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또 건설투자 꺼낸 文정부 ‘건설이 만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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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또 건설투자 꺼낸 文정부 ‘건설이 만만하니?’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0.1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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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아쉬운 대목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정부가 건설투자 카드를 꺼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민간 활력을 높이는 데 건설투자 역할이 크다. 필요한 건설투자는 확대할 것"이라며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교육, 복지, 문화, 인프라 구축과 노후 SOC 개선 등 생활 SOC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인위적 경기부양책 대신 국민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건설투자에 주력했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보강하고, 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민간 활력이 높아져야 경제가 힘을 낼 수 있다. 노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현 정권이 조국 정국 이후 민생경제 행보를 보일 타이밍이라고는 예상했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고, 건설투자까지 직접 거론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문 대통령의 주재 사실은 회의 전날에서야 언론에 공개됐는데요. 그만큼 급박하게 일정이 편성됐다는 의미입니다. 국내외 경제 불투명성이 짙어지면서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점, 많은 공을 들였던 대북정책이 이른바 '깜깜이 평양축구'로 동력을 잃은 점, 차기 총선을 앞두고 터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진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꺼낸 카드는 바로 경제, 그중에서도 건설투자를 택한 거지요.

이를 두고 야권과 보수언론들은 일제히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MB(이명박 전 대통령)정권을 토건 정부라고 비난하더니 이제 와서 건설투자에 기대겠다고 하니 참으로 민망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중앙일보〉는 "문 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건설경기 부양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내용의 사설을 냈습니다. 비판의 목소리는 진보언론에서도 감지됩니다. 〈한겨레〉는 "(현 정부의) 경제정책 무게추가 점차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과 친기업 정책 쪽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1면에 실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현 정부여당이 전(全)정권 당시 토건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비슷한 정책을 쓰는 걸 비판하는 게 과연 상식적일까요. 마치 '쟤도 떠들었는데요', '쟤가 먼저 했어요'라며 생떼를 부리는 어린아이들 같은 비판입니다. 또한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오해를 좀 받으면 어떻습니까. 같은 진영이 반대하는 정책을 좀 펼치면 어떻습니까. 국가경제를 살리는 게 우선인데 정부라면 무슨 일이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이런 식의 비판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합니다. 아쉬운 대목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숨어있으니, 디테일을 살펴봅시다.

문재인 정부가 건설투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 시사오늘
문재인 정부가 건설투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 시사오늘

야권의 주장과 달리,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은 문재인 정부가 지속적으로 유지한 기조 중 하나입니다. '토건'이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요. 대표적인 게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입니다. 현 정권은 출범 당시 향후 5년 간 50조 원을 투자해 500곳에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한 'SOC'에 '생활'이라는 단어를 붙여 만든 '생활SOC'에 상당한 예산을 썼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주거·환경·안전·신재생에너지 등 생활SOC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MB 정부와는 다소 다른 방식이지만 토건에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할애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을 보였냐는 겁니다. 토건 정책 특성상 그 효과는 짧으면 수년, 길면 수십년 뒤에야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결과물이 형편없습니다. 지난 8월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예산 집행률은 34%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사업계획조차 없는 지방자치단체를 사업지로 마구 선정해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는 게 국회예산정책처의 설명입니다. 생활SOC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건설부문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생활SOC 예산을 늘린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건설투자액은 8조7830억 원으로 지난해 초 10조5640억 원을 기록한 이후 10조 원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가 첫 번째 아쉬운 대목입니다. 문 대통령이 건설투자를 언급한 날 청와대 관계자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 계획된 주택건설 시기를 앞당긴다는 의미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건설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건설투자를 적극적으로 한다는 메시지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는데요. 야권의 반발을 희석시키기 위한 부연 해설임을 감안하더라도, 결국 기존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토건 정책의 방향성을 바꾸진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집권 3년차까지 실효성을 보이지 못한 정책 기조를 앞으로도 유지하겠다는 겁니다. 과연 건설업계나 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안 봐도 비디오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일까요.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건설투자 카드를 꺼낸 가운데 두 사람은 동행할 수 있을까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건설투자 카드를 꺼낸 가운데 두 사람은 동행할 수 있을까 ⓒ 뉴시스

