국산 갈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일본산의 경우 눈 흰 자가 국내산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갈치가 연중 잡히지만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잡은 가을 갈치의 맛이 가장 뛰어나다. 수온이 내려가면 월동 준비를 위해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살이 도톰해지고 기름이 오르기 때문이다.

한 끼의 사랑

주부들은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고 차려서 한 끼의 밥상엔 사랑과 정성이 가득차다. 할머니와 엄마가 그랬듯이 나 역시 내 아이들과 이젠 손주들에게 까지 받은 사랑을 전수하려 한다.

손자들은 아직 어려서인지 생선구이나 전통 밥상은 낯설어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식탁 문화도 즐겨 찾는 최애 식품도 변모하니, 옛것을 고집할 수 도 없다. 아쉽지만 크면 나아지겠지하며 기다린다.

피자나 치킨, 햄버거보다 언젠가는 전통 한식 먹거리를 즐기기를 바라며 종종 만나는 손주들에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먹이려 애쓴다. 그게 나 나름의 사랑 표현이고 교육이라 여긴다.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고 가을이 문 두드리는 이 계절, 갈치 한 토막 노릇노릇하게 구워야겠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