그 다음 아쉬운 대목은 첫 번째 대목과 직결됩니다. 방향 전환 없이 건설투자를 추진하겠다는 건 도시재생 사업, 생활SOC 등 현재 정부가 펼치고 있는 토건 정책에 대해서 정부가 스스로 합격점을 줬다고 풀이할 수 있는데요. 정책, 즉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면 문제가 있는 건 사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문 대통령도 이를 절감한 듯 지난 6월 청와대 정책실장에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경제수석에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임명하며 경제라인을 전격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토건 정책과 건설투자 부문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는 국토교통부 장관 교체 얘기는 올해 초 최정호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전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내내 구설수에 올랐던 인사입니다. 2017년 6월 홍보·예산 전문가인 김 장관이 취임할 당시 관료들은 물론, 건설업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한 건설사 임원은 '도대체 김현미가 누구냐'고 기자에게 되물었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김 장관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임대사업자 세제혜택 축소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최근에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문제로 홍남기 현 부총리와 엇박자를 냈습니다. 진에어 면허취소 사태 때는 김 장관과 국토부 관료들이 대립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고요. 부동산 대책의 수장인 만큼, 최근 발생한 서울 집값 급등 현상에 대해서도 절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번에 문 대통령이 강조한 건설투자와 관련해서도 김 장관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앞서 거론했듯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예산 집행률은 저조한 실정인데요. 국회예산정책처는 그 원인으로 국토부의 안일함을 꼽았습니다. 국토부가 사업계획도 수립하지 않은 지자체까지 포함해서 공모절차를 진행해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당 문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사안이기도 합니다. 문제를 알고도 수정하지 않은 겁니다. 인적쇄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건설투자만을 강조한 정부의 자세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정치권에는 차기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청와대가 연말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요. 3기 신도시 문제로 지역구 여론이 좋지 않은 김 장관이 과연 공직을 내려놓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A, B, C노선도 ⓒ 국토교통부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A, B, C노선도 ⓒ 국토교통부

마지막으로 아쉬운 대목은 부동산시장에 대한 고민 없이 건설투자가 거론됐다는 겁니다. 문 대통령은 건설투자를 말하면서 "서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을 최대한 앞당기고, 교통난 해소를 위한 광역교통망을 조기 착공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3기 신도시 등을 염두에 둔 지시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인데요.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극심한 양극화로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서울 집값은 3.3㎡당 1억 원을 돌파하며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반면, 지방 집값은 지역경제 침체와 함께 하락세를 지속하는 양상입니다. 국토균형발전이 흔들린다는 전문가 지적도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GTX와 3기 신도시에 속도를 내는 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요. 다른 건 몰라도 서울·수도권 집중현상은 반드시 발생할 겁니다. 수도권 외곽 지역까지 서울 통근성을 높인다면 이른바 '메가 서울'이 탄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서울·수도권 내 인구 과밀화가 심화돼 GTX가 완성되고도 그 이상의 대규모 사업이 또다시 추진돼야 하며, 지방의 소멸은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더욱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에 3기 신도시 계획이 수립된 것도 서울·수도권 내 인구 과밀화와 서울 집값 폭등으로 주택 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졌기 때문이 아닙니까. 또한 GTX와 3기 신도시가 병행된다면 3기 신도시의 자족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질 겁니다. 여러 방면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아질 것 같은데요.

정책의 일관성도 의문입니다. 문 대통령은 건설투자를 강조했는데 현재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추진 중입니다. '서민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주택공급을 최대한 앞당기라'고 했는데 정작 펼치는 정책은 공급을 위축시키는 정책입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국토부는 공모형 부동산간접투자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 부동산 펀드에 대한 세제 혜택 확대와 규제 완화 등을 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안 옵니다. 분명한 점은 경기부양 차원에서 정부가 마련한 건설투자 고육지계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 상태인 부동산시장을 더욱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2020년 정부 예산안에서 SOC 예산은 22조3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9% 올랐습니다. 경기침체에 따른 재정확대 영향도 있지만 SOC 예산 증가율은 그중에서도 높은 편입니다. 전체 예산 분야 가운데 4번째로 높은 증가율입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이 건설투자를 직접 강조한 건데요. 분명 의미 있는 정책 기조의 변화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 현 정부가 건설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짙습니다. 건설은 단기 경기부양,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제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상당히 큽니다. 그만큼 잘못 건드리면 전체 국가경제가 흔들릴 공산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다가오는 차기 총선 정국에서 건설투자가 이슈로 떠오르는 일은 제발 없길 기원합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